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⑤ 부용동, 영생유치원과 항서교회에서
"동화 듣기·사탕 맛 홀려 교회 예배 개근"
대한예수교 장로회 항서교회는 1905년에 설립됐다.
현재의 '놀이아 유치원'의 전신인 '영생유치원'이 항서교회에 딸려있었다.
주말이 되면 유치원생들은 예배에 참가해야 했다.
사진은 부산 서구 부용동에 자리잡고 있는 항서교회의 모습.
1938년, 여섯 살 먹던 그해에 나는 유치원을 다녔다.
그 당시 유치원은 흔치 않았다.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의 중구와 서구에 들게 될,
그 일대의, 그 넓은 지역에 조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단 한 곳뿐이었다.
하긴 초등학교도 하나뿐이던 시절이라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 이름은 '영생유치원'이라고 했다.
부민초등학교 뒤편의 부용동 2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주택가의 한 가운데라서 한적한 곳이었다.
유치원의 오른쪽을 흐르고 있던 제법 폭이 넓은 개울의 물은 사시사철 정갈했고
맞은편에는 탱자 울타리가 둘러 처진 꽤나 넓은 과수원이 있었다.
도시 치고는 꽤나 맑은 전원 풍경이 곱게 느껴지기도 했다.
개울·과수원 있던 유치원, '전원 풍경' 자랑
가끔 수업 빼먹고 도청 정원서 만화 읽기도'
1935년 항서교회 예배당 앞에서 찍은 신도들 기념사진. 항서교회 제공
·1905년 설립된 항서교회
지금은 '놀이야유치원'이라고 이름이 바뀐, 그 옛날의 영생유치원은 항서교회에 딸려 있었다.
우뚝한 교회 뒷마당에 다소곳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도 당당히 현장에 위치하고 있는 항서교회는 1905년에 창립된, 부산서 가장 오래된 장로교회다.
그러니까, 부속 유치원의 역사도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울 것 같다.
부평동 네거리의 우리 집에서 유치원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집을 나서서는 보수동 3가의 주택지를 거쳐 보수천 다리 건너서 다시 부용동으로,
그나마 서대신동의 산비탈에 거의 다 간 지점까지라 여섯 살짜리 꼬마에겐 버거운 거리였다.
근 십리, 그러니까, 4㎞에 가까웠다.
1937년 3월 영생유치원의 제2회 졸업식 장면. 항서교회 제공
·당시 유치원생 워낙 드물어
그 무렵, 유치원 학생은 워낙 드물었다.
이미 말한 대로 지금의 부산 중구와 서구를 통틀어서 겨우 30명가량이 전부였다.
하지만, 다행히 유치원 다니는 길에서 늘 혼자는 아니었다.
훗날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교수가 된, 김일곤의 집이 보수동이라서 중도에 만나서는 함께 다니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워낙 멀다 보니, 아주 가끔, 무단결석을 하고는 중간의 경남도청의 정원에 들러 만화를 읽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온 생애에 걸친 최초의 역사적인 '사보타주'였다.
그러나 유치원 갈 적마다, 가지고 다니던, 수첩 같은 작은 출석보에 도장을 받아 오게 되어 있었기에
오랜 시간 빼먹을 수는 없었다.
유치원 일과를 마치기 전에 가긴 가야 했다.
꼬맹이치고는 영리했던 걸까? 아니면 여우 같았을까?
스스로 물으면, 혼자 빙긋하게 된다.
한데, 주일이 되면 항서교회에 가서 우리들 유치원생만을 위한 예배에 참가해야 했다.
예배를 마치고 치러진 행사가 더 좋았다.
일본말로 '가미시바이'라고 하던 만화로 된 동화를 목사가 연사(演士)가 되어서 읽어주는 재미와
그때마다 얻어먹던 캔디 맛에 홀려서는 개근을 했다.
·"너희들, 계속 떠들면 지옥 간다"
그런 중에 어느 날, 사달이 났다.
기도하기 전 꼬맹이들이 왁자하게 떠들어 댔다.
막 들어선 목사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도, 그날따라 무슨 곡절인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목사가 소리쳤다.
'너희들 계속 소란을 떨면 말이야 지옥으로 바로 간단 말이야!'
그러면서 목사는 연단 옆의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밑으로 큰 구멍이 나 있어.
덮어둔 뚜껑을 열고 거기 너희들 가운데, 떠드는 녀석을 밀어 넣으면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게 돼!'
나는 무서웠다.
파랗게 질렸다.
그 뒤, 주일날 교회 문 앞에 서서 연단을 바라보기만 해도 다리가 떨렸다.
다시는 교회에 가질 못했다.
그것은 나의 온 생애에 걸쳐서 유일하게 경험한,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 이를테면 '천당 추방'이 되었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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