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용두산 신사(神社)서 일본 신들에게 절하고

금산금산 2011. 8. 14. 08:10

[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⑥ 용두산 신사(神社)서 일본 신들에게 절하고

 

"일본이 전쟁에 이기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일제는 1916년 용두산을 공원으로 조성한 뒤 용두산 신사를 건립했다.

                       1934년에는 옛 용미산에 당시 부산부청(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 건립계획이 추진되면서

                                                        용미산 신사도 용두산 동편으로 옮겨 놓았다.

                                       당시 초등학생 아이들도 교사의 지시에 따라 '신사 참배'를 해야 했다.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 소장 제공

 

용두산은 한자로 '龍頭山'이라고 쓴다.

용머리 산인 셈이다.

이와 짝지어서 용미산, 곧 용꼬리 산도 있었는데, 지금은 시민들 기억에서 영영 사라진 것 같다.

 

용두산에 관해서는 익살맞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 '어머나, 산이 움직이다니!'

먼 옛날, 용두산이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서기 전의 일이라고 한다.

어디쯤 될까?

대청동이나 어디 그 근처의 개울에서 웬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뭔가 둘레의 기척이 이상했다.

문득 개울이 넘치고 땅이 떨리고 했다.

 

 

놀란 아주머니는 무슨 일인가 하고 둘레를 살피는데, 아니 이게 무슨 괴변이람!

눈앞에서 산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다를 향해서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마나, 산이 움직이다니!'

아주머니는 얼결에 소리쳤다.

그러자, 움직이던 산이 문득 멈춰 섰다.

그래서 용두산이 오늘날의 그 자리에 우뚝 솟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10리 넘게 걸어 '신사 참배'

교사 지시 따라 전승 기원 군가 합창하기도

 

전설 치곤 묘한 전설이다.

지리(地理)나 지형을 두고는 하고많은 전설이 각지에 전해져 있지만,

산이 움직이다가 멈춰 서게 되었다는 얘기는 흔할 것 같지 않다.

용두산은 전설적인 배경부터가 특출하다.

 

 

대청동, 신창동, 중앙동, 광복동 등에 걸친,

가장 번화한 시가지 한복판에 마치 육지 속의 섬처럼 우뚝 솟은 그 지형이 그런 전설과 어울려 보인다.

 

 

아무튼 용두산은 부산의 명물이고 명소다.

부산을 찾는 외지 사람들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명승지가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광복로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거나 아니면 돌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의 광장에 다다른다.

그 현장은 예사 화사하고 장려한 게 아니다.

 

 

한복판에 부산타워가 높다랗게 하늘로 치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위엄을 떨치고 있다.

금세 용틀임하고는 날아오를 기세가 오히려 위협적이기도 한 용탑은

그 현란한 조형미를 돋보이면서 용두산의 정기와 부산시민의 기개를 대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종탑 말고도 각종 기념관이며 전시관이 줄줄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그런 광장에 서서 누리게 되는 전망은 용두산 아니면 어림도 없을 경관을 감상케 한다.

 

 

· 일본 신화 '최고 신' 모셔져

 

온 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하나일 부산항의 전경이 눈에 든다.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밴쿠버 등과 함께 마땅히 세계적인 미항(美港)으로 손꼽아야 한다.

시가지며 부두를 앞에 두고는 북항과 남항이 그림처럼 펼쳐진 그 정경을 대하면서 사람들은 오직 경탄할 뿐이다.

 

 

한데 일제강점기에는 바로 용두산 광장 그 자리에,

일본인 신사가 버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류토잔 진자'라고 일컬어진 그 신사(神社)에는 일본 신화의 주인공 급인 신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신이 모셔져 있었다.

 

 

· 지금은 이순신 동상, 그 자리에

 

우리들 초등학교 소년, 소녀들은 이른바 용두산 신사에 '신사 참배'를 해야 했다.

부민동에 있는 부민초등학교에서 용두산까지 제법 먼 길을 6학년 꼬마들은 단체로 걸어서 왔다.

십리는 더 되게 걸은 끝에야 대청동에서 용두산의 산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는 비탈진 숲길을 반의 반 마장 정도 더 걷고서야 겨우 신사에 도착했을 때는 다들 지쳐 있었다.

 

 

교사의 지시를 따라서 일본 신에게 허리 굽혀 큰절을 했다.

한목소리로 일본이 전쟁에 이기게 해달라고 빌었다.

조선 아이로서가 아니라, 일본의 국민으로서 그렇게 했다.

 

 

'필승을 다지는 아침 참배,

위대한 신을 우러러

큰절 올리면서

적들을 수 백, 수 천 무찌를

힘을 갖추겠다고

오늘도 또 신사에서 다짐했다'

 

 

이런 투의 군가를 합창하기도 했다.

그런 어릿광대 노릇을 하곤 했다.

그런 곳이 우리 어린 시절의 용두산이고 또 용두산 신사였다.

한데 이제 일본 신사와 신들이 철거당한 그 자리,

용두산 공원에는 임진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위용도 당당히 서 있다.

이것을 일러서 역사적 필연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