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몽땅 고향으로!~ L 씨는 경북 영주 산골에서 6남매의 맏딸로 자랐습니다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맏딸이다 보니, 열일곱 살 때 부산에 와서 국제상사 신발공장에 들어갔습니다공장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의 사상구 괘법 한신2차 아파트 길 건너편에 기숙사가 있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nQWioAoKlkc 그때 그시절!~~~ 2024.11.21
‘외딴 섬’에서 부산으로!~ Y 씨는 1958년 전남 진도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돈을 벌려고 어린 나이에 부산으로 온 그는 영도 청학동의 친구집에 머물면서 태화고무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재봉과에서 속칭 '시다' 보조원 일을 하였습니다미싱 돌리는 언니 앞에 앉아 있다가, 작업한 것을 받아서 실밥 튀어나온 부분들을 쪽가위로 다듬는 작업이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wzjmLz80Mhc 그때 그시절!~~~ 2024.11.02
희토류가 있다는 물금 광산, 관광 자원화와 ‘채산성’ 조사를! 물금 광산에서 생산된 철광석은 지질학에서 스카른 광석이라는 것으로 마그마에서 뜨거운 물의 작용으로 형성된 유용한 광물의 집합체라는 질 좋은 철광석이 나오는 곳으로 철광맥이 낙동강 건너편인 김해 매리 까지도 뻗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광물가 급등과 에너지 자원 확보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관광 자원화도 하면서, 채산성이 있는지 다시 재 조사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Zo8h0_Ta6I 그때 그시절!~~~ 2024.10.16
1,000여 명 광부들이 몰렸던 '물금광산' 아십니까? 1,000여 명이 넘을 정도의 광부들이 몰려 물금 광산 일대가 문전성시를 이뤘는가 하면 밤낮의 구별이 없을 정도로 주변이 활기를 띠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에 당시 철광석 원석을 캐내던 커다란 광산 갱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YEzuuRyKiU 그때 그시절!~~~ 2024.10.09
여공女工 모시러, 전라도로!~ 국제고무(국제상사)는 회사 통근버스가 100여 대나 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의 신발공장들은 일손이 부족하여도 곧바로 충원하기가 어려웠습니다그래서 농촌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인력을 모집하여 데려왔습니다특히 전라도에서 여직원을 많이 수급했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전라도로 넘어가서 사람들을 데려온 뒤 회사 기숙사에 재우고, 다음날 일요일 오전에 공장을 구경시켜주고 점심 먹여서 다시 전라도로 데려다 주고,다음에 갈 때는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태우고 오는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lUQqMX9QA&t=3s 그때 그시절!~~~ 2024.09.14
외상 맞장부 & 소매치기 동네 구멍가게에 조그만 맞장부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였습니다월급 받으면 외상값 갚고, 또 외상을 놓고 또 다시 갚아 주고 그래서 돈 떼먹고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월급날에는 신발공장 주변으로 소매치기도 기승을 부렸습니다그래서 도시락 안에 월급봉투를 넣고 퇴근하는 직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물품 도난사건도 종종 생겼습니다그래서 직원들이 퇴근할 때면 공장 출입구에서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여 신발 등을 숨겨 나가는 것을 방지했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4cMgwJKiUk 그때 그시절!~~~ 2024.09.07
아이들 생각해서 ‘꾹 참고 견뎌내어야’만 했던 여공들의 삶! 신발공장에서 신입으로 일을 하게 되면 처음엔 신발창이나 가피에 풀을 칠하고, 빠찌(패치patch) 붙이는 것을 하며 신발창 다듬는 일도 하게 됩니다 작업량이 워낙 많아서, 칼날에 손을 베이거나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j 씨는 신발공장을 다니면서 아이 둘을 혼자서 키웠다고 합니다결혼한지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던 딸애가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 싫어서, 공장으로 찾아와 있는 것이 늘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hsM4HwAfw 그때 그시절!~~~ 2024.08.31
일제강점기까지도 배가 드나들었었던 ‘동천(東川)’!~ 일제강점기 동천은 죽은 하천이 아니라 배가 다니는 운하였습니다고무신의 주원료인 고무는 전량 동남아에서 수입하였고 고무 수입항만이 바로 동천이었습니다 1936년 조선방직과 대선양조 등 동천 주변의 다섯 회사가, 동천에 퇴적물이 쌓여 배가 드나들지 못해 경제적 손실이 크므로 동천 입구 대선 양조에서 서면에 이르는 구간에 동천 운하를 준설해 달라는 진정서를 부산 부윤 시장에게 내었습니다 동천 주변으로 신발회사가 성업하면서 자연히 하나둘씩 부산진구에 신발회사가 늘어났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8U2BY0IDbM&t=8s 그때 그시절!~~~ 2024.08.24
“돈내기(?)” 1960년대 부산의 신발공장은 인기가 높은 직종이었습니다일자리가 많고 큰 업체여서 구직자들이 대거 몰렸습니다 그때 신발공장에서는 일명 '돈내기'로, 자신이 작업한 만큼 돈을 받아갔습니다 부서는 주야 교대로 24시간 풀 가동 되었습니다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어떻게든 취직을 할려고 했던 곳이라, 모두가 일밖에 몰랐었고 쉬는 날도 거의 없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rGKvKsQsfg&t=7s 그때 그시절!~~~ 2024.08.18
한 때 잘 나가던 고무공장, ‘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신입사원 채용! 1962년부터 부산의 고무신도 수출을 시작하였습니다당시 부산이 우리나라 제1의 무역항과 수출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무엇보다 신발 산업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부산의 신발회사들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했습니다새로운 신발이 크게 히트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ZeGjgD4fc8 그때 그시절!~~~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