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히바]
[히바]- 사막에서 마음의 침묵으로 떠나는 길
'불모지 사막'에서 '인간의 사막'으로 온 여행자는 '마음의 사막'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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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 칸국 전성기 키질쿰 사막에 세워졌던 토프락 칼라(진흙 성이란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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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질쿰 사막엔 배화교·호레즘 흔적이
- 호레즘왕국 수도이자 동서무역 중계지 히바
- 부하라·코칸트와 함께 우즈벡 3대 칸국 형성
- 이찬 칼라 성내 역사적 건축물·고택 집합
- 동문 밖 시장엔 흥정하는 사람들로 활기
- 북문 가면 외성인 디찬 칼라로 이어져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여행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차표를 우선 예매하는 일이다.
부하라에서부터 500km 정도 떨어져 있는 히바까지 가는 방법은
밤늦게 기차를 타거나 아침 일찍 합승 택시를 타는 것이다.
두 도시 사이에 거의 300km에 달하는 키질쿰 사막을 놓치기 싫은 여행자들은
부하라 역 앞에서 택시를 대절하거나 합승한다.
■ 모든 걸 불태워 버릴 것 같은 붉은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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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자의 문'인 동문 앞에 위치한 전통시장. 이곳은 18세기 이전까지 노예시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여행자들은 인간의 사막, '받아들일 줄은 알고/ 나눌 줄은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 있는/ 초여름/ 인간의 사막'(정호승의 시 '사막')으로
떠난다.
길 떠나는 여행자에게 키질쿰 사막은 모래의 언덕이 아니라
붉은 토지(키질쿰)의 불모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불모지에서 여행자들이 만나는 것은 온몸을 불살라 태워 버릴 것 같은
태양, 비틀어 질대로 비틀어진 마른 풀들과 햇살에 이글거리는 잔돌이
가득 널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 그 사이 저 지평선 너머
멀리서 홀로 모습을 바꾸어가며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는 하얀 몸짓들이다. 여행자들은 그렇게 환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그 세계의 흔적들을 만난다.
여행자들은 환각의 세계가 아니라 배화교(조로아스터교)와 호레즘의 흔적을 붉은 사막에서 만난다.
붉은 사막은 아쿠라 마즈다 신의 계시로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올리고 불을 숭상했던 배화교의 흔적을,
중세 우즈베키스탄 서북부 지방의 왕국 호레즘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다.
그 흔적들은 폐허화돼 그 모습만을 겨우 보여주고 있는 크즐 칼라(붉은 성), 토프락 칼라(진흙 성),
아야스 칼라(얼음 성), 유루타(유목민들의 이동 천막) 등이다.
7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전성기의 흔적들을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날려 보내고
여행자들은 히바로 들어간다.
히바는 카라반들이 중국 장안에서 출발하여 우루무치를 거쳐 북쪽으로 가서 천산산맥과 시르다리아 강을 건너
들어오는 곳이며, 카슈가르를 거처 천산산맥을 넘어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지나서 들어오는 곳이다.
■ 오아시스 마을 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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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밖에 있는 수학자 우함마드 알 호레즘의 동상. |
히바는 키질쿰 사막의 출입구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은 7세기에서 13세기까지는 호레즘 왕국의 수도로서
동서교역의 중계지로, 16세기에서 20세기 초기까지는 부하라 칸국,
코칸트 칸국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3대 칸국의 하나인 히바 칸국의
첫 번째 수도로서 터전을 잡고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히바 칸국의 수도였을 때 16세기에서 17세기 초기 사이에 건축된
흔히 히바 성이라 부르는 이찬 칼라는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로
등재되었다.
히바 여행은 곧 이찬 칼라 성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찬 칼라는 히바의 구시가지에 있는 내성이며, 신시가지와의 경계가 되는 외성은 디찬 칼라이다.
히바의 내성 이찬 칼라 에는 10세기에 건축되었던 둠마 모스크에서부터
50여 개의 역사적 건축물과 250개가 넘는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출입구 동문은 '힘센 자의 문'(폴본 다르보자), 서문은 '아버지의 문'(오타 다르보자),
남문은 '돌로 된 문'(토슈 다르보자), 북문은 '공원으로 난 문'(보그차 다르보자)이다.
여행자들은 반나절 정도 성내를 둘러보고 다른 도시로 떠나지 않을 경우 성 안팎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푼다. 성내의 턱없이 값비싼 숙소에 한 번 놀래는 여행자들 대부분은 서문 밖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푼다.
그리고는 서문에서 성내를 둘러볼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사서 돌아다닌다.
그 자유이용권은 결코 입장료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에 여행자들은 두 번 놀랜다.
자유이용권은 성내에 있는 유적지의 출입, 꼭 찍어 말하자면 단층의 출입에는 자유롭지만
그 유적지의 이층이나 미나렛과 같이 높은 건물로 올라가는 데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서문으로 들어가든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지 여행자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배 시간을 알려주는 첨탑인 미나렛이다.
이슬람 성직자인 호자의 이름을 딴 호자 미나렛, 지금은 공사가 중단된 칼타 미나르 미나렛, 모스크와 함께 있는 주마 미나렛 등 어느 한 곳을 이정표로 삼고 성내를 바쁠 필요도 없이 느긋하게 다녀도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그러다가 지치면 여행자들은 동문 밖 전통시장에 가기도 한다.
그 시장에는 이른 아침 장이 서고 정오가 지나면 장을 닫는다.
오전 장에는 마치 우리 시골의 닷새장처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고 온갖 물건들이 넘쳐나서 흥청거린다.
동문이 힘센 자(폴본)의 문(다르보자)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듯이 그 시장이
18세기 이전까지 노예시장이었을 것 같다.
정오가 지나면 동네 개들이 한가롭게 장터를 이리저리 다닌다.
그 한켠에 몇 채 늘어선 가게에 가서 과일을 사거나 샤슬릭 가게로 가서
양고기 꼬치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서문으로 오면 여행자들을 반겨주는 것은 수제 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다.
히바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 우르겐치가 손으로 만든(우르) 목각 공예품(겐치)이라는 뜻이듯이
서문에는 수제 공예품들, 특히 목각 인형들을 파는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아버지(오타)의 문(다르보자)이라는 하는 서문을 나서면 수학자 우함마드 알 호레즘(783~850) 좌상이 있고
조금 떨어진 벽면에는 '더 실크로드 프로젝트'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히바인들에게 인간의 아버지는 호레즘이며 자연의 아버지는 실크로드일까?
■ 이찬 칼라에서 디찬 칼라까지
서문을 나와서 성벽을 따라서 돌로 된(토슈) 문(다르보자)인 남문으로 가면 우르겐치와 다른 지역으로도 가는
대중교통들, 곧 전기버스(트랄레이 버스), 마을버스(마쉬루트카) 그리고 택시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다.
이와 달리 공원으로 난(보그차) 문(다르보자)인 북문으로 가면 디찬 칼라로 가는 길이다.
북문 앞 지역은 히바사람들의 주거지이며, 5분 정도 걸어가면 거리에서 기차표를 파는 가게도 있다.
역에서 여권을 확인하고 기차표를 파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그 기차표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니 디찬 칼라로 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이찬 칼라에서 디찬 칼라를 둘러본 늦은 밤길 여행자들은 어디로 발길을 돌릴까?
불모지의 사막에서 인간의 사막으로 다시 돌아 온 길 떠나는 자들은 '마음의 사막'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나간다./ 낙타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지는 이미 오래다./
별똥은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저리도 황급히 사라지고/ 낙타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평생을 무릎조차 펴지 못하는가/ 다시 별똥별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구 밖으로 사라진다./
(…) / 인생은 때때로 기도 속에 있지 않다/ 너의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정호승의 '마음의 사막).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면서 침묵 속으로 길 떠나리라!
# 여행 피로 날려버린 히바 어린이와의 장난
■ 천진난만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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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앞 하천에서 카페트를 씻는 가족의 모습. |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한국 사람이세요' '어디서 왔어요'
'무슨 일 하세요' 등 질문에서 벗어난 곳이 히바이다.
자기 나라에 관한 외국인의 관심은 여행자들에게 전혀 쓰잘 데 없는
맹목적인 애국심과 우월감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피곤감은 확실히 가져다주는 것 같다.
이찬 칼라를 다니면서 그 피곤감을 벗어나게 한 것은 예닐곱 살이 안되는
어린이들과 같이 장난을 쳤을 때였다.
성내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슬며시 끼어들면 어린이들은
언제 함께 한지도 모르고 같이 놀아준다.
그렇게 놀다가 가족들이 빨래를 하거나 공동 일을 할 때도 슬며시 끼어서 같이 한다.
히바에서 가장 마음이 닿는 것은 어린이들과 함께 장난을 치면서 논 것이다.
어른들, 호객꾼이나 장사꾼 그리고 가이드로 칭하는 어른들을 뒤로하면서.
히바에서 받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마음의 사막'에 심고 다시 배낭을 메고
길 떠나는 마음으로 계속 배낭을 멜 수 있을 것 같다.
부산대 민병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