[광장&골목] <33> 영국 '브릭레인' 마켓
[광장&골목] <33> 영국 '브릭레인' 마켓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로 꽉 찬 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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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룩시장으로 잘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톡톡 튀는 디자인 의류 파는 곳으로 더 유명해진 영국 런던 브릭레인 마켓. 각종 그림으로 장식된 상점 외벽. 이랑주 씨 제공 |
브릭레인 마켓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벼룩시장이다.
매주 일요일 런던 북동쪽의 이스트엔드 지역에서 열린다.
이곳은 불법 이주민들이 하나둘 정착하면서 형성됐는데, 그중에서도 브릭레인 마켓이 있는 곳은
범죄율이 가장 높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구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런던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빈티지 마켓으로 거급났다.
심지어 런던의 최신 유행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런던의 멋쟁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궁금했다.
■ 아마추어 상인들의 천국
브릭레인 마켓을 찾기 위해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서 내렸다.
역 주변은 초고층 현대식 건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이들 마천루를 20여 분만 지나면 낡은 벽돌공장 건물이 나오고 곧바로 마켓이 시작된다.
길거리 노점상부터 구경했다.
사연이 있는 듯한 중고 사진기부터 이런 물건을 누가 살까 의문이 들 정도로
심하게 파손된 안경까지 다양한 물건이 나와 있었다.
우리 시각으로 보면 쓰레기나 다름없는데, 이곳 사람들은 누구가는 필요로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 시장이 처음 형성된 이곳의 경제 사정은 좋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마을사람들보다 더 가난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적 열정을 지닌 젊은 예술가들이
한둘씩 이곳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990년께 예술촌으로 불릴 정도로 제법 세력을 형성했다.
이들이 만든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가 빈티지 마켓이었다.
■ '옷장 수술' 들어보셨나요?
이곳은 다른 시장과 다르다.
시장의 주류는 상인이 아니라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이다.
특히 노점상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작품들로 넘친다.
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직접 옷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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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옷들. 이랑주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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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창고처럼 생긴 시장 내부로 들어갔다.
노점보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가판대가 옹기종기 모였다.
하나같이 자신의 개성을 살린 수제품이다.
남성 셔츠의 앞뒤를 서로 바꾼 옷이 눈에 띄었다.
버려진 옷이나 재고를 활용해 새 옷을 만드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옷장 수술(wardrobe surgery)'.
이른바 새 옷이든, 헌 옷이든 자신의 추억이 담긴 옷을 가져오면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변신시켜 주는 서비스였다.
■ 시장은 사람들이 모여 노는 곳
독특한 상점만큼이나 주변의 음식점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음식점 주변에는 식탁이 많이 있었는데,
햄버거, 샌드위치, 케밥, 스시, 핫도그, 튀김 등을 사와 이곳에 앉아 먹었다.
자리가 나면 아무나 앉을 수 있으니 모르는 사람끼리 쉽게 어울렸다.
시장 한쪽에는 각국 음식을 모아놓은 코너도 있었다.
아쉽게도 한국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음식이 가장 많았는데, 영국 사람들도 좋아했다.
음식점 입구의 화려한 색상과 요란한 패턴의 장식도 눈길을 끌었다.
빈 공터나 골목에는 어김없이 그래피티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다.
손님과 상인의 구분이 덜하고, 시민과 관광객의 구분도 덜한, 묘한 시장 분위기가 좋았다.
■ 시장은 창조 산업의 아지트
해가 지자 창고같은 시장 안은 클럽처럼 변했다.
맥주를 손에 든 사람들은 귀가 찢어질 듯한 사운드에 몸을 맡기면서 쇼핑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으로 목적을 다하지 않는다.
와서 실컷 놀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놀거리가 많아야 장보기도 즐겁다.
전통은 그렇게 하나둘 쌓여 명성을 얻는다.
우리나라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은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브릭레인 마켓은 다르다.
공간은 낡고 오래됐지만 이를 질서정연하게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개성을 늘 첨가하려는 노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젊은 개성이 시장을 새롭게 만들고 새로운 고객을 끊임없이 유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노력만으로도
사실은 좋은 시장을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버려진 양조장 건물과 주변 일대를 있는 그대로 문화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1만 명이 넘는 예술가들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죽은 도시를 런던의 새로운 창조산업의 아지트로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창조적 콘텐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창조력을 규제하지 않는 행정이다.
lmy730@hanmail.net
이랑주VMD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