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종가] '고택' 여행
500년 곰삭은 시간…옛 선인들 건축미에 푹 빠지다
안동 종가 고택 여행
- ‘하회마을’ 서안동 유명하지만
- 남안동에도 이름난 종택 많아
- 20여 m 송곡폭포 위 자리잡은
- 수묵화 같은 만휴정 풍광 탄복
- 건립 당시 모습 그대로인 묵계종택
- 예술인 작업공간 변신한 지촌종택
- 독립운동가 9명 배출한 임청각 등
- 위압적이지 않고 소박미 물씬 풍겨
하회마을과 찜닭 정도로 안동을 안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양반의 고장이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안동시에는 숱한 종가가 자리 잡고 있다.
종가는 베풂과 실천으로 위상을 구축하지만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종택이다.
하회마을로 대표되는 서안동과 달리 임하호를 낀 남안동 지역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난 종택이 있다.
문화유적 전문 답사 단체인 유유자적여행자클럽과 동행해 남안동의 고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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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종택 주변을 도는 산책길에서 바라본 지산서당과 지촌종택 사랑채. |
■ 만휴정 원림과 안동 김씨 묵계종택
경북 안동시 길안면 소재지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당진영덕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묵계리에 들어서서
임봉산 북쪽 자락 송암계곡으로 들어가면 하얗게 얼어붙은 송곡폭포 위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만휴정이 나온다.
대제학을 지낸 보백당 김계행이 연산군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지은 초당에서 비롯됐다.
아담한 계곡이지만 20여 m 높이의 얼어붙은 송곡폭포와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만휴정 원림은
국가 명승다운 비경을 보여준다.
계곡의 반석에는 ‘내 집의 보물은 청백’이라는 의미를 담은
김계행의 유훈 열 글자가 남아 후세에 그의 정신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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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에서 되돌아 내려오면
묵계마을 한가운데 안동 김씨 묵계종택이 있다.
김계행이 건립해 만휴정을 오가며 여생을 보낸 이 고택은
건립 당시의 모습을 거의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500년 넘은 고택의 앞은 200살이 넘은 상수리나무가 지킨다.
다만 이곳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쓸쓸한 분위기다.
묵계종택에서 200여 m 떨어진 곳에는 김계행과 더불어 응계 옥고 선생의학문과 정신을 기리고자 숙종 때 세운 묵계서원이 나온다.
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한 서원은
마을 앞을 흐르는 길안천을 바라보며
노송에 둘러싸여 고졸한 멋을 풍긴다.
■ 의성 김씨 지촌종택·지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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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 앞 계곡의 반석을 지나 송곡폭포로 흘러내리던 계류가 추위에 얼어붙어 선경을 연출한다. |
길안면 소재지에서 915번 지방도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구수리에서 북으로 흐르는 용계천 옆 도로를 따라가면
임하댐 건설 때 3년에 걸쳐 지반을 15m 높여 수몰 위기에서 벗어난
우리나라 최대 거목인 용계 은행나무를 지난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넌 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다시 임하호변으로 내려간 곳에 지례예술촌이 자리 잡고 있다.
1663년 건립된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의 종가인 지촌종택과 지산서당을 예술인들이 작업하는 공간으로 꾸민 이곳은
용계 은행나무와 마찬가지로 임하호 건설 때 수몰을 피해 옮겨왔다.
서울 면적의 두 배 반에 달하는 안동시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와 여덟 번째로 큰 호수인 안동호와 임하호가 있다.
임하호는 경북 영양군 일월면 일월산(1219m)에서 발원해
청송군 진보면을 거쳐온 반변천이 잠시 흐름을 쉬어가는 데다.
지촌종택 건물은 임하호 완공 4년 전인 1989년 모두 분해해
예전 위치 위쪽인 이곳으로 옮겨 다시 지었다.
사랑채나 안쪽의 지산서당에서 내려다보는 호수 풍광은
더없이 고즈넉하다.
1930년대 사랑채와 문간채가 불탄 뒤 다시 지으면서 지붕을 높였는데
이는 독립운동가들을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전주 류씨 수애당과 무실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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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당과 담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소박한 분위기의 무실종택. |
다시 구불구불 산길을 되짚어 수곡리로 가면 역시 수몰 위기에서 벗어나 높은 지대로 옮겨 다시 지은 전주 류씨 수애당과 무실종택을 만난다.
호수와 가까운 곳에 한옥 스테이를 하는 수애당이 있고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아기산 자락 쪽에 후손이 거주하는 무실종택이 있다.
300여 년 전 지은 무실종택은 임하댐 건설 중인 1988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전주 류씨 무실파의 대종택인 무실종택은 다른 종택이 대부분 그렇듯이 위압적이지 않고 소박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솟을대문은 높직하지만 담장은 야트막해 객의 시선을 막지 않는다.
본채와 행랑채, 사당 모두 규모가 크지 않아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마당에 시든 풀조차도 평범한 한옥 주택을 찾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하면 한옥 스테이를 통해 외부 손님을 맞는 수애당은 단장된 느낌이다.
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곳인 만큼 예전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손님을 위한 화장실도 고택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을 정도로만 지었다.
수애 류진걸이 1939년에 지은 수애당은 무실종택보다 1년 앞서 1987년 이곳으로 이전했다.
외부 손님을 맞을 즈음 옛 방식으로 다시 만든 장독대가 볼거리다.
■ 고성 이씨 임청각과 탑동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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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문가인 고성 이씨 임청각의 군자정. |
임하호에 접해 있지는 않지만 임하호를 지난 반변천이
안동호를 지나온 낙동강과 만나는 곳인 안동역 인근에는
16세기에 지은 곳으로 보물로 지정된 고성 이씨 임청각도 들러볼 만하다.
중앙선 철로에 바짝 붙은 임청각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방문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당시 문 대통령이 방명록에 ‘임청각의 완전한 복원을 다짐합니다’란
글을 남겼는데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끊어놓은
민족의 정기를 잇는다는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선생의 동생과 아들, 조카, 손자, 당숙까지 9명의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곳이 임청각이다.
그 가운데서도 마당에 우물을 품고 있는 일명 우물방이 그 역사의 현장이다.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의미가 없다’며 전 재산을 처분한 뒤
조상의 신주를 땅에 파묻고 만주로 떠난 이상룡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투사를 길렀다.
일제는 이곳의 정기를 끊으려 중앙선 철로를 건설하며 임청각 부속건물 30여 칸을 철거했는데
이를 복원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미다.
안동이 한국의 정신문화를 이끈다고 자부하는 데는 이처럼 종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밑바탕에 있다.
임청각 옆에는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과 국보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있다.
# 고즈넉한 풍경에 뜨끈한 온돌…전통 체험놀이는 덤
■ 고택 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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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애당 마루방. |
이번에 찾은 종가의 고택 가운데는 템플 스테이와 유사하게
고택 스테이를 하는 곳이 있다.
종가의 고택은 일반적인 숙박업소에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지만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라도 찾아볼 만하다.
지촌종택에 자리 잡은 지례예술촌(www.jirye.com)은
오래전부터 고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종택과 강당뿐만 아니라 지산서당에 딸린 온돌방도 이용할 수 있다.
건물에 따라 2인실과 4인실로 나뉜다.
식사는 별도로 제공한다.
다만 이곳은 대중교통이 연결되지 않고 산을 넘어가야 하는 곳이라
눈이 쌓이면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수애당(www.suaedang.co.kr)에서도 9개의 온돌방에서 숙박할 수 있다.
중간채와 문간채의 2인용 방 3개와 안채, 중간채의 4인용 방 5개를 이용할 수 있다.
예약하면 솟대 만들기, 한지 손거울 만들기, 다도 체험, 군불 때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식사는 아침만 별도로 제공한다.
임청각(www.imcheonggak.com)은 현재 상주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가 관리하며 군자정과 사랑방, 행랑채 등에서 숙박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매월 셋째 주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1박2일 전통체험을 운영 중이다.
이때는 숙박과 함께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