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골목] <37> 일본 '유후인' 상점가
[광장&골목] <37> 일본 '유후인' 상점가
과거로 돌아간 마을에 매일 1만 명이 찾는 비결은?
![]() |
▲ 일본 규슈 유후인 간장 가게의 전경. 벽에 그린 간장병이 정겹다. 이랑주 씨 제공 |
오이타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두 온천지구가 있다. 벳푸와 유후인이다. 특히 규슈를 방문하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선호한다. 유후인으로 간다고 하니
일본에 사는 친구가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고로케를 추천했다. 얼마나 맛있는지 확인하려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로케 가게부터 찾았다. 80여
개의 가게 중 친구가 말한 가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긴 줄이 일종의 표지이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고로케를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따뜻하고 바삭했다. 하지만 기가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맛보다 명성이 이 가게를 찾게 한 것 같았다.
![]() |
한입에 먹기에는 너무 큰 '폭탄 타코야키'를 파는 가게. 이랑주 씨 제공 |
고로케를 손에 들고 유후인의 상점들을 구경했다.
유후인 역에서 긴린코 호수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다양한 상점과 온천 여관, 미술관 등이 몰려 있었다.
아담하고 소박한 일본 옛 시골 마을에 온 듯 정겹고 예뻤다.
상점은 전통성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함을 잘 살린
인테리어와 연출로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간장 매장에는 간장을 옮기는 수레가 한가운데 자리 잡았고, 매운 양념 가게
입구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벌꿀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장에는 앙증맞은 벌꿀이 날아다니는 입체 간판이 걸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규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유후인이라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한 번쯤 형식을 파괴해도
된다
얼마를 걸었을까 한적한 거리에 긴 줄이 보였다.
무작정 줄부터 설까 하다가 무엇을 팔기에 그런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았다.
타코야키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기존에 알던 타코야키가 아니었다.
너무 컸다.
이른바 야구공 크기였다.
이것은 '폭탄 타코야키'라는 이름으로 일본 전역에서 팔리고 있다고 했다.
사각형 종이상자에 하나씩 담아 주는데 수저나 포크로 떠먹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유후인 먹거리'를 검색하니
100년 전통의 고로케와 폭탄
타코야키가 나란히 검색되었다.
![]() |
간장 가게 내부. 이랑주 씨 제공 |
100년 세월은 내가 한 시간 더 일찍 문을 열고,
한 시간 늦게 문을 닫는다고 해서 좁혀지는 간격이 아니다.
기존 형식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100년이라는 세월을 이길 수 없다.
'폭탄 타코야키'를 개발한 청년들은 개념
파괴로 성공한 것이다.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이 중요하다.
그러나 맛 다음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특이함이다.
형식을 파괴하지 않으면 성공도 없다.
■ 개발을 거부하고 전통을 지키다
유후인이 온천마을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라고 한다.
'온천, 산업, 자연 산야의 융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온천마을을 건설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재개발이 현대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을에 들어서는 건물의 고도와 규모를 제한하고, 댐 건설을 반대했다.
리조트 개발도 거부했다.
대신 역사를 고증하여 옛날 시골 온천의 분위기를 지켰다.
유후인에는 아직도 메이지 시대 양식의 가옥이 있다.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는 술 창고와 가옥도 많다.
규슈 지방의 옛 건물을 복원해 놓은 유후인 민예촌은 마을의 전통 이미지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
옛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호수 주변에는 예술인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와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 애니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
![]() |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소재로 한 가게의 풍경들이 이채롭다. 이랑주 씨 제공 |
30개가 넘는 미술관에는 항상 전시회가 열리고,
해마다 5월엔 영화제가, 7월엔 음악제가 열린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도 유후인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는 토토로와 함께 기념 촬영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유후인은 우리나라 읍 소재지보다 적은 인구가 살고 있다.
그런데도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 명에 이른다.
그중 25%가 숙박객이란다.
평균 하루 1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그중 2천500명이 이 마을에서 숙박한다.
부산 최초의 전통시장인 부산 동래시장도 시설 현대화보다, 오히려 시장이
처음 생겼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시장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면
더 멋질 것 같다.
동래시장에는 아직도 100년 된 뒤주에 쌀을 담아 파는 가게, 약초가게들이 꽤 많다.
그런 가게를 발굴해서 더욱 예스러운 모습으로 바꿔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두들 더 빠르게, 더 높이를 외칠 때 유후인은 더 느리게, 더 낮게 움직였다.
일등을 위한 단거리 경쟁을 포기하고, 유후인 만이 가진 특성을 살리는 혼자 만의 장거리 달리기에 나섰다.
그 결과 친환경적이고 살기 좋은 전통
마을을 만들어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조성했다.
lmy730@hanmail.net
이랑주 VMD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