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7-3> [유엔공원에 핀 휴먼스토리]영원히 함께- '허시 형제 이야기'(下)
낮에는 기침 밤에는 술…'형의 삶을 빼앗았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마셔야 했다
6·25 63주년 정전 60년
6·25 때 전사한 조셉 윌리엄 허시와 그의 동생 아치 허시를 그린 그림. 전쟁의 아픔을뛰어넘는 형제애가 시공을 초월해 감동을 준다. 그림= 박호(화가) |
형이 이 먼 곳에 와있다니…
온 몸에 붕대를 감은 병사는
분명 그의 형 조셉이었다
세상에, 이 곳이 그 전쟁터 코리아라고?
그곳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게
이렇게 값진 일이 될 줄 그는 몰랐다
가평지역은 적에게나 연합군에게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군사 요충지였다.중공군이 서울을 재침공하려면 이 지역을 통과해야 했고 연합군 측에서는 이 지역을 방어하지 않으면 서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없었다.
아치의 부대는 계곡의 맞은편 677고지에 진지를 구축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그 사이 매서운 바람은 온기를 품기 시작했고, 수목들은 전쟁에도 아랑곳없이 새순을 밀어 올렸다.
봄이 와서 좋은 건 딱 하나뿐이었다.
떨지 않고 깊이 잠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잠자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공군 사령관에 새로 임명된 펑더화이(彭德懷)가 수도 서울을 재차 점령하기 위해서 춘계 대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서울의 북동쪽 사창리 지역이 무너지면서 가평으로 가는 길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말았다.
연합군은 신속히 방어 작전을 수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공군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이건 뭐 죽여야 할 놈들이 여기 있는 산천초목보다 많군...
빅토르가 놀란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1951년 4월 23일의 밤은 맑았지만 추웠다.
북향의 산비탈 위에는 여전히 잔설이 남아 있었다.
밤 9시 30분, 중공군 제20군은 박격포와 자동화기를 동원하여 호주군과 캐나다군을 상대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제임스 R. 스톤 중령의 지휘를 받은 캐나다군은 그 자리에서 죽을 각오로 고지를 지켰다.
고지로 파고들면 수류탄을 던졌다. 그렇게 4월 25일 새벽까지 버텼다.
중공군의 포격소리가 서서히 멎었고, 더 이상 게릴라식 침투도 없었다.
그제야 적이 이곳을 포기하고 물러섰다는 것을 알았다.
아군의 피해는 심각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던 레오는 끝내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러고 보니 아치가 속한 소대원 중 살아남은 자는 빅토르와 그, 둘뿐이었다.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있는 허시 형제의 합장묘. |
아치가 참호를 파고 방어선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던 5월 6일,
캐나다 제25여단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전력 보강이 절실했던 유엔의 요구로 캐나다에서도 연단급의 대대적인 파병이 이뤄졌던 것이다.
25여단에는 아치의 형 조셉도 들어 있었다.
조셉의 부대는 도착하자마자 미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그리고 곧장 전선으로 이동해 퇴각하는 중공군 추격에 나섰다.
운천 부근으로 진출하여 5월 30일에는 의정부 자일리를 공격하였으나
각흘봉 일대에 강력한 거점을 구축한 중공군의 저항으로
공격에 실패했다.
그러자 캐나다 제25여단은 덕정 서쪽의 양지말로 이동하여 2PPCLI와 합류한 후 7월 28일 영연방 제1사단에
다시 배속되었다.
신이 이제 나의 기도를 들은 모양이군.
조셉의 말에 곁에 있던 보우먼이 되물었다.
자넨 전쟁의 목적이 동생을 구하는 일인 것 같군.
그래, 동생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그럼, 자네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가?
나를 기다리는 건 아그나스의 무뚝뚝한 기차뿐이라네.
조셉이 보우먼을 향해 지그시 웃었다.
하지만 조셉의 기쁨은 잠시였다.
전선은 사사로운 형제간의 상봉을 허락할 계제가 아니었다.
25여단은 10월 3일 임진강 북쪽의 주항선을 확보할 목적으로 코만도 작전(Operation Commando)을 개시하면서
소대별로 나뉘어 전투에 임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동 중에 낯선 부대의 대원을 만나면 조셉은 먼저 달려가 묻곤 했다.
혹시 아치볼드 허시 대원을 아느냐고...
하지만 동생 아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동생 때문에 명령을 어기고 참호 밖으로 뛰어나올 수도 없었다.
조셉은 잠시 참기로 했다.
어차피 같은 부대에 소속돼 있으니 곧 만날 터이므로.
감제고지를 확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조셉의 소대는 감제고지 왼쪽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포병부대의 선제 지원사격이 이뤄지면 조금씩, 조금씩 고지로 접근해 나갔다.
하루에 겨우 5미터도 나아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일주일 가까이 공격해도 성과가 없자 본격적인 침투명령이 하달되었다.
공격명령이 조셉에게 전달되던 그때, 아치는 고지 오른쪽에서 적을 향해 고지를 파고드는 중이었다.
캐나다 보병들이 고지를 에워싼 채 접근해오자 중공군도 가만있지 않았다.
대대적인 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때 중공군의 포탄 하나가 보우먼과 조셉의 사이에서 떨어졌다.
쾅, 소리와 함께 보우먼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보우먼!
소리를 치던 조셉은 오른쪽 어깨에 감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이미 그의 어깨가 보우먼을 따라 허공으로 날아간 모양이었다.
조셉은 오른쪽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고통에 신음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잠시 뒤 조셉은 의식이 흐려지고 있음을 알았다.
조셉이 피격된 그 시각, 아치는 감제고지에 정상에 올라 있었다.
도망갈 기회를 잃은 적들은 두 손을 든 채 참호 밖으로 기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아군의 피해상황이 보고되었다.
소대원들 몇이 이번 전투에서 또 보이지 않았다. 대
원들에게 재차 명령이 주어졌다.
점령한 고지를 사수하라.
아치가 속한 소대는 적이 파놓은 참호에 제 몸을 밀어넣었다.
맞은편 고지에 방어선을 재차 구축하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치가 참호를 정비하고 있을 때, 대대장 제임스 R. 스톤 중령이 찾는다고 했다.
아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털레털레 본부 막사로 향했다.
자네가 아치본드 허시 대원인가.
옛썰!
아치가 대답하자 대대장이 다시 물었다.
형의 이름은 뭔가?
예, 조셉 윌리엄 허시입니다.
으음... 하며 대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바로 야전병원 막사로 가보게, 형이 기다리고 있다네.
예?
아치가 눈을 치떴다.
형이 이 먼 곳까지 면회를 왔을 리 없었다.
어서 가보게, 후송되기 전에 만나고 싶다면 말일세.
아치는 허겁지겁 야전병원막사로 달려갔다.
야전침대에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누운 사람.
분명 그는 자신의 형 조셉이었다.
형!...
의식을 잃은 채 눈을 감고 있던 형의 눈꺼풀이 떨렸다.
동생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형이 여긴 왜 왔어? 왜 왔는지 말해 보라고, 응?
부상이 너무 심해 제 눈조차 뜨지 못하니 대답할 리 만무했다.
그저 할 일이라고는 형의 남은 왼손을 붙잡은 채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는.
이건 자네 형의 유품이라네.
대대장이 아치에게 건넨 것은 푸른 파자마 잠옷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사진 속 아그네스를 보자 지난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어릴 적 같이 뛰놀던 마을의 거리와 커서 데이트를 하던 호숫가의 숲.
그리고 틈만 나면 달려가던 그녀의 이층방까지.
하지만 아그네스가 형을 좋아한다는 말에 그는 두 말 없이 전선을 택했다.
형을 보지 않아야 형을 미워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그네스와 결혼해 행복하기를 빌었던 형이 이곳에 오다니.
왜 형은 사지를 스스로 찾은 것일까.
아치는 우연히 사진의 뒷면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형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사진 뒤에는 형이 쓴 필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랑하는 내 동생의 연인 아그네스!
아치는 형 앞에 무릎을 꺾은 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형이 후송된 후 그 또한 후방의 보급부대로 전출명령을 받았다.
아치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모두 형 덕분임을.
지루하게 끌던 휴전회담이 타결되었다.
아치는 군생활을 끝내고 귀국선을 탔다.
그리고 그립고 그립던 고향에 도착해 가족들을 만났다.
레슬리는 청년이 되어 있었고, 막내아들 로널드는 이마에 여드름이 막 돋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아치는 가족들과 모처럼 단란한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평화롭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막내 로널드를 볼 때마다 조셉 형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사를 보낸 캐나다.
참전한 대원 2만6791명 중 사망자는 516명.
그 중에 형이 포함된 것이 순전히 그의 책임인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아그네스와 결혼까지 하게 되자 그 죄책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형의 모든 것을 자신이 빼앗은 것만 같았다.
자괴감이 들 때마다 아치는 캔맥주로 혀를 헹궜다.
그래도 화약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잠이 들면 형이 참호 속으로 파고들기만 했다.
형, 오지 마! 여긴 위험하다구!
그렇게 소리쳐도 형은 꿈쩍도 하지 않고 서서 웃기만 했다.
죽을 수도 있단 말야!
형을 밀치다보면 형의 오른쪽 어깨와 팔이 그냥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다가오는 형을 향해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그런 악몽을 꾸고 일어나보면 그의 오른쪽 팔과 어깨가 아팠고 온몸은 긁힌 자국과 멍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몸부림치다가 침대나 벽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유독 그만 이렇게 전선을 헤매는 것인지 아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농장일은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당신,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참다못한 아그네스가 말했다.
난 괜찮아, 그저 악몽을 꿀 뿐이야.
그런 악몽을 매일 꾸는 게 문제잖아요.
아그네스의 말에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하지만 약을 장복해도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고맙게도 사랑스런 딸아이 데비(Debbi)가 태어났다.
데비가 태어나자 아치는 마치 어두운 곳을 헤매다가 밝은 곳으로 나온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문제는 젖소들이 이미 남에게 넘어간 다음이란 거였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면서 덩달아 캐나다에서도 건축 붐이 일었다.
이그나스역은 근처의 숲에서 벌목한 수송용 목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느 날, 역장이 아치의 집으로 찾아왔다.
역무원이 필요하다네, 그런데 자네 형 생각이 자꾸 나지 뭔가.
아치는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하겠다고 했다.
데비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할 처지였으므로 부러 그를 찾아준 역장이 고마울 뿐이었다.
역장이 찾아오기 전, 그는 입대 전의 탄광 일을 다시 해볼까 고민 중이었다.
다만 그런 결단을 망설인 건 기침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탄광만 떠올리면 기침이 터졌던 것이다. 그런 터에 형 덕분에 일터가 생겼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한 아치의 눈앞에 서 있는 역사를 보자 또 형의 모습이 생각났다.
마치 이 모든 순서가 형이 미리 마련해놓은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 탓일까. 아치의 발걸음은 저절로 형이 근무하던 이층 사무실로 향하고 말았다.
형의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은 아직 출근 전인지 보이지 않았다.
아치는 천천히 다가가 형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책상 위에 놓인 유리테이프를 발견했다.
테이프를 보는 순간 그도 모르게 테이프에 손이 갔다.
아치는 테이프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보았다.
창은 묘한 실금이 가 있었고 그 금을 따라 투명유리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붙인 지 제법 오래되었던지 접착력을 잃고 너덜너덜하게 일어나 있었다.
저걸 누가 붙였을까. 혹시 형이 붙인 것은 아닐까.
아치는 한동안 테이프를 쥔 채 멍하니 서서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테이프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말았다.
아치는 형 생각이 날 때마다 사무실에 들렀다.
특히 형이 죽은 10월이 다가오면 더더욱...
10월 9일. 그날을 어찌 잊을까.
형은 그날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후송된 지 사흘 만에 하늘나라로 전선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형의 유해는 10월 27일 유엔묘지에 안장되었다.
형의 자리에 앉으면 이상하게 자신이 아닌 형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앉은 날이면 이상하게 술 생각이 간절했다.
낮에는 기침으로, 밤에는 술로 속을 달래는 나날들.
그러다가 첫눈이 내린 날, 아치는 도저히 기침을 멎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폐에 구멍이 뚫려 심한 손상을 입었다는 의사의 검진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간이면 몰라도 폐질환이라니. 아치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역무원으로 일하면서 데비를 독립시켰고, 경제적으로 아내를 궁핍하게 만들지 않게 했다는 점이었다.
졸지에 그는 침대를 병상삼아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살아 있었지만 겨우 살아 있었고, 내일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어느 날, 캐나다 재향군인회에서 기별이 왔다.
한국에서 보은의 일환으로 참전용사인 그를 초청한다는 거였다.
그는 낯선 타향에 묻힌 형 생각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 무리인 중증의 몸으로 전락해 있었다.
데비, 네가 대신 가서 안부 좀 전해주고 오지 않으련?
네겐 또 한 사람의 아버지나 마찬가지니까.
데비는 알겠다며 선뜻 아비의 뜻을 받아들였다.
데비는 장거리 여행의 피곤함도 없는지 표정이 밝았다.
좋은 여행이었던 모양이구나.
네, 정말 아버지의 자랑스러움을 느낀 알찬 여행이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이것 좀 보실래요?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려고 제가 직접 찍어왔어요.
데비는 아치의 눈앞에 한 장 한 장 사진을 펼쳐보였다.
사진을 일별하던 아치가 놀라 물었다.
세상에, 이곳이 그 전쟁터 코리아란 말이냐?
눈앞의 정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쟁으로 민둥산이고 폐허였던 곳이 60여 년 만에 이렇게 고층빌딩에 정돈된 모습으로 바뀔 줄이야.
사진을 보는 내내 아치는 그곳의 자유와 평화를 지킨 것이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게 가장 값진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런 나라가 되었다면 저승의 형도 얼마나 뿌듯해 할까.
데비, 이 아비가 죽으면 조셉 형과 함께 있고 싶구나. 그렇게 해줄 수 있겠니?
데비는 아비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치는 마치 유언을 빨리 실행에 옮겨달라는 듯, 급히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손에 아주 오래된 낡은 테이프를 싸쥔 채. 데비는 유언대로 큰아버지 조셉의 무덤에 아버지의 유골을 합장했다. 유엔묘지 역사상 여섯 번째 합장이었고, 부부가 아닌 형제간의 합장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사람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형제로 태어나 전우가 되었다가 영원히 함께하다."
이상섭 소설가
▶작가 약력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 등단
-소설집 '바닷가 그집에서, 이틀' 등
-부산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 수상
박호 화가
▶작가 약력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역임
-현 야외수채화회 회장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정보산업진흥원
※ 후원: 유엔기념공원, 부산 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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