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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300여 명 구한 '한국판 쉰들러' 있었다

금산금산 2016. 2. 10. 17:54

6·25 당시 300여 명 구한 '한국판 쉰들러' 있었다

 

 

 

 

양산 서창지서장 고 오강환 씨, 주민살리려 보도연맹 명부 소각

 

 

 

 

- 계엄사 연행 고초, 경찰 옷 벗어
- 66년 만에 밝혀져 추모비 추진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관련자로 몰려 사살 위험에 처한 주민들을 구한

한 경관의 의로운 행적이 전쟁 발발 66년 만에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경관은 당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의를 위해 결단을 내리는 용기를 발휘했다.


주인공은 한국전 당시 양산 웅상지역 서창지서장이었던 고 오강환 씨.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오 지서장은 양산경찰서 본서로부터

보도연맹 가입자 주민 명부를 제출하라지시를 받았다.

정부가 보도연맹 가입자의 북한군 동조를 우려해 전국 경찰서에 이 같은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양산경찰서 관할 읍·면지서는 대부분 명단 제출과 함께 가입자들을 붙잡아 본서에 이송했다.

하지만 당시 오 지서장은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오 지서장은 경찰서에 명부를 제출하면 이들을 검거해 넘겨야 하고,

이는 곧 이들을 사지로 내몰게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이에 그는 명단 제출을 미루고 관련 자료를 은밀한 곳에 숨겼다.

그러자 본서의 제출 독촉 전화가 빗발쳤고, 오 지서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다 관련 명부를 소각하기로 했다.


가입자 대다수가 좌익 등의 혐의와 상관없이 영문도 모르고 가입한 사실을 잘 아는 상황에서

이들을 저세상으로 보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 지서장은 결국 보도연맹 가입자 명부 일체를 소각하는 결단을 내렸다.

명단 소각 사실이 드러나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고,

경위 내정자인 본인의 승진이 누락되는 불이익이 뒤따르지만 주민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웅상지역 보도연맹 가입자 300여 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양산의 다른 지역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본서로 이송돼 대부분 동면 남락재 등지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오 지서장은 부산계엄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요시찰 인물이 돼 경찰조직에서 따돌림 받는 등 무수한 고초를 겪다 결국 31세의 나이에 경찰직을 그만두게 된다.

오 지서장의 이 같은 의로운 행위는 보도연맹 사건 특성상 그간 덮어져 왔다.

그러다 최근 웅상의 역사를 담은 '웅상의 발자취'라는 책자가 발행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오 지서장은 4년 전인 2012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에 웅상지 편찬위원회(위원장 박극수) 및 웅상발전협의회(회장 이부건) 등 지역 사회단체는

 오 지서장 추모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들 단체는 서창지역 관문인 명동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할 예정이다.


추모비 건립을 추진 중인 박극수 위원장은 "본인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도 공직자의 본분을 다한 오 지서장의 행위는 만인의 귀감이다. 양산시 등 당국에서도 추모비 건립에 힘을 보태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성룡 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