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기백산'
누룩덤 암봉 따라 진양기맥 장쾌함이
산세깊고 계곡좋은 문경새재와 닮은 꼴
정상서면 거망산에 남덕유까지 한 눈에
용추계곡 1000m급 명산 4곳의 들머리 |
경남 함양의 용추계곡과 경북 문경새재.
머나먼 두 계곡을 화두로 끄집어낸 까닭은
앉은 형세가 여러모로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는 정설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부터 거창 함양의 유서깊은 3대 계곡 중 하나인 용추계곡은
금원 기백 거망 황석산 등 1000m급 이상의 고봉준령에 의해
말발굽 모양으로 에워싸져 있는 깊고 깊은 골짜기다.
백두대간 남덕유가 넘치는 기운을 감당못해 남동쪽으로 가지 하나를 더 뻗어내려
솟구친 이들 산은 용추계곡 좌우로 개별 산행이 가능한데다
무박2일 종주산행까지 할 수 있어 많은 산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또한 깊기로는 한 수 위.
그 유명한 주흘산과 부봉 그리고 국토의 등뼈 백두대간 봉우리인 마패봉 조령산으로 둘러쳐져 마치 자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깊은 협곡이다.
새재길 좌우의 웅장한 산들은 그 자체만으로 멋진 산행코스가 열려 있는데다
1박2일 정도면 종주산행이 가능하다.
계곡과 나란히 내달리는 계류 또한 절경이다.
용추계곡 지우천에는 10m 높이에서 내리꽂히는 엄청난 물소리의 용추폭포를 비롯, 용소 꺾지소 삼형제바위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고, 영남의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넘은 새재길 계곡에도 제2관문 아래
45m의 3단폭포인 조곡폭포를 비롯, 용추 꾸구리바위 등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현재 문경새재는 도립공원, 용추계곡은 기백산과 함께
기백산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재밌는 사실은 1970년대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독 문경새재만은 '포장하지 말라'고 지시해 흙길로 남아 있다는 점.
그는 사관학교 입학 전 잠시 문경초등에서 교편을 잡아 누구보다
문경새재를 아꼈다고 전해온다.
반면 용추계곡은 용추폭포 위 용추자연휴양림까지 포장길로 차가 다녀
편리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즈넉한 맛이 덜하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만일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 함양이거나 용추계곡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문경새재처럼 포장이 안된 채 체계적 보존이 이뤄졌더라면 용추계곡
또한 도립공원 이상의 휴양지로 각광받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용추계곡이 필요 이상의 개발이 진행됐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분명한건 용추계곡을 둘러싼 금원 기백 거망 황석산이 아직도 전국의
산꾼들로부터 애정 공세를 듬뿍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특정 지점이 1000m급 4개 명산의 들머리가 되는 곳은 용추계곡밖에 없으리라 확신한다.
용추계곡 지우천의 시원한 계류. |
이번 주 산행지는 기백산(箕白山·1331m).
함양과 거창의 경계에 위치해 예부터 두 지역의 날씨변화를 제일 먼저 알려줘
'비의 징조를 안다'는 의미의 지우산(智雨山)으로도 불렸다.
장쾌한 능선길에선 1000m급 고봉준령이 조망되고
특히 정상 부근의 누룩덤이라 불리는 암봉은 기백산만의 자랑이다.
산행은 함양 안의면 용추사 주차장~기백산 등산로 안내판~(도수골)~지능선~전망대 바위~기백산 정상~잇단 누룩덤(책바위)~시흥골·금원산 갈림길~시흥폭포~황석산장~거망산 들머리(지장골) 지나~용추사~용추폭포~용추사 주차장 순.
순수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안팎이며 등산로와 이정표는 정비가 잘 돼 있어 길 찾기는 전혀 문제없다.
주차장에서 길은 두 갈래.
용추사 가는 길과 용추자연휴양림 가는 길이 그것.
휴양림 또는 마하사 방향으로 간다.
5분 뒤 우측에 기백산 등산로 안내판.
정상까지 4.2㎞.
용추계곡의 지계곡인 도수골 등산로의 시점이다.
기백산 정상에서 누룩덤을 지나 만나는 전망대 바위에서 본 주변 산세. 왼쪽 암봉이 1279봉, 그 뒤로 금원산이 구름에 살짝 가려져 있고, 현성산은 그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금원산과 현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사면에 금원산 자연휴양림이 위치해 있다. 사진 가운데 소나무 왼쪽의 흰 바위는 금원암이다. |
돌이 유난히 많은 이 길은 처음엔 숲터널, 이후엔 물과 인접해져 이른바
계곡산행으로 이어진다.
국립진주산업대와 함양군이 매달아 놓은 나무이름 팻말이 눈길을 끈다.
20분 뒤 800고지 쉼터를 지나면 계류와 접하고 일순간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닿는다. 힘찬 물소리와 매미울음, 그리고 명산에서 느껴지는 그윽한 분위기가 산행의 맛을
더해준다.
계곡을 건너 950고지의 119안내판에서 급경사 산죽길을 헤치고 오르면 지능선.
들머리에서 1시간10분. 정상까지 1.3㎞.
이제 오르막의 연속.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하자.
발밑에는 며느리밥풀꽃 흰여로 긴산꼬리풀 청여로가 눈에 띈다.
'정상 0.2㎞' 팻말이 서 있는 지점에 닿으면 조망이 확 트인다.
좌측 황석 거망산이, 우측에는 남덕유에서 출발, 월봉 금원 기백(평전) 황매 자굴산을 거쳐
진양호에 잠기는 도상거리 160㎞의 진양기맥의 장쾌한 능선이 펼쳐진다.
8분 뒤 전망대 바위에서 주변 산세를 대충 훑고 다시 8분 뒤 정상에서 주변 조망을 꼼꼼히 살펴보자.
조망안내판에는 황석 거망산만 표기돼 아쉽다.
좀 더 방대하게 살펴보면 거망산 우측 뒤 깃대봉, 거망산 우측으로 오목한 은신치,
그 밑으로 무학대사가 수도했다는 은신암,
그 뒤로 월봉산 남덕유 삿갓봉이 보이고, 안내판 좌측에 기백평전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행은 좌측 누룩을 포갠듯 켜를 이룬 암봉인 누룩덤이 가까이 보이는 금원산 방향으로 간다.
정상에선 금원산자연휴양림 가는 길도 열려 있으니 참조하길.
누룩덤이 없으면 기백산은 아주 심심한 산이 될 뻔했다.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누룩덤은 금원산까지 이어지는 장쾌하지만 밋밋한 능선에
일종의 매듭과 같은 역할을 해 한 마디로 산의 품격을 높여준다.
누룩덤에 올라서면 정면에 금원산 정상과 금원암, 그리고 우측에 서문가바위로
유명한 하얀 암봉이 뚜렷한 현성산도 확인된다.
누룩덤에 오를 자신이 없으면 왼쪽 아래 열린 길로 에돌아가도 상관없다.
작은 누룩덤을 또 하나 지나 20여분 숲터널을 내달리면 갈림길.
직진하면 금원산.
왼쪽길로 내려선다.
시흥골로 본격 하산길이다.
길이 다소 험하다.
왜 도수골로 올라 시흥골로 하산하는지 이유를 알겠다.
험한 반면 모싯대 자주꿩의다리 등 야생화와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수목과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가 아주 인상적이다.
산길은 계류와 함께 달리지만 거리가 제법 돼 접근이 쉽지 않다.
다만 1㎞ 남은 지점(팻말)에서 와폭인 시흥폭포가 볼 만하다.
여기서 숲을 빠져나오는, 사실상 산행종점인 사평마을 황석산장 앞까지는 15분 걸리고,
철제 구름다리를 건너 용추사 용추폭포를 돌아본 후 주차장까지는 30분 소요된다.
# 떠나기전에
용추사 백일홍 한창…물레방아의 고장
용추사 주차장 앞 일주문 현판에는 뜻밖에 '덕유산 장수사 일주문'이라고 적혀있다.
487년 신라 소지왕때 각연대사가 창건, 원효 의상을 비롯, 조선시대 무학 서산 사명 등
여러 고승이 수도한 이름있는 절이었지만 한국전쟁때 지금의 일주문만 남고 불에 탔다.
지금의 용추사는 원래 장수사에 딸린 작은 암자였지만 장수사가 일주문만 남고 타버리자
지난 1959년 중건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용추사에는 지금 백일홍이 한창이다.
용추사 입구 우측의 백일홍은 지나는 길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 백일홍 위로 보이는 경사진 피바위도 일품이다.
사진을 찍으면 한 화면에 들어온다.
구렁이와 처녀의 애절한 전설이 전해져오는 피바위는 바로 아래 용추폭포에서 봐도 한 화면에 잡힌다.
언제나 유량이 풍부한 용추폭포는 폭포 아래 단 몇 분만 앉아 있어도 옷이 다 젖을 만큼 물방울이 분무된다.
흠이라면 숲에 싸여 있어 무지개는 볼 수 없다는 점.
함양은 물레방아의 고을. 연암 박지원이 청에 다녀온 후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부임해
용추계곡 입구 안심마을에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들면서 실용화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용추계곡 입구에 '연암 물레방아공원'을 조성, 실제로 대형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 교통편
거창터미널서 내려 용추사행 버스를
용추계곡은 함양에 속하지만 버스는 거창에서 오간다.
참고하길.
부산서부버스터미널(051-322-8306)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8시30분, 9시20분, 10시에 출발한다. 2시간40분 소요.
들머리인 용추사행 서흥여객(055-944-3720) 군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매시 50분 출발, 1시간 간격으로 있다. 50분 걸린다.
주의할 점은 군내버스 정류장 찾기.
거창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다 두번째 사거리에서 중앙교를 건너 중앙시장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터미널에서 10분 거리.
용추사에서 거창터미널행 버스는 매시 50분 1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오후 6시50분.
거창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4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6시40분.
만일 거창서 막차를 놓치면 서대구로 가서 지하철을 이용, 동대구역으로 이동한 후 부산행 열차를 이용하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 지곡·안의IC~거창 안의 24번국도 좌회전(용추계곡 기백산 방향)~김천 거창 24번국도 직진~용추계곡 7.3㎞~용추주유소서 좌회전(용추자연휴양림 9㎞, 기백산 6.4㎞)~용추사 주차장 순.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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