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 미안하오!~" 56년 만의 속죄...
"김주열 열사 미안하오"
56년 만의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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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 버릴 때 사용된 차를 운전한 김덕모 씨가 지난 13일 오후 국립 3·15묘역에 있는 김주열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김주열기념사업회 제공 |
"미안하오. 미안하오."
56년 만에 3·15 민주묘지에 잠든 김주열 열사와 마주한 김덕모(77) 씨.
말을 잇지 못한 채 말없이 묘비만 어루만지며, '그날의 일'을 속죄할 뿐이었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숨져 있던 열사를 직접 차량을 운전해 싣고
마산만에 갖다 버린 '그날의 죄'를 이제야 열사 앞에서 빈 것이다.
3·15의거 56주년이던 지난 13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 민주묘지의 열사 묘를 찾은 김 씨는
1960년 3월 15일 당시 마산세무서에 있던 열사의 시신을 하루 뒤인 16일 바다에 유기할 때 동원된
차량 운전기사였다.
그는 "56년 만에 이렇게라도 속죄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살아생전에 한 번은 꼭 와보고 싶었는데, 이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3·15의거 당시 숨진 김 열사
시신 마산만에 유기한 운전사
묘지 지각참배 '고해성사'
당시 혈기왕성했던 20살 청년이었던 김 씨는 어느새 지팡이 없이는 거동도 불편한 70대 노인이 됐다.
중증 치매 증세로 치료 중인 그는 더듬거리는 말투로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중학교 졸업 뒤 고교 진학 대신 운전을 배운 그는 마산지역 한 사업가의 지프 운전기사로 일했다.
3·15의거 하루 뒤인 16일 오전 5시, 아는 경찰관을 도와주라는 사장의 지시를 받고,
경찰 3명과 민간인 1명을 태우고 마산세무서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참한 모습의 열사 시신을 처음 봤다.
너무 놀랐지만,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시신을 차량 뒷좌석으로 옮긴 경찰은 그에게 공사 중이던 마산항 1부두로 갈 것을 요구했다.
애초 야산에 묻기로 했지만, 도중에 마산 제1부두(현 가고파 국화축제장) 앞바다에 버리기로
계획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그는 뒷좌석을 한 번도 돌아보지도 못한 채 급하게 차를 몰았다.
마산항에 도착한 경찰은 그곳에 있던 큼지막한 돌 하나를 열사의 가슴 위에 올린 뒤 철사로 묶어 바다로 던졌다. 이후 김 씨는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단순히 운전만 했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그리고 입대했고, 그날의 일을 잊으려 했다.
그러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40년 전부터 매일 성당에서 죄를 반성하고, 열사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우연히 라디오에서 김주열기념사업회가 기획한 '민주성지 일일 역사 탐방 프로그램' 관련 소식을 듣고 사업회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그날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김영만(72) 전 기념사업회장은 "그동안 열사의 시신 유기장소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김 씨의 진술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주열 열사는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된 뒤 27일 만인
4월 11일 당시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부산일보는 다음 날 이를 단독 보도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도록 했다.
김길수 기자 kks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