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0-1> [新 강서별곡]- 프롤로그-'5감 스토리'를 찾아서
대자연과 인간, 그 교섭과 응전의 수천년 터전
한장의 사진에 담은 부산 미래의 땅 강서구.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이 마치 어머니처럼 양손을 크게 펼쳐 거대한 김해평야를 감싸안은 모습이다. 가운데에 김해공항 활주로가 보인다. 강서문화원 제공 |
강서(江西) ; 낙동강 하구의 서쪽에 자리한 고장.
부산 강서는 서울 강서만큼 유명하지도, 번화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냥 '강서'라면 십중팔구 서울을 떠올린다.
외곽지, 시골, 신개발지, 낯설음….
이런 게 부산 강서의 이미지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들면, 이곳에 대자연과 인간의 숨막히는 교섭과 응전이 켜켜이 농축돼 있음을 알게 된다.
부산을 흔히 4포지향(산, 강, 바다, 온천을 품은 고장)이라 일컫지만,
강서는 한술 더 떠 5포지향이다.
산, 강, 바다에 더해 들과 섬이 있다.
강서의 스토리는 대부분 자연미인이다.
자연이 빚어 발효시켰기에 거부감이 없다.
'新강서별곡'을 노래하기 위해 '강서 5감 스토리'를 찾아 떠난다.
- 삼각주 감아드는 강
- 30개가 넘는 섬
- 서부산의 울타리 산
- 국토 남부의 곡창 들
- 그리고 바다
- 무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 강서 자연의 5요소
◇ 1감 : 강
강서는 강으로 시작해 강으로 끝난다.
거대한 델타지형에 크고 작은 샛강과 물길들이 형·아우·누이·동생 하며 혈맥처럼 이어져 흐르고 있다.
이들 천태만상의 물길은 죄다 남해로 들어 '큰 평화의 바다'(태평양)가 된다.
강서의 강은 예로부터 삼분수(三分水)·삼차강(三叉江)이라 불렸다.
낙동강, 서낙동강, 평강천을 이름이다.
이들 강으로 맥도강, 순아천, 조만강, 지사천 등이 어미 찾듯 모여든다.
모래섬에 붙어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부터 강서의 생활사는 홍수와의 투쟁사가 된다.
제방은 그러한 투쟁의 산물이다.
제방 길이로 보면 강서구는 국내 지자체 중 최다 최대라고 한다.
1930년대에 여러 갈래 낙동강을 하나로 만드는 일천식(一川式) 공사가 제방 조성의 서막이다.
이때 낙동강 본류가 구포~사하 쪽으로 바뀐다.
이후 둔치도 윤중제(가락동 둔치도 60여만평의 얼안을 감싸안은 제방), 명지 호안둑(신포, 하신, 순아 3구간의 긴 제방), 신호 호안둑(옛 염전 둑 길), 녹산 해안둑(성산 2구~녹산~송정을 잇는 해안제방)이 속속 조성됐다.
조선 말 축조된 산태방둑(김해 불암에서 가락 죽림까지)을 빼곤 모두 1930년대 일제강점기 수리조합 주도로 지어졌다.
제방과 함께 주민들의 이주, 개척, 개간도 본격화됐다.
◇ 2감 : 섬
강서는 섬의 고장이다.
줄잡아 30개가 넘는다.
이들 섬은 하중도(河中島)와 해중도(海中島)로 구분된다.
대저도는 낙동강 대 삼각주로서 지형적으로 섬이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 김해평야 대부분은 바다였다.
서낙동강의 둔치도, 중사도(中沙島)는 형태가 오롯한 하중도이며, 낙동강 하구의 진우도, 장자도, 신자도, 백합등, 새등은 살아 움직이는 섬들이다.
가덕도는 대표적인 해중도다.
신항이 들어선 후 섬 아닌 섬이 되었지만, 장엄한 자연미와 독특한 역사를 품고 어촌의 삶이
끈덕지게 유지되는 곳이다.
'가덕도가 있기에 서부산이 완성된다'는 말은 부산의 미래를 시사한다.
가덕도는 다시 눌차도, 호도(虎島), 대죽도(大竹島), 중죽도(中竹島), 미박도(未泊島) 토도(土島), 입도(立島), 흐레미, 구레미 같은 섬들을 자식처럼 거느리고 있다.
녹산수문의 노적봉(露積峰)은 원래 성산마을 뒷산 의성봉의 줄기였지만, 1934년 수문이 들어서면서
강과 바다에 면하여 솟은 섬처럼 바뀌었다.
강서의 '섬 아닌 섬'들은 저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 3감 : 산
가락국의 전설이 전해지는 강서구 대저1동의 칠점산. |
강서의 산은 서부산권의 울타리를 형성한다.
서쪽에서 달려온 낙남정맥의 산군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문득 멈추니
불모산-보개산-봉화산-칠점산-덕도산-연대봉이다.
풍수가들은 강서의 산들을 산경표의 개념을 동원해 낙남정맥의 끝맺음, 응혈처(凝血處)로 읽는다.
지세발복의 길지라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단,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
삼천리 장맥(長脈)과 천삼백리 장강(長江)이 마침내 달림을 멈추고
새 기운을 불어넣고 있으니 어찌 명당이 아니랴.
서부산을 대한민국 미래의 땅으로 읽는 건 확대해석인가.
보개산(478m)은 강서의 주산이다.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2000여년 전 가락국의 왕비가 된 허황옥이 김수로왕과 만나 초야를 보낸 곳이 보개산 자락의 명월사지(현 흥국사)라고 한다.
수로왕의 로맨스는 시공을 초월하는 원천 스토리가 될 수 있다.
가덕도 연대봉(459m)과 녹산 봉화산(278m)도 명산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연대봉은 국토 최후의 보루이자 전략 요충지. 봉화산의 원래 이름은 성화예산(省火禮山). 자연미가 빼어난
이들 산에 봉수대가 들어선 게 우연이 아니다.
성냥불을 대면 타오를 이야기 몇 자락을 끄집어내야 한다.
칠점산(七點山)을 놓칠 수 없다.
김해평야 중심부에 점점이 수놓인 7개의 봉오리를 일컫는 칠점산은 가락국의 거등왕이 신선을 불러 노닐고,
금(琴)을 잘 타 왕후가 된 김해 기생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또 정몽주, 안축 등 내로라는 문사들이 칠점산을 노래했다.
전설을 깨워 숨쉬게 하는 것이 숙제다.
◇ 4감 : 들
강서의 얼안은 넓고 깊다.
부산 전체 면적의 약 1/3이다.
강서의 핵심은 국토 남부의 곡창 김해평야 지대다.
들의 깊이는 수억년 지구지층의 퇴적 역사다.
혹자는 '김해평야가 어디 있지?' 한다.
김해평야가 아니라 '강서평야'라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1978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강서 땅이 됐기 때문이다.
헷갈리는 대로 놔두는 것도 스토리가 될 수 있다.
평야는 크게 북부의 과수지대, 중부의 도작지대, 남부의 소채지대로 나뉜다.
대저1동과 강동동 위쪽에서는 일제 때부터 과수 재배가 성행해 한때 대저 배는 '부'의 상징이었다.
"대저 배? 말도 마.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구포다리 들머리에 배 장사가 많았지.
'내 배 사소!'란 말 때문에 사람들이 배꼽을 뺐어. 허허, 세월 탓이제. 그 유명한 배를 나주에 뺏겨버렸어…."
강서문화원 배수신(73) 원장의 '배 타령'이 추억을 불러낸다.
곡창 김해평야도 이젠 옛말.
30여년 간 주민 삶을 옥죄었던 그린벨트가 풀렸고, 이곳에 360만 ㎡ 규모의 에코델타시티가 추진되고 있다.
낙동강 델타의 상전벽해를 예고한다.
◇ 5감 : 바다
가덕도 대항마을 인근의 일제 포진지. |
해륙수의 만남, 넓은 갯벌, 긴 해안선은 강서 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낙동강이 무진장 운반해오는 토사 덕에 완만하게 뻗은 간석지의 폭이
10리를 넘고, 그 속에 다종다양한 어패류, 해초류가 붙어 자라니 천혜의 철새 먹이터다.
바다와 접한 명지, 녹산, 천가동(가덕도)에는 지금도 어촌경제가 돌아간다.
가덕도 대항마을의 '숭어들이 축제'는 어로 전통을 지키면서 관광자원
으로 활용한 본보기다.
인근의 외양포 일제시대 포진지는 다크 투어리즘(어두운 역사를 소재로 한 관광)의 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곳.
하루빨리 외양포 100년 스토리를 써야 한다.
가덕도는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거가대교가 가덕도를 관통해 해저터널로 이어졌으니, 가덕도는 확실히 바다에 '빨대'를 꽂은 셈이다.
이야기의 심해 확장이다.
# 강서 지명고
- 물이 많아서 대저·평강·강동
- 새 땅이 많이 생겨서 신작로·신덕·신정
- 지명만 유심히 봐도 강서 스토리가 보인다
강서에는 강(江), 수(水), 사(沙)자가 들어간 이름이 유난히 많다.
대저(大渚, 큰 물가), 평강(平江), 강동(江東), 가락(駕洛, 큰 물가에 있는 나라), 명지(鳴旨, 먼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그리고 대사(大沙), 중사(中沙), 사리(沙里), 사두(沙頭) 등이 그렇다.
대부분 지형 형성과 연관이 있다.
'신(新)'자는 신생 지대를 말해준다.
대저1동의 신작로(新作路), 신덕(神德), 신촌(新村), 대저2동의 신정(新亭), 신흥(新興), 명지동의 신포(新浦), 중신(中新), 하신(下新), 녹산동의 신호(新湖), 신명(新明) 등이 그러하다.
자고 나면 없던 땅이 생기니 놀랍고 신기했을 법하다.
'덕(德)'자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덕도(德島), 덕두(德頭), 신덕(新德), 사덕(沙德), 덕포(德浦)에 '덕'이 들어가 있다.
강변 모래톱에 배를 대는 곳을 '둔덕' '언덕'이라 하는데, 여기서 따온 '덕'자에 풍성한 느낌을 주는 한자를 갖다
붙인 지명이 아닐까 추정한다.
대저, 대지(大地), 대사(大沙), 대항(大項), 대부(大富), 대평(大平)처럼 '큰 대(大)' 돌림 지명도 적지 않다.
신(新)자처럼 신기하고 놀라서 붙인 이름 같다.
정감이 가는 우리말 지명도 많다.
가덕도의 새바지는 해풍이 불어오는 '샛바람맞이'에서 나왔고, '목넘어(項越)'는 눌차의 작은 언덕고개를 말한다. 녹산의 '너더리'는 너덜강에서, '가리새'는 강과 강이 갈리는 그 사이를 뜻한다.
대저2동 설만(雪滿)은 눈처럼 흰 마을, 가락동의 식만(食滿·밥만개)은 먹을 것이 가득한 마을, 시만(詩滿)은 시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녹산포럼과 녹산주민대학을 이끌고 있는 황규성(78) 씨는 강서의 얼굴인 '서낙동강'을 색다르게 부를 것을
제안한다.
"강서 바깥의 사람들이 자기들 편의대로 '서낙동'이라 부르지만, 강서인들로선 마뜩찮은 이름이다. 현재의 구포~사하 간 본류를 (낙)동강이라 부르고, 대저수문~불암교를 북강(일명 뒷강), 불암다리~둔치도 하안을 서강(일명 죽림강), 장락포~신호대교를 남강이라 불렀으면 한다."
지역 스토리텔링으로 주목할만한 제안이다.
지난 2002년 '신강서기(新江西記·인쇄골)란 책을 통해 강서의 진면목을 담아냈던
황 씨는 "개발과 변화가 심한 지금이야말로 강서의 진짜 스토리를 발굴해 '텔링'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허황옥 넘실넘실 배타고 수로왕 찾아 온 곳이 바로 서낙동강 뱃길…강서 가락동은 가락국의 반가운 흔적
■ 아 가락, 가락사람들!~
-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뒤엉킨 '가락' 지명의 자취
- 강서의 역사도 뒤엉켜
'강서에 역사가 있나?' 이렇게 물으면 강서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진다.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그러나 강서의 뿌리가 김해에 닿아 있고, 그게 2000여년 전 가락국의 역사임을 알게 되면 생각이 바뀐다.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배를 타고 온 곳이 오늘날 서낙동강 일대의 뱃길이다.
북정패총, 죽도, 칠점산 유적은 고김해만, 즉 김해평야가 바다였을 때의 역사를 증언한다.
가락국 시대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6~7m 높았다고 한다.
강서구 가락동(駕洛洞)은 가락국의 희미한 자취다.
가락국이란 나라 이름을 작은 동(면)단위 마을 이름으로 끌어오다니!
잃어버린 옛 왕국의 영화를 지역 연고로 되살리고자 한 역사 향수, 애향의 발로로 이해하자.
김해와 강서구 전역이 옛 가락국 영역일진대, 단 한곳이라도 왕도의 지명이 지켜진다는 건 오히려 위안이다.
가락이란 지명이 문헌상에 보이는 것은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다.
이때 김해부가 김해군으로 고쳐진다.
그러다 1978년 대저·명지·가락 일부가, 1989년 가락면·녹산면이 경남 김해에서, 천가면이 의창군에서
각각 부산 강서로 편입되면서 역사가 뒤엉켜 버렸다.
김해는 바다를 잃었고, 강서는 역사를 잃은 꼴이 됐다.
서낙동강을 낀 가락동은 풍광이 좋고, 인심이 푸지면서도 풍류가 있는 고장이란 평을 얻고 있다.
죽도와 오봉산, 죽림강, 관수대(觀水臺), 금파정(錦波亭)은 풍류의 자취다.
죽도연운(竹島煙雲·죽도 대나무 숲의 저녁 연기구름)은 그러한 풍류의 구체적 표현이다.
이곳 죽림강의 해창나루에서 가락 오광대가 시작된다.
옛 가락국 시절, 김해 분산이 왕도의 진산(鎭山)이었다면, 죽도 오봉산은 왕도의 안산(案山)격이다.
가락국 허황옥의 뱃길을 이끌 때 죽도가 망대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가락동은 강서 역사의 혼이자 정체성이다.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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