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전찻길에서 꼬맹이의 장난

금산금산 2011. 8. 9. 21:54

[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③ 전찻길에서 꼬맹이의 장난

"어린 시절 전차는 장난감 같은 친근한 벗"

 

 

                              부산시내에 대중교통수단인 일반전차가 개설된 것은 1915년 10월이었다.

                          이듬해 10월 대청동선(부산역-부산우체국-보수동사거리-현 토성동)이 개통됐다.

            사진은 1930년 대청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현 부산근대역사관) 앞을 지나는 전차의 모습.

                          아이들에겐 그런 전찻길이 신명난 놀이터였다.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 소장 제공

 

요즘 부산의 젊은 세대들은 반세기도 더 전의 과거에 부산 시내에 전차가 다녔다고 말하면 믿을까?

그 정도가 아닐 것 같다.

아예 '전차 그게 뭔데?'하고 의아해 할 것 같다.

심지어, '전차라니? 아, 탱크'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노면 전차'라고도 하는, 전차(電車)는 전기로 달리는 차다.

공중에 달린 전깃줄에서 전력을 받아 레일 위를 달리는 것이 특색이다.

주로 시내의 큰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일제 강점기 전차, 대도시 상징

일제 강점기 전차가 다녔던 도시는 경성(京城), 평양 그리고 부산, 단 세 곳뿐이었다.

전차는 대도시의 상징이었다.

 

1930~40년대 필자가 유소년이던 시절, 부산의 전차 노선은 제법 부산했다.

노선은 몇 가닥으로 나뉘어 있었다.

 

 

레일에 귀대고 진동 즐기는 놀이 유행

차창 밖 동래읍 '끝없는 연꽃밭' 장관

 

 

대신동 '구덕운동장' 앞에서 시작해 부민동, 토성동, '나가테'(지금의 광복동)와 부산역 앞을 거쳐서

종점인 서면까지 가는 것이 가장 길고 요긴한 노선이었다.

구덕운동장에서 똑같이 출발했지만 부민동의 옛날 부산 재판소 앞에서 왼편으로 꺾어지는 노선도 있었다.

부평동과 대청동 거쳐서 부산역까지 갔었다.

그런가하면 영도 남항동에서 영도다리 건너서 부산역 사이를 내왕하는 선로도 있었다.

 

 

이들 세 가닥의 시내 노선과는 달리, 신좌수영(부산진과 범일동 중간 지점, 지금의 부산역 근처)에서 서면이며 거제리 그리고 동래읍을 거쳐 동래 온천장까지 가는 교외선도 뻗어 있었다.

거제리의 들판을 달리는 것도 통쾌했지만, 그보다는 전차가 동래읍을 달릴 때

창밖에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연꽃 밭이 여간 장관이 아니었다.

 

필자가 유소년 시절, 부평동 사거리 우리 집 앞은 신작로였다.

지금으로 치면 4차선이 넘을 포장된 한길이었다.

거길 전차가 다녔다.

부민동 쪽에서 내려 온 전차는 우리 집 앞을 지나 대청동 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야밤중, 잠결에도 레일을 굴러 가는 전차 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세 가지 놀이 어린이들의 특권

그런 전차를 우리 꼬맹이들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것도 무려 세 가지에 걸쳐서 전차와 함께 놀았다.

 

 

저만큼 자못 멀리서 전차가 오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다음,

전차 궤도에 허리를 굽히고 비스듬히 드러눕다시피 해서는 레일에 귀를 갖다 붙였다.

 

 

그래서는 '우륵우륵!' 울리는 레일의 진동을 즐기곤 했다.

귓속만이 아니다.

온 살갗, 온몸이 그 울림을 실감하곤 했다.

그것은 전차 다니는 한길에 살고 있는 꼬맹이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그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도시의 아이, 도회지의 소년다운 긍지가 넘쳐나기도 했다.

 

 

·누가 빨리 달리나 시합 하기도

두 번째는 경주였다.

정거장이 가까워지면서 서행하는 전차와 누가 빨리 가나 겨루기를 했다.

그 당시 부산 인구가 20만 명을 넘지 않았던 시대여서,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던 덕분에,

전찻길은 우리들의 육상 경기장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걸로 그치지는 않았다.

우리 꼬맹이들은 전차 덕택에 세 번째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사이다 병이나 맥주병의 뚜껑을 놀이딱지로 만드는데 전차를 이용했다.

우리 집이 마침 주류 도매상이라서 작은 병들의 쇠뚜껑들을 모으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동글한 쇠뚜껑들을 전차 레일에 줄을 지어서 깔아 놓았었다.

전차 바퀴가 그 위를 지나가면 그것들은 납작하게 짓눌러지곤 했다.

그것은 동전닢의 모양새와 거의 같았다.

그걸로 우리들은 '유사 돈치기'를 했다.

일 전짜리 동전을 멀찍하게 던져 놓고는 돌을 던져서 찍어 맞히면 가져 가는 놀이를 우리들은 '돈치기'라고 했는데,

전차에 깔려 납작해진 쇠뚜껑을 돈치기 하듯이 가지고 논 것이다.

 

 

이런 괴짜 같은 세 가지 놀이,

전차와 함께 어울리며 즐긴 이들 놀이는 우리들을 한층 도시의 꼬맹이답게,

부산의 아이답게 자라게 해주었다.

1968년 철거된 전차 레일의 자취가 생각나면서,

전차에 대한 달콤한 추억은 반세기가 더 지났지만 오히려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