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여섯 빛깔 여름 이야기] <폭포 여행>

금산금산 2013. 7. 20. 21:41

[여섯 빛깔 여름 이야기]

합천 · 거창 · 밀양 <폭포 여행>

장쾌한 '황계' 다소곳한 '유안청' 은밀한 '구만' … 더위야 가라!~

 

▲ 영남알프스의 준봉 구만산이 숨기고 있는 구만폭포의 비경. 폭포에 떨어져 죽은 통장수의 슬픈 전설이 서려 더 신비롭다.

장쾌한 황계폭포, 다소곳한 유안청폭포, 은밀한 구만폭포까지…. 명불허전이라고 했다. 이름이 난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각각의 폭포는 평상시에도 '명폭(?)'의 자태를 갖췄다. 그러나 곧 장마가 시작되면 상상을 초월할 물줄기를 뽐낼 것이다. 염천을 이기는 방법으로, 올여름에는 폭포 여행을 떠나 보자. 옛 시인묵객들처럼 시나브로 한 수 시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황계폭포

'달아낸 듯 한 줄기의 물 은하수처럼 쏟아지니/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남명 선생이 합천 황계폭포를 보고 지은 시구다. 폭포 앞 자연정(紫煙亭) 옆에 새겨져 있다. 여기서 '한 줄기의 물 은하수'는 상단 폭포를 빗댄 것이고 만 섬의 옥돌이 변하는 곳은 와폭인 하단 폭포를 말한 것일 게다. 이른바 2단 폭포. 길이 20여m의 하단 폭포는 그 자체가 '
천연 미끄럼틀'이다. 하나, 아서라! 미끄럼을 탔다가는 명주실을 한 타래 풀어도 모자란다는 '용소'로 쏙 빨려 들어갈지 모른다. 용이 살았다는 용소는 80여 년 전 기우제 때 용이 꼬리를 흔들며 마을에 비를 내렸다는 전설을 품었다.

2단 폭포인 만큼 폭포를 즐기는 것도 배다. 하단 폭포 왼쪽에 있는 철계단을 오르니 1, 2단으로 끊긴 듯한 폭포는 중간 지점이 태극 모양의 수로로 이어졌다. 물과 세월이 만든 물길은 반질반질하고 윤이 난다. 그 와류를 거슬러 갈색빛 고둥 수십 마리가 오른다.
등용문의 고사처럼 저 고둥도 직벽을 오르면 용으로 승천할까?

약 12m 벼랑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벼락이다. 지난 2003년 이곳을 찾은 한 선배는 '이보다 아름다운 추락이 어디 또 있을까?'라고 표현했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 추락에 보태 물벼락은 중언부언하지 않고, 인정사정조차 봐주지 않고 오롯이 수직으로 낙하한다.

조물주가 하늘에서 물을 붓는 것일까? 저리 붓다가는 금세 물길이 끊길 것 같은데, 하염없이 물은 또 떨어진다. 괜스레 보는 사람만 애가 탄다. 눈을 감으면 폭포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쿵"하는 뇌성이 마음 한쪽의 막힌 마음을 파고들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추락하는 폭포는 날개가 없지만 부서지는 물거품은 하늘로 피어 오른다. 포말 가득한 폭포수 안쪽 벽에 임, 박, 송 씨 같은
한자 이름이 새겨졌다. 수 개의 성씨가 나란히 줄을 맞췄다. 혹시 조선 기묘사화 때 화를 피해 도망친 선비들의 것일까? 폭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이름을 찾다 보니 어느새 더위가 물러갔다.


■그윽한 숲속의 유안청폭포

거창 금원산 유안청폭포는 아래쪽 제2폭포와 위쪽 제1폭포로 나뉜다. 제2폭포는 30m 길이의 거대한 물빛 슬랩이다. 와폭을 따라 5분쯤 올라가면 제1폭포가 나온다. 대개 이 폭포를 유안청폭포라고 부른다. 앞서 황계폭포의 물이 벼락처럼 하늘에서 내리꽂혔다면 유안청폭포는 절벽을 어루만지고 애무하듯 부드럽게 흐른다.

단풍나무, 참나무 숲에 둘러싸여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금원산 유안청폭포.
물소리는 사람을 기죽이는 뇌성벽력이 아니라 재잘거리고 다독인다. 폭포는 5개의 가는 물줄기로 내리는데 한 번 바닥과 맞닥뜨렸다가 둥근 소로 모여든다. 주변이 참나무, 단풍나무 천지다. 숲 빛이 물에 비쳐 물빛도 푸르다. 발을 담그면 나무 향이 스며들 것 같다. 이 무명 소는 사람을 품고 머무르게 하는 멋이 있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서 빨치산 500여 명이 알몸으로 목욕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다.

유안청(儒案廳)은 조선 중기의 거창 유생들이 지방 향시를 준비하기 위해 이 계곡에 만들었다는, 일종의 고시반. 하지만 이런 옥수와 절경을 두고 제대로
공부가 됐을까 싶다. 유안청계곡 출신이 합격했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음풍농월로 세월을 다 보내지 않았을까. 유안청폭포에서 내려가다 보면 자운폭포, 선녀담, 미폭 등 놓치기 아까운 폭포도 즐비하니 기억하는 게 좋겠다.

유안청폭포의 원래 이름은 가섭동폭. 사라진 가섭사는 유안청폭포 반대쪽인 지재미골에 있다. 골짜기 들머리의 문바위는 국내 단일 바위로는 가장 크다고. 높이가 아파트 5층은 되겠다.
사다리로 오르기 어려워 보이는 바위 위 돌탑은 나무꾼들이 쌓았다고 전한다. 문바위 뒤의 가섭암지 언덕 바위굴에 마애삼존불(보물 제530호)이 있다. 고려 때 제작했는데, 용모는 평범하지만 의상은 화려하다.


■구만산 울리는 퉁소 소리 같은 구만폭포

황계폭포와 유안청폭포는 사람 사는 동네와 이웃했다. 반면 밀양 구만폭포는 마을을 벗어나 자연과 벗한 은자의 폭포다. 폭포로 닿은 골짜기는 통처럼 생겼다해서 통수골. 임진왜란 때 이 일대로 9만 명이 피신했을 정도로 골의 품이 깊다. 산꾼 이외에 일반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없어 호젓하다.


구만폭포 통수골의 무명 소.
1시간쯤 평평한 산길을 걸으면 구만폭포와 대면한다. 폭포를 삼킬 듯한 거벽과 기암이 파노라마처럼 사방을 에워쌌다. 머리 위 절벽 틈에서 무협영화의 무술 고수나 신선들이 나올 것 같다. 멀리서 보면 90여m의 3단 폭포이지만 가까이 와 보면 맨 아래 3단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운데 소는 그다지 깊지 않다. 하나 이 소에는 애절한 전설이 서려 있다. 옛날 대나무 통장수가 폭포 왼쪽 절벽 벼랑길을 지나다가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죽은 통장수가 처자식을 생각하며 애절하게 운다. 그 소리가 퉁소를 닮았다. 다른 말로 '퉁소폭포'다. 혹시 구만폭포에 가서 퉁소 소리를 듣게 되면 통장수의 명복을 빌어 줘야 한다.

소 가운데로 다가가며 몸을 반쯤 담갔더니 입에서 '아' 하고 신음이 절로 나오더니 수십 초도 못 참고 물 밖으로 뛰쳐나오게 된다. 들어갔다 나오길 수차례. 그새 답답했던 마음은 냉기에 말끔히 씻겨 나갔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폭포는 다섯 개의 음으로 한 화음을 엮는다. 눈을 감으면 물줄기가 빚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진세의 노곤함을 잠시 잊는다. 내려가는 길에 무명 소에서 산꾼들이 즐기는 '알탕'을 해 보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TIP

■교통

·황계폭포 : 남해고속도로 군북나들목에서 의령 방면으로 나간다. 20번 국도로 가다 합천군 대병면 삼거리에서 1026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7㎞쯤 더 들어간다. 황계마을 주변에 차를 세우고 평지를 600m쯤 걸으면 된다. 합천군 용주면 황계리. 용주면사무소 055-930-4171.

·유안청폭포 : 중부내륙고속도로 고령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거창나들목으로 나온다. 37번 국도를 이용해 수승대 쪽으로 진행하다 위천면에서 금원산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3.8㎞쯤 가면 금원산휴양림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료 성인
1천 원(주차요금 3천 원).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금원산휴양림관리사무소 055-254-3971~6.

·구만폭포 :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나들목에서 나와 24번 국도로 산내면 면사무소 소재지까지 진행한다. 면사무소 앞에서 구만폭포(구만산장) 방향으로 좌회전해 봉의로를 타고 1.5㎞가량 더 가면
주차장
이 나온다. 휴일엔 차량이 혼잡해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걷는 게 낫다. 주차요금 1일 3천 원. 밀양시 산내면 봉의리. 구만폭포 주차안내소 011-573-9460.


■음식

거창과 합천은 민물고기로 끓인 어탕국수(사진)와 추어탕이 유명하다. 거창읍에 어탕국수와 추어탕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추어탕거리가 있다. 1995년 문을 연 구구추어탕(055-942-7496)은 미꾸라지, 메기, 붕어 등의 민물고기로 국물을 낸다. 시래기 대신 상추를 넣는 것도 이 집만의 특징. 그래서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하다. 어탕국수를 다 먹고 밥을 말면 그대로 추어탕이 된다. 어탕국수, 추어탕 각 7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