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모후산'
하염없이 눈길을 걷고 또 걷다
고려 공민왕, 홍건적 피해 왕비 태후 모시고 피난온 산
겨울철 특히 눈이 잦아 전국 산꾼들 동계 산행지 각광
유마사~정상~뱀골 원점회귀…걷는시간만 4시간20분
산이름도 곰곰이 살펴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이름 속에 때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생긴 모양이 이름 속에 담겨 있는 경우.
바위들이 또아리를 튼 것처럼 얹혀 있어 명명된 광양 백운산 또아리봉,
주능선이 덕성스럽고 너그러운 무주 덕유산,
두 개의 암봉이 나란히 솟은 청도 쌍두봉 등이 대표적 사례.
산세가 너무나 가팔라 곰이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일명 곰바우산으로 불리는 웅석봉이나
산이름 앞 숫자만큼 기암괴봉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고흥 팔영산, 영덕 팔각산, 진안 구봉산 등도
광의의 이 부류에 속한다고 봐도 무난할 듯하다.
광양 백운산, 광주 무등산에 이어 전남서 세 번째로 높은 모후산은 겨울철에 특히 눈이 많이 내려 눈꽃 산행지로 손꼽힌다. 사진상의 최고봉이 정상이다. |
산이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광주 무등산(無等山)은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다는 의미이고, '쇠 금(金)' 자에 '돈 전(錢)' 자를 쓰는 순천 금전산은
실제로 풍수지리학자들에 의해 돈을 부르는 기운이 있다고 입증됐다.
전설이나 설화가 숨은 산이름도 있다.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명명된 적악산이 꿩의 보은설화가 알려지면서
'붉은 적(赤)' 자 대신 '꿩 치(雉)' 자로 대체된 치악산이 그렇고,
17세의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고 수련하던 중 단칼에 쪼갰다는 전설 속의 큰 바위가 정상 한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경주 단석산(斷石山)도 여기에 속한다.
이번 주 소개하는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가르는
모후산(母后山)도 굳이 분류하자면 이 범주에 속할 듯싶다.
과연 어떤 산이기에 '임금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 고려 공민왕이 전설 속에 숨어 있었다.
원래 이름은 나복산(羅山)이었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와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남짓 머물렀기 때문에 모후산으로 명명됐다.
그만큼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본 모후산은 이웃한 조계산이나 무등산마냥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전형적인 육산이다.
여기에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푸르디 푸른 주암호의 풍광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산행은 화순군 남면 유마리 유마사 주차장~산막골~용문재(헬기장)~모후산(919m)~중봉~뱀골~철철바위~
유마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
이번 산행은 무릎까지 푸욱 빠지는 눈꽃산행.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이며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 길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모후산은 광양 백운산, 광주 무등산에 이어
전남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구례 쪽 지리산 제외).
덕분에 눈이 많이 내려 산꾼들이 특히 겨울철에 많이 찾는다.
모후산(유마사)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주차장에서 출발, 포장로를 따라
가면 유마사 경내로 진입하는 길이 잇따라 좌측에 둘 열려 있다.
하나는 일주문을 통해 걸어가는 길, 또하나는 차로 진입하는 길이다.
절 구경은 하산 뒤로 미루고 등
산안내도가 보이는 포장로를 계속 따라 간다.
대숲과 나목 사이로 보이는 유마사를 지나면 물소리가 들리면서 첫 번째 갈림길.
이정표 옆에 안내 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오른쪽은 집게봉 방향, 산행팀은 '용문재·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주변은 방금까지 눈이 내린 것처럼 온통 순백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계곡(산막골)을 건너 본격 산으로 들어선다.
도중 농짝만한 바위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린다.
첫 갈림길서 10분 뒤 두 번째 갈림길을 만난다.
계곡 합수점이다.
우측은 철철바위 중봉 방향, 산행팀은 물길을 건너 정상(3.3㎞)을 향해 좌측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 나목 사이로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보인다.
1시 방향 최고봉이 모후산 상봉이고 그 우측으로 중봉 집게봉이다.
철철바위로 가는 또 한 번의 갈림길은 무시하고 용문재(0.6㎞)를 향해 본격 오른다.
이 구간은 응달인 데다 심한 경우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있어 발걸음이 점차 더뎌진다.
다행인 점은 폭설을 대비해 등로를 따라 연두빛 노끈을 이어놓아 길찾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주변 숲이 생기처인듯 유난히 새 울음소리가 맑게 다가온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30분 정도 눈밭을 헤치면 마침내 용문재. 산불초소와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헬기장이라지만 눈에 덮여 확인할 길이 없다.
왼쪽은 남계리로 이어지는 종주길, 직진하면 동복면 유천리,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이제 능선 방향이 동서로 바뀌어 북서풍이 콧잔등을 바로 때리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뽀드득 소리내며 걷는 이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아! 온 산을 불태우는 진달래가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눈이 힘겨워 고개를 푹 숙인 산죽도, 구름 한 점 없는 유난히 푸른 하늘도,
수증기의 결정들이 얼어버린 눈꽃의 일종인 상고대도 온통 웃고 있는 듯하다.
북서풍이 휭하니 몰아치거나 눈꽃터널 속에서 혹 발을 잘못 내딛어 소나무 가지라도 건드리면
일순간 눈가루가 얼굴이며 목덜미를 감싸 안는다.
소위 말하는 눈꽃비다.
정신없이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부드럽게 한 굽이 올라서면 시야가 트인다.
이제 둥그스름한 정상이 손에 잡히고, 우측 발아래로 유마사 쪽 들머리도 확인된다.
어른 키보다 큰 정상석이 서 있는 상봉에는 용문재에서 1시간이면 올라선다.
거침없는 조망이 또한번 산꾼들을 감탄케 한다.
이정표를 정면으로 보고 11시 방향 지리산, 1시 광양 백운산, 9시 백아산, 7시 무등산 등 호남의 명산들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산에 갇힌 듯한 유난히 푸른 주암호 뒤 3시 방향으로 이웃한 조계산이 보인다.
하산은 우측 집게봉 방향으로 내려선다. 급경사 내리막길이어서 주의를 요한다.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한 새하얀 봉우리 둘 중 앞엣 것은 중봉, 뒤쪽은 집게봉이다.
'좌 주암호, 우 모후산'을 감상하며 화려한 눈길을 35분쯤 가면 중봉 삼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면 집게봉(1㎞), 산행팀은 유마사로 이어지는 우측 급경사길로 내려선다.
집게봉에서도 원점회귀가 가능하지만 출발지가 먼 부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봉이 적당할 듯 싶다.
체력 좋은 장정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17분이면 계곡(뱀골)에 닿는다.
여름철 특히 뱀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물을 건너 좌측으로 계곡과 나란히 발걸음을 옮긴다.
눈 덮인 돌길이라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10여분 뒤 눈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커다란 둥근 바위 위로 와류가 흐른다.
철철바위로, 발밑에 조그만 팻말이 서 있다.
과거 물이 '철철' 흘렀지만 요즘엔 '찔찔' 흘러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바위 위 소나무도 무척 운치있다.
철철바위에서 계속 계곡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면 앞서 지나왔던 계곡 합수점 갈림길에 닿고,
여기서 12분이면 유마사로 이어지는 갈림길로 접어든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5분이면 경내에 들어선다.
절에서 주차장까지도 역시 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한국전쟁 땐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 있던 곳
모후산 정상에 서면 주암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주암호 뒤론 순천 조계산. |
모후산은 한때 모호산(母護山)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이곳 화순땅 동복현감을 지낸 서하당 김성원이
정유재란 때 68세의 나이로 90세 노모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싸우다 전사한 산이었기 때문이다.
모후산 유마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었던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다.
모후산 남릉의 집게봉 9부 능선에는 지금도 빨치산이 파놓은 참호가
남아 있으며, 올해부터 군은 이를 복원할 계획이다.
참고로 이보다 북쪽에 위치한 백아산은 조밀한 암벽이 천연
요새 역할을 해 빨치산 남부군 전남도 사령부가 있었다.
두 산 모두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이 잇따랐다.
결국 화순땅은 무등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과 빨치산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해서,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던 백제 천년고찰 유마사는
한국전쟁 때 모두 전소됐으나 근래에 들어 복원된 것이다.
고려시대 땐 호남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던 유마사는 지난해 호남 최초로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해
승가교육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마사에선 보물 1116호인 해련부도와 일주문 인근의 보안교를 빠뜨리지 말자.
당에서 건너온 요동태수 유마운의 딸 보안이 치마폭에 싸 놓았다는 전설 속의 돌다리이다.
들머리 산막골에는 오래 전 15가구가 모여 약초를 재배하며 살았다고 전해온다.
등로 주변의 숯가마터와 복원 계획 중인 산약초 재배움집이 그 흔적이다.
모후산은 고려(개성)인삼의 시배지로 유명하다.
정확한 위치는 모후산 정상에서 산행팀 경로와 반대방향인 북릉 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쓴 '증보문헌비고'와
개성부 유수를 지낸 김이재의 '중경지(中京志)'에 표기돼 있다.
3년 전 이곳에선 120년 된 2억5000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 8뿌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모후산 하면 '동복 삼복(三福)'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 진상돼 당시 동복현감의 골칫거리였다고 전해온다.
복청(福淸·모후산 토종꿀) 복삼(福蔘·천종산삼) 복천어(福川魚·동복천의 민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로 나와 광주 주암 방면 우회전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연계 버스 시간이 맞질 않아 당일 산행은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광주 주암 우회전~
광주 동복~운알터널~화순군 동복면~광주 동복~동복터널~벌교 보성 좌회전~동복 벌교~벌교~
화순 동복중 입구~보성 벌교 좌회전(굴다리 지나자마자)~15번 국도~유마사 좌회전~
모후산 주차장(유마사 관광안내소)
화순 '모후산'...
조계산 품에 안긴 송광사 한눈에
전남 화순군과 승주군의 경계지점에 솟은 모후산(9백18.9m)은
내륙에 있는 여느 산과는 달리 퍽 신선감을 주는 산이다.
보성강의 푸른 물결이 사행천을 이루며 휘휘 돌다가
주암댐을 이루고 그 물결위에 산자락을 드리우고 있는 모후산.
정상에 서면 첫 느낌이 육지 한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섬으로
와 닿는다.
이 산의 등산코스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교통이 불편해
산행의 들머리를 유마사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절에서 수통을 채우고 정문 오른쪽 담벽 아래를 따라가면
채마밭을 지난다.
잠시 후 대숲을 지나 북동쪽의 계곡을 이리 저리 건너 뛰는 산판길이 뚜렷하고
20여분이면 산막골과 뱀골의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편의 뱀골을 버리고 큰 줄기의 계곡으로 직진하면
산막골로 접어든다.
길은 산죽숲 사이로 이어지면서 경사도 점차 가팔라진다.
오른편으로만 따라 가다가 잣나무숲을 지나 비탈길을 올라서면
용문재의 헬기장이다.
유마사에서 1시간 거리.
용문재에서 정동방향의 오른편 굵은 능선을 타면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역시 산죽투성이의 등산로지만 사방이 툭 트이면서
전망이 좋아 지루함을 달래준다.
용문재에서 50여분이면 산정에 닿게 되는데
정상에 거의 다 이르면 묘지가 있고 곧바로 산정에 서게 된다.
산정에는 헬기장이 닦여 있고 주변 조망도 그저 그만이다.
화순군내에서는 제일 높지만 북서쪽으로는 우람한 산세의
무등산이 버티고 있다.
또 남동쪽으로는 주암댐 건너 조계산이 솟아 있고
그 품에 안긴 고찰 송광사도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은 8백m봉을 지나 집게봉∼뱀골∼유마사로 되돌아 오면 되는데
총 산행 시간은 5시간쯤 걸린다.
다만 하산시 유의해야 할 것은 집게봉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10분쯤 내려가면
만나는 묘지에서 뱀골로 내려서야 된다.
이 외에도 후곡마을∼농바위∼집게봉∼정상,
평촌∼용문재∼정상, 유천∼유치재∼정상 등으로도 산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교통의 불편은 물론 길찾기도 힘들다.
이곳은 교통사정이 좋지않아 광주쪽에서도 찾는 사람이 드물어
한적하기 이를데 없는 산이다.
부산→광주는 사직동 고속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이용.
광주에서는 고속터미널에서 117번 시내버스를 타면 화순을 거쳐
종점인 사평에서 내려 사평→유마사는 택시를 이용해야 된다.
주변에서의 숙식은 어렵고 소형차는 유마사까지 갈 수 있다.
<황계복·석봉산악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