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다시일어설 힘 북돋아주는 재기와 치유의 공간
죽도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죽도마을 전경. 사진 앞쪽이 한산도, 왼편이 용초도이다. |
- 민박집은 섬 통틀어 하나 뿐 자연 그대로
- 재기중소기업개발원으로 재활 명소
- 연 4회 100명의 재능기부 강사로 운영
경남 통영항에서 남동쪽 뱃길로 18㎞ 떨어진 죽도(竹島)는 예로부터 대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섬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물리칠 때, 병장기의 재료로 이곳 대나무가 사용될 만큼 군락을 이루었다.
한산도 본섬 아래에 위치한 이 섬은 한산도 부속도서 가운데 가장 낙후된 섬이다.
그만큼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섬이다.
■ 쉬어가는 힐링의 섬
섬에 도착하면 먼저 미로처럼 꾸며져 있는 방파제가 눈에 띈다.
태풍이나 높은 파도를 막기 위해 이중으로 방파제를 건설했다.
그 방파제 안에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어촌마을 이미지 그대로다.
선착장 아래에는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한다는
잘피(해수에 완전히 잠겨서 자라는 식물)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섬의 첫인상은 너무나 깔끔했다.
섬 선착장 입구에 자리 잡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화단이 잘 정비돼 있고,
500여 m에 불과한 도로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회관 왼편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고, 오른편으로는 해안도로가 깔렸다.
그 해안도로 아래 길게 펼쳐진 몽돌밭 바다는 눈이 시리게 푸르디푸른 빛을 띠고 있다.
파도가 밀려와 몽돌밭 사이로 스며드는 '자갈자갈'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세상 근심이 사라질 정도다.
마을 앞의 조그만 백사장은 어린아이들의 해수 풀장으로 적당하다.
마을 뒤편 언덕으로 가는 길에는 제법 널따란 연못이 있다.
섬 곳곳에 조그만 물 웅덩이가 있고 그 속에는 금붕어가 노닐고 있어
이 섬이 예전부터 물이 풍족한 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섬에서 구경거리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굳이 이 섬을 권하고 싶지 않다.
죽도는 자연 그대로의 섬이기 때문이다.
민박집이 한 채 있을 정도로 개발붐을 타지 않았다.
바다를 보고 마음의 평온을 찾기에 좋은 섬이다.
그래서 섬마을 주민들은 죽도를 '쉬어가는 힐링의 섬'이라 부르고 있다.
■ 회생과 보존의 섬
죽도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
섬마을 언덕배기에는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산초등학교 죽도분교가 폐교된 곳에 들어선 이 개발원은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에게 재활의 의지를 통해 재도전의 동기를 부여하는
힐링 캠프다.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이름나 있다.
부산 출신의 기업인 전원태(67) 씨가 사업에 실패한 후
죽을 작정으로 이 섬에 들어 왔다가 마음을 새로이 잡고,
재기에 성공한 후 이곳에 개발원을 설립했다.
연 4회 개최되는 힐링 캠프의 교육·숙식비는 전액 무료다.
비용은 전 씨의 사비와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충당하고,
100여 명의 재능기부 강사로 운영한다.
재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자기 성찰을 통해 재기를 다진다.
실제 캠프를 수료한 이들 중 상당수가 재창업에 성공했다.
죽도는 통영지역 570개 섬 가운데 '남해안별신굿'이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섬이다.
이 별신굿은 통영지역의 현존하는 마지막 동제로, 바다를 생계수단으로 살아온
마을주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다.
그래서일까, 마을 뒤편의 당산(堂山·수호신이 있다고 믿는 마을의 산이나 언덕)나무는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웅장하다.
매년 이 곳에서 열리는 남해안별신굿은 300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남해안 굿 양식과 민족문화의 모태로서 가장 원형에 가까운 전승 예술로 평가받고 있다.
■ 변화가 필요한 섬
죽도는 한산면사무소가 위치한 한산도 진두마을에서 뱃길로 불과 15분 거리다.
하지만 이곳을 왕래하는 도선이 없어 섬을 방문하기 위한 교통편은 열악하다.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2회(오전 7시, 오후 2시) 운항하는 카페리선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이 또한 직항하지 않고 한산도 부속도서를 돌고 돌아 오전에는 1시간, 오후에는 2시간가량 걸린다.
한산도 배편이 1시간에 한 번씩 운항(25분 소요)하는 것과 비교된다.
죽도행 운행 코스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지금도 섬 주민은 그 불편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죽도에는 45가구 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이다.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5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할 만큼 번성했다.
당시 해녀만 120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만큼 해산물이 풍족했던 섬이다.
많은 사람이 섬을 떠났지만 여전히 해산물은 넘친하다.
최근 들어서도 섬의 1종 공동어장에 불법 어선이 수시로 침범할 정도다.
곳곳이 낚시 포인트라 섬 주위 갯바위에는 연중 낚시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섬 주민들은 볼락, 농어, 참돔 등을 어획하는 어선 어업과 두릅, 시금치, 마늘 등을 생산하는
밭농사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볼락이 워낙 많이 잡혀 '볼락 섬'으로도 불렸다.
한편 통영의 570개 섬 가운데 죽도란 이름을 가진 섬이 또 있지만 이 섬은 한산도 앞에 있는 조그만 무인도다.
# "섬주민 위한 철부선 운항·탐방로 개설 필요"
■ 죽도 정지홍 이장
죽도의 정지홍(65·사진) 이장은 이 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감초'같은 인물이다.
이장은 물론 어촌계장, 남해안별신굿 죽도추진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섬의 유일한 민박집인 '죽도 민박'을 운영 중이다.
죽도 출신으로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출향인들로 구성된
'죽도 사랑 모임'을 결성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때 부산에서 농산물 유통 등 사업에 뛰어들어 꽤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07년 섬으로 돌아왔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원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다.
개발원을 설립한 전원태 씨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씨는 사업 실패 후 죽도에 들어와 당시 정 이장의 부친 집에 머물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부산으로 돌아가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왕래가 계속됐고, 그 덕에 당시 부산에서 사업 중이던 정 이장과도 자연스레 친분을 쌓아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정 이장이 원장을 맡은 후 개발원은 힐링 캠프로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열과 성을 다해 개발원을 관리한 덕택이다.
그가 섬으로 돌아온 후 섬은 활력을 되찾았다.
섬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점심시간 마을회관에 모여 공동 식사를 추진했다.
깨끗한 섬마을 가꾸기도 꾸준히 전개했다.
작은 일이었지만 노인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생겼고,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
'죽도 사랑'이 각별한 그는 최근 또 다른 감투를 썼다.
한산도 부속도서인 비진도, 용초도, 죽도에 철부선(작은 카페리선)을 도입 운행하자고 결성한
'5개 섬마을 해상교통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정 이장은 거창하고 무분별한 난 개발을 원하지 않고 있다.
다만 두 가지는 강조했다.
섬 주민들의 교통 편의 제공을 위한 '철부선 운항'과 개발원 연수생들과 섬을 찾는
탐방객을 위한 해안가 둘레길인 '죽도 탐방로 개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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