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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년을 구출하라]청년과 마을- '청년이 정착하는' 마을 만들기

금산금산 2015. 8. 22. 12:17

'청년이 정착하는' 마을 만들기

 

 

 

 

부산 2030 주거와 일자리 해법…마을 공동체 살리기에 답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창작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승혁(33) 씨가 예술카페 '생강'과 목공방 '제페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거 이곳은 쇠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한 철공소 밀집지였지만, 10여 년 전부터 청년예술가가 입주하면서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골목마다 청년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카페가 들어섰고, 설치미술작품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김화영 기자

 

 

 

 

 

 

■ 마을활동가 조언 들어보니

- 빈집·빈점포 싸게 공급하면
- 정착 늘어 경제에 활력
- 지역 커뮤니티 활동도 강화

- 단순 물리적 재생 넘어
- 생산·소비 만나도록
- 삶의 관계망 회복시켜야


"진정한 인도는 몇몇 도시가 아니라 70만 개의 마을 속에 세워져야 한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마을'이 튼튼해야 국가가 바로 선다고 했다.

촌락 공동체는 인도 독립투쟁의 기반이었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집과 일자리가 모두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마을이 화두다.

한때 서울로 가는 것이 '출세'의 기준이라 여겼던 우리의 관심이 다시 마을로 귀환하고 있다.


 물리적 재생을 넘어, 생산과 소비가 서로 만나는, 구성원들이 다양한 소통을 통해 삶의 관계망을 회복하는,

일자리와 주거공간이 공존하고, 공유경제와 사회적 투자가 활성화된 '마을 부산'을 청년이 비빌 언덕으로 봤다.

부산에는 현재 산복도로 르네상스행복마을·건강마을·희망마

150여 개의 마을재생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다.

청년 예술가 김종흠(34) 씨는 부산 동구 범일5동 '매축지 마을' 주민이다.

2010년 미술·디자인을 전공한 또래 10여 명과 문화 창작소 '아코아(ACOA)'를 세웠다.

작품전을 열면 수백 명이 북적댄다.

김 씨는 "지금은 웬만한 월급쟁이만큼 번다"고 했다.

"아코아는 완전 '마을 전파상'이에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 고장나면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만 찾거든요. 그 덕분에 김치나 밑반찬 걱정은 해결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우마차 대기소였던 매축지 마을은 이제 감천문화마을과 함께 도시 재생가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마을과 청년문화가 이뤄낸 성과다.

김 씨는 "마을은 전통적 의미의 '도심에서 떨어진 주민공동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울려 살면 대도시도 마을이 된다"고 말했다.


청년이 주도하는 공동체 운동도 활성화하는 추세다.

부산 북구 화명동 '대천마을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육아를 고민하던 몇몇 주부들이 2003년 만든 '육아공동협동조합'은 도심 하천인 대천천 살리기 운동과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는 '마을밥상협동조합'으로 진화했다.

마을회관에서 '대안학교'와 도서관도 운영한다.

대천마을학교 이귀원 교장은 "현재 300명가량이 활동하고 있다.

마을에서 청년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도시마을연구회 김기식 대표는 사회적 경제와 마을의 협업을 강조한다.

"사회적기업 (주)공유를 위한 창조에서 '동네 일등 꼬치집'을 운영한다. 오징어 꼬치를 파는데 인기가 좋다. 청년이 마을에서 '근무'하면 부산이 젊어진다. 마을재생의 목표를 '청년의 귀환'에 둬야 하는 이유다."

부산마을공동체민간협의회 변강훈 운영위원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쇠락한 마을의 빈집이나 전통시장의 빈 점포를 청년에게 내줘 일 경험을 나누게 하자.

산복도로 주택가는 형광등 교체부터 집수리까지 청년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복지와 일자리 창출은 한 묶음"이라고 했다.

변 위원장의 제안은 서울청년일자리허브에서 시행하고 있는

'워킹그룹 프로젝트'(본지 지난달 15일 자 4면 보도)와 유사하다.


'청년대학생 마실지기단'은 마을 재생가를 꿈꾸는 대학생 봉사단이다.

20여 곳의 산복도로 마을에서 ▷마을주민 욕구조사 ▷마을축제 자원봉사 ▷마을지도 그리기

 ▷뉴스레터와 소식지 제작 ▷청년 일자리 창출 지원을 하면서 마을만들기 프로세스를 배우고 있다.


이아름(여·24) 청년마실지기단 대표는 "방학 때만 주로 활동하는 탓에 원주민들과의 동질감이 떨어져 아쉬웠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마을에 정착해 전공을 살려 활동하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명대 이현아(여·24·국제통상학과) 씨는 실제로 친구 4명과 마을기업 창업을 준비 중이다.

산지에서 가져온 농산물을 팔면서 '소액기부'도 받는 '착한가게' 운영이 꿈이다.

이 씨는 "산복도로에 빈집이 많은데 사무실을 마련할 '마중물'이 부족하다. 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강조했다.

부산발전연구원 김형균 부산학센터장은 "도시재생은 지역주민뿐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다. 정부도 현재 '도시재생사' 자격증 신설을 검토 중이다.

으로 도시공학이나 건축·인문학을 전공한 청년들이 더 많이 마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기획가인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김병수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시아청년마을'을 제안했다.

"부산 청년 100명과 아시아의 청년 100명을 한 마을에서 살면 어떨까. 서로 어울리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특색 있는 정책이나 일자리가 탄생할거다. 청년정책은 무조건 과감해야 한다."


변 위원장은 '아시아청년콘퍼런스'를 개최하자고 주장했다.

"부산은 마이스(MICE : 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의 도시이다. 아시아 청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대규모 이벤트를 열자. 청년정책만이라도 지역에서 주도해보자."

서울에서도 청년의 마을 진출이 활발하다.

용산구 이태원에서 계단장을 여는 문화예술단체 '우사단단'은 장사·문화·놀이가 결합된 사업을 펼친다.

'10초 완성 10원 초상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장재민 작가는 "마을신문인 '월간 우사단'에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기사를 실었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영등포구 '문래예술창작촌'은 원래 철공소가 밀집한 공장지대였다.

천근성(31) 조각가는 "문래동은 2030세대 작가 300여 명의 아지트"라며 "콘텐츠만 있으면 적은 자금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침체했던 동네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화영 기자 hongdam@

마을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마을이 청년들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 위 왼쪽부터 아코아 김종흠 대표, 마을기업 창업을 꿈꾸는 이현아 씨,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김병수 대표, 도시마을연구회 김기식 대표, 청년 대학생 마실지기단 이아름 대표, 사진 아래 왼쪽부터 서울 우사단단 장재민 작가, 서울 문래예술창작촌 천근성 조각가, 부산마을공동체민간협의회 변강훈 위원장, 대천마을학교 이귀원 교장.

 



# 정보는 나누고 힘은 모으자…청년모임 기지개

- 강사·알바 등도 권익 찾기 나서

부산청년포럼 회원들이 '청년 정책 테이블'에서 토론하는 모습. 부산청년포럼 제공

2030 청년들이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만 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풀기 위해 조직된 '청년모임'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부산청년포럼'은 지난해 4월 출범했다.

'부산 청년들의 고민을 공론화할 장이 없다'는 데 공감한

문화예술가와 강사·연구원들이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5월에는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사상인디스테이션에서

▷취업·창업·아르바이트 ▷청년 주거 ▷연애 ▷결혼·출산·육아

▷문화예술 향유 ▷교육정보 및 교육환경 ▷라이프 스타일

▷정치참여(거버넌스)를 주제로 '청년 정책 테이블'을 개최했다.


당시 "취업·창업 정보가 부족하다"

"생계유지가 어려워 예술활동을 그만두는 동료가 많다"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는 안타까운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회원인 부산발전연구원 김아령 연구원은

"우리가 만든 정책을 6·4지방선거 후보자 공약에 반영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를 90분 동안 꺼놓는 '여백의 시간' 프로젝트 기획을 해 관심을 모았다. 부산청년포럼 박진명 사무국장은 "스마트폰과 테블릿 PC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노동의 시간이 일상으로 연장되고 있다. '접속 상태'에서 벗어나 읽고 싶은 책 읽기, 중요한 생각 정리하기, 누군가에게

편지 쓰기, 그저 멍하게 머리를 쉬도록 내버려두기를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학원강사와 같은 고용이 불안정한 직종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만든 노동조합 '부산청년유니온'은

2013년 9월 창립했다.

전익진 위원장은 "청년 노동자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없어 뛰어들었다. 현재 회원은

40여 명으로 적지만 우리의 뜻을 지지하는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 부산지부도 활동 중이다.

동아대 분회장인 박규상(23·철학과) 씨는 "2013년 편의점 실태조사를 했더니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수두룩했다. 시급 3600원도 있었다. 고용주들이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화장을 이렇게 하라' '립스틱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까지 한다. 영화 '카트'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의 목표는 시급 1만 원이다. 월 209시간 일하고 209만 원을 받으면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시급 1만 원은 생활임금이다. 생활임금이 정착되면 학생들이 지금처럼 피 터지게 스펙 관리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부산청년상인모임은 소상공인을 꿈꾸는 청년들의 커뮤니티이다.

회원 2명은 지난해 실제 창업을 했다.

대표를 맡고 있는 부산대 4학년 정은이(여·24·신문방송학과) 씨는 "청년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창업 멘토링과

맞춤 정보 제공, 청년상인잡지 발간 등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노성 기자 nsl@

 

# "노인이 운영하는 산복도로 민박촌 열어야죠"

 

- 부산 정착 사회적기업가 양화니, 지역민 위해 다양한 사업 구상

'핑크로더' 양화니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을에 정착하려는 부산 청년들도 의외로 많다.

공정여행사인 '핑크로더'의 양화니(33) 대표가 그렇다.

200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12년 원도심을 무대로 활동하기 전까지

여섯 차례 직장을 옮겼다.

"부산에서 먹고살고 싶었다. 컨벤션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브랜드 '부산 홀릭'을 만들었다. 독특한 코스 개발과 숙박을 해결하려면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양 씨는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이 많다.

관광객이 오래 머물러야 마을경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도 계획 중이다.

"산복도로는 청년이 거의 없고 빈집도 많다. 도시재생 활동을 하면서 만난 노인들은 '늙어서 뭘 하겠어. 밥하고 빨래밖에 못 해'라고 하신다. 빈방이 있는 노인들이 도시 민박촌을 운영하면 성공할 것 같았다."

양 씨는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2013년 송도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서구 암남동에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지난해 9월에는 게스트하우스 옆집에 '곳간'이라는 문학 동호회원들이 이사를 왔다.

지난 연말에는 서로 이웃이 된 것을 기념해 '이웃 송년회'를 열었다.

50여 명이 함께 빚은 만두를 나눠 먹으며 '청년축제'를 열었다.

물물교환 장터에서 나온 수익금은 송전탑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경남 밀양의 어르신들에게 전달했다.

양 씨는 최근 책방골목으로 유명한 부산 중구 보수동을 청년마을로 양성하는 프로젝트에 나섰다.

보수동은 집값이 싸고 교통이 편리한 대신 보육·교육시설이 부족하다.

"노인들만 살면 마을의 활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 비영리 어린이집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신혼부부나 젊은 엄마들의 발걸음을 잡으려 한다. 책방골목과 연계해 마을 주민들이 수익을 올리는 모델도 찾고 있다."

양 씨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 산복도로인 동구 범일동에 정착하겠다며 나를 찾는 청년들이 많다. 여러 곳에서 이런 움직임이 보인다. 마을과 청년 모두를 위해 매우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이 시대 청년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것이 양 씨의 생각이다.

"학자금 대출로 빚에 허덕이고, 주거비 때문에 쩔쩔맨다. 젊음 말고 가진 것이 전혀 없다.

노인만큼 청년도 보호 받아야 한다."

 

청년의 열정이 '재능기부' 정도로 평가절하되는 문화도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이 때문에 나온다.

그는 "간단한 집수리도 하지 못해 난처해하는 노인이 많다.

청년이 마을에 들어가 돕고, 이것이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자치단체가 다리를 놓는다면

시너지 효과를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사진 기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