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부산 매력 공간] 살포시 내려앉아 '바다를 품어 안다'

금산금산 2015. 1. 21. 19:46

살포시 내려앉아 '바다를 품어 안다'

 

 

 

건축을 許한 자연…자연에 안긴 건축

 

 

 

부산 대변항 인근 이탈리안 레스토랑 '코티지'(cottage).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겸손히 자리 잡았다. 윤준환 사진가 제공

 

 

 

- 하늘·바다 맞닿은 곳에 자리 잡은
- 대변항 세련된 레스토랑 '코티지'
- 이기대 현대판 한옥 '오륙도가원'
- 인공의 美 살려 경관의 멋 배가


우리나라 전통 건축 공간이 주는 참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기본 삼종 세트인 병산서원과 소쇄원, 그리고 부석사를 소개한다.

서원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과 만대루에 내려앉은 자연을 본다.

그 너머 흐르는 강과 병풍처럼 아늑히 펼친 병산이 조화롭다.

숲 사이 개울이 흐르고, 바람과 빛이 노니는 정자(광풍각)가 어우러진 소쇄원. 막힌 듯 열린 낮은 담장은

자연과 집을 나누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더욱 북돋워 준다.

산세의 흐름을 따라 긴 진입로의 끝, 누마루 아래를 지나 당도한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서 넉넉함을 배운다.

뒤로 돌아선 순간, 소백산맥 자락이 구름과 함께 겹겹이 흘러내리는 장관 앞에서 넋을 놓는다.

이것이야말로 결을 따라 지은 건축 공간이 주는 맛이다.

자연은 인공을 허여(許與)하고, 인공은 자연을 품어 안는다. 바로 '조응'(照應)이다.



■ 잡고 바다 마중하는 '코티지'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을 스쳐 지방도를 따라 조금 가다 보면

세련된 외관의 건물을 갑자기 만난다.

작은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탈리안 레스토랑 '코티지'(cottage)이다.

뒤로는 낮은 산자락이 막고 섰고, 앞으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푸름의 천지. 작은 만(灣)처럼 양팔을 벌리고 있는 그 천혜의 땅에

이 건물이 있다.

산과 바다가, 뭍과 하늘이 만나는 경계의 땅에 인공물을 세우기는 자못 쉽잖다.

가능한 원지형의 특징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인공의 가미를 통해 경관의 멋이 배가 되도록 하는

 디자인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선조들이 만든 건축 공간의 매력도 바로 여기에 열쇠가 있지 않던가.


진입하는 도로에서 보면 건물은 지형에 파묻힌 듯 낮게 깔려 있다.

축을 조금씩 달리하며 한 줄로 잇댄 세 동의 건물은 각기 다른 각도로 바다를 대면한다.

마치 손에 손잡고 바다를 마중하러 나서는 모양새다.

공간의 시작임을 암시하는 산화철 입간판을 지나 가운데 동으로 진입하면

주방 내부가 보이는 오픈키친이 나온다.

거기서 진행 방향을 바꿔 양쪽의 홀로 갈라져 들어가는 공간 중첩의 수법은 내적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식당은 자고로 즐거움의 공간이어야 한다.

이 식당에는 즐거움을 북돋우기 위한 장치가 곳곳에 있다.

숨은그림찾기를 한번 해보자.

외쪽 경사지붕의 특성을 활용해 천정에 목재 들보와 서까래를 드러냈다.

작은 오두막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벽면에 막 쌓은 듯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돌쌓기 마감도 친근감을 더한다.

그뿐인가.

눈 닿는 곳마다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들로 디스플레이 했고, 모던한 벽난로도 눈길을 끌 만하다.

무엇보다도 큰 창 너머로 보이는 해송과 바위와 푸른 바다의 조합은 그 어떤 명화보다 아름답고도 낭만적이다.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 소리는 귓가에 속삭임이 된다.

잦아드는 자연의 촉감은 식사하는 내내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



◇코티지

위치 : 부산 기장군 죽성리

규모 : 연면적 575.13㎡

시설 : 레스토랑, 카페

건축가 : 고성호(PDM 파트너스)

www.cottage-restaurant.co.kr


'오륙도가원'은 뒤로는 산이 오롯이 감싸고, 앞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인미 사진가 제공

 


■  까치발로 바다 보는 '오륙도가원'

오륙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이기대 끝으로 가는 길목에 또 하나의 멋진 레스토랑이 있다.

경사진 계곡지형 일부를 성토해 만든 땅에 살포시 내려앉은 건물, '오륙도가원'이다.

뒤로는 산이 오롯이 감싸고, 앞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특별한 장소다.

진입하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건물의 모습은 정갈하게 지어진 현대판 한옥 같다.

'ㄷ' 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가운데는 마당을 두었다.

지형 지세와 풍광을 살리면서도 주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공물을 세우기 위해 우리 옛집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하나의 덩어리 건물이 아니라, 채나눔의 방식을 통해 기능을 구분하고 여느 공간이든 자연을 쉽게 접하도록 했다. 기단을 쌓아 올려 담 너머 마을을 보던 사랑대청과 같이, 이 건물은 저 너머 바다만을 눈에 넣으려는 듯 까치발을 하고 섰다.

건축 공간도 결코 무리함이 없어 보인다.

식사 하는 각 공간에서 건너편 동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으며, 또한 크고

작은 개구부를 통해 하늘도, 산도, 바다도 볼 수 있다.

건물 사이사이에 배치한 수공간(연못) 역시 자연과의 친밀감에 일조한다.

실내 마감재로 채택한 시멘트벽돌과 미송합판의 질감도 검박한 순수미를

느끼게 한다.

같은 맥락으로 건물의 지붕 마감재도 고급스러움을 배제하기 위해

슬레이트 골판재로 덮었다.

건축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마당 역할을 하는 중앙 덱에 나오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촘촘한 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뒤로 흐르는 산과 바다의 결이 그렇고, 땅과 교호하는 하늘, 빛, 바람의 수직 결이 더불어 정서를 자극한다.

거기에 에둘러 배치된 건물의 높이와 너비는 심리적 안정을 느낄 만큼의 비례로 잘 정돈돼 있다.

마당 전면으로 펼쳐놓은 넓은 잔디마당은 뛰고, 거닐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물빛과 하늘빛과 초록의 빛에 조응하니 어찌 마음이 흥겹지 아니하겠는가.

 

 

◇오륙도가원

위치 : 부산 남구 용호동

규모 : 연면적 592.41㎡

시설 : 레스토랑, 카페

건축가 : 정재헌(경희대 건축학과)

http://oryukdo.fordining.kr


■ 연의 결을 보살피고 돋우는 건축

두 건물은 모두 자연의 품에 안겨있고, 공간은 자연을 다시 품으려 한다.

자연을 이기려 들지 않았으며, 눈길을 사로잡고자 안달하지도 않는다.

자연의 일부가 됨으로써 비로소 가장 편안해 보이고, 땅의 가치는 본래보다 더 높아졌다.

시각을 유혹하는 요소가 없기에 소탈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만해 보이진 않는다.

멋스러움을 삼키듯 내뱉는 내공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맛깔나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의 칼칼한 소리에

매료되는 것 같은.

이렇듯 결의 기운을 잘 보살피고 돋운 공간에 가면 덩달아 기운이 난다.

아쉬움을 꼽자면, 병산서원 소쇄원 부석사와 같은 그런 자연스러운 혼연일체(조응)는

아니라는 점이다.

거기에는 현대적 재료가 가진 차가움과 검박함을 표현하려는 건축가의 작위가

아직 묻어나기 때문이다.

무리한 요구인 줄 알지만, 조금만 힘을 더 뺏으면 좋겠다.

인위적인 양태보다는 몸에서 배어 나오는 인품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건축가는 또 얼마나 고뇌와 경험이 뒤따라야 할까.

다시금 선조의 건축에 경애(敬愛)를 표한다.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