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5-4> [오륙도]이기대
스토리텔링 - 팩션 - 이기대에 핀 두 송이 붉은 꽃
내 조선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놈들의 노리개는 되지 않으리라
송영명 화백이 그린 '이기대'(유화 20호). 그림과도 같은 해안 절경의 벼랑에서 임진왜란 때 조선의 '두 의기'가 왜장을 끌어안고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자,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나체 장구춤을 보자꾸나"
일향은 저고리를 벗기 시작했다
왜장은 주술에 걸린 듯 월화를
안고 농바위를 향해 걸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세요"
구로다를 껴안은 두 기생은
절벽에서 꽃잎처럼 떨어졌다
#1
경상좌수사 박홍은 수영성 밖 해일정(海日亭)에서 좌우에 두 기생을 껴안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른쪽엔 가무와 악기에 능한 일향(日香)이고, 왼쪽에는 시서화에 능한 월화(月花)였다. 좌수사가 먼 바다를 보며 말했다.
"일월을 좌우에 거느렸으니, 왜의 관백이 부럽겠는가."
"저기 농바위 보세요. 마치 새색시가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낭군을 맞는 듯하군요."
좌수사는 월화의 치렁한 머리를 쓰다듬어 내리며 말했다.
"그래, 오늘 밤 내가 너를 맞는 낭군이 되어 머리를 올려주마."
"황공하옵니다."
일향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영감님, 제 머리를 올린 지 얼마 되었다고 또 월화의 머리를 올립니까?"
"호, 관기인 주제에 시샘을 하는가! 넌 어서 방아타령이나 뜯어라!"
좌수사의 일갈에 일향이 풀이 죽은 듯 방아타령을 뜯었고, 좌수사는 월화의 옷고름을 풀어 몽실한 젖가슴을 만졌다.
"월화, 한의 왕소군이 너보다 아름다우며, 송도의 황진이가 너보다 뛰어나랴? 과연 하늘이 낸 재색이로다."
일향이 바다를 가리키며 창을 하듯 말했다.
"아, 똥 같은 소리를 한다. 그런데 저건 뭣이요!"
멀리 왜선들이 까맣게 선단을 이뤄 부산포 앞바다를 떠나 대마도로 가고 있었다.
"음, 저 배들은 왜관에서 나가는 배들이야. 미친놈들! 명나라를 칠 테니 길을 비켜달라고 생떼를 쓰다 안 되니 저렇게 돌아가고 있는 거라네."
"그러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에요?"
일향이 물었다.
"전쟁 같은 허튼 소리 말고, 네 년은 어서 풍악이나 울려라."
박홍은 월화의 치마말기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2
동래 좌수영성 교방청(기생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곳)에서 기생오라비 창범이 일향에게 팔음 악기 중 연주가 가장 힘들다는 태평소를 건네주며 말했다.
"난 이제 자네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네."
기생오라비는 기둥서방이 아니라 기생들에게 음악과 가무를 가르쳐주는 스승이었다. 삼현육각은 기본이고 가장 익히기 힘든 악기인 생황과 태평소까지 능숙하게 부는 일향은 수십 종의 팔음(八音)악기를 못 다루는 게 없었다.
"아무리 음악과 가무를 잘하면 뭐 하나요. 좌수사 영감은 나를 내치시고 월화 고년만 편애하시는 걸. 고년이 영감을 끼고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일향은 기생이 되는 과정이 월화와 달랐다. 일향은 어머니가 종이었기 때문에 일천즉천법과 종모법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기생 신분이 되었다. 일향은 비록 세습 관비가 되었지만 노래와 가무 악기연주에 뛰어나 교방청의 행수까지 되었다. 그런데 지체 높은 양반 집안이었으나 역적의 딸로 태어난 월화는 수영청 교방으로 쫓겨온 뒤 수사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자신의 행수자리마저 빼앗아 꿰차고 있으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생오라비가 일향에게 말했다.
"네가 진정으로 다시 행수자리를 찾고 영감의 사랑을 받고 싶으냐?"
"예, 오라버니."
"곧 수영성에서 정례모임인 남해안 수사(水使)회의를 열 것이다. 그 때 이렇게 해라."
기생오라비가 일향의 귀에다 소곤거렸다.
#3
동래 수영성 홍예문으로 가마와 마차가 연달아 들어왔다. 수사회의에 참석한 자들은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전라좌수사 이순신, 부산진 첨사 정발, 다대진 첨사 윤흥신이었고, 수사는 아니지만 동래부사 송상현이 특별히 초대되었다.
박홍의 품계는 당상관인 정3품이다. 그의 관할구역은 김해, 양산, 기장 등 16관과 두모포, 감포, 해운포 등의 18포이다. 같은 수사라 하더라도 다른 수사들보다 직급이 한 등급 높았고, 관할구역이 고작 5관 5포밖에 되지 않는 신참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같은 수사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박홍이 수사와 첨사들을 보고 말했다.
"자, 차린 것 없지만 수영 앞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고기로 만든 음식이오. 마음껏 드시오. 그런데 아직도 왜놈이 쳐들어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이 있다 하오. 조정에서 이미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결론이 난 것을 우리가 쳐들어온다고 하면 우리 모두는 역신(逆臣)이 되는 것이오.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해안 방비를 튼튼히 하되 국론을 분열시키는 그런 말은 하지 말자는 것이오."
"맞소이다. 서인들이 일으킨 허튼 풍설 아니오!"
원균, 정발, 윤흥신, 이억기 등이 박홍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구석에 앉은 단 한 사람만이 이의를 제기했다.
"저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으로, 반드시 왜적이 쳐들어오리라 판단합니다."
그러자 좌중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니, 얼마 전 대사헌 오익령이 '일본은 조선의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한 뒤 파직당한 사실을 정녕 모르고 있단 말이오?"
"지금 왜관은 텅텅 비어 있고, 풍신수길의 노래가 전라도 민간에도 떠돌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오?"
동래부사 송상현이 관심을 보이며 묻자 이순신이 민간에서 부르는 노래 가락으로 불렀다.
"사람의 한평생 백 년을 넘지 못하리. 나 어찌 답답하게 섬에만 갇혀 살겠는가. 조선의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치리라."
그러자 원균이 벌떡 일어서며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백성을 불안하게 하는 참언이오. 원숭이놈들이 감히 어떻게 우리 대조선과 대명국을 넘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여기저기서 원균을 지지하고 이순신을 비난하는 소리가 나왔다.
박홍이 좌중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자, 7품계나 건너 뛰어 새로 부임한 이 수사가 뭘 알겠는가. 이 사람은 엉뚱하게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다는 사람일세."
그러자 모두들 '거북선이라?'며 박장대소를 하며 껄껄껄 웃었다.
박홍이 말했다.
"자, 골치 아픈 논쟁은 그만하고 술이나 듭시다. 아기들아, 풍악을 울려 원로에 오신 분들의 노독을 풀어드려라."
주장(主將)인 박홍의 명령을 기다리던 기생들이 일제히 대청무대로 올라와 가야금을 뜯고, 삼현육각을 울리고 동래고무(東萊鼓舞)를 추었다. 주흥이 무르익어가자 가무의 명인 일향이 대청마루에 북을 메고 올랐다. 그녀는 덩기덕덩덩 설장구를 치면서 '태평가' 민요를 부르며 독무를 추다 갑자기 치마저고리를 벗고 알몸으로 장구를 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장을 전전해 온 무골들이 이 광경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향의 빛나는 알몸뚱이는 아름다운 춘화도처럼 예술적 미를 느끼게 했다. 박홍을 비롯해 모두들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다만 이순신만은 다가오는 일향을 쏘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 조선이 망했구나."
#4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터지자 정발 첨사는 몰려온 왜선들을 조공선으로 착각하고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 왜선인 줄 알고 부산진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농성하며 싸웠지만 하루만에 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이어 동래성에서 동래부사 송상현과 5천 여 부민들이 왜적과 싸우다 전원 성을 베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휘하의 1만 2천여 명의 병력과 전함 75척을 지휘하는 경상좌수사 박홍은 수영성을 버리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는 전함 전부를 물에 가라앉히고, 창고를 불태운 뒤 혼자 도망쳤다.
경상좌수사의 관비였던 두 기녀 일향과 월화는 주군 없이 수영성에 버려진 채로 남아 있었다. 수영성이 함락되자 가토 휘하의 적장 구로다는 일향과 월화를 전리품으로 취해 승전축하연의 노리개로 삼으려 했다. 구로다는 경상좌수사의 애첩인 일향에 대해 정보를 수집해놓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알몸에 장고를 메고 추는 네 춤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일 우리의 전승축하연에 그 춤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호호호, 저는 다 썩은 조선 양반사회를 저주하던 기녀이옵니다. 보세요, 양반들이랍시고 거드름피우던 놈들이 가장 먼저 도망갔잖아요."
"그런데 월화 기생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데 설득해 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기생인 주제에 불사이군의 열녀를 흉내 내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요?"
일본군은 연달아 부산진을 무너뜨리고 이어 동래성도 함락했다. 정발의 애첩 애향도 정발을 따라 죽었고, 동래부사 송상현의 애첩 김섬도 함께 순사해 열녀가 됐다. 그러나 일향과 월화의 지아비 좌수사 박홍은 멀리 도망가 버려 그녀들은 순사할 일도, 열녀가 될 일도 없어졌다.
다음날 왜장과 왜병들은 분개마을 앞산 해일정에 모여 전승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였다. 비만한 왜장 구로다는 일향과 월화를 좌우 옆구리에 끼고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구로다가 말했다.
"자, 이제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그 유명한 일향의 나체 장구춤을 보자꾸나!"
그러자 일향이 저고리를 벗기 시작했다. 주흥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일향은 손짓을 하며 구로다를 농바위 쪽으로 불러내웠다. 왜장은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술 취한 듯 월화를 껴안고 일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세요."
"알았네. 자 이제 치마를 벗어라!"
그러자 일향과 월화가 좌우에서 열 가락지를 낀 손으로 구로다의 몸을 껴안고 힘껏 소리쳤다.
"내 조선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너희 왜놈들의 노리개는 되지 않으리라."
"난 조선의 역적 딸이지만 원혼이 되어서도 네 침략자 놈들과 싸울 것이다."
일향의 뇌리에는 '아, 조선이 망했구나!'며 탄식하던 이순신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미천한 몸이지만 왜놈의 노리개로는 살지 않으리라. 수사의 총애를 서로 다투던 일향과 월화는 이날만은 일심동체가 되어 구로다를 껴안고 농바위 절벽에서 꽃잎처럼 떨어졌다.
조선이 버린 바닷가에 두 개의 붉은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 못난 지아비 탓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두 기녀의 절개
■ 이기대 유래
이기대는 두 명의 기녀라는 뜻을 가진 '이기(二妓)'를 놓고 현재까지 세 가지 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좌수사 이형하가 편찬한 '동래영지'에 따르면 '두 명의 기생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 불렸다는 것이고,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았기 때문에 이기대라는 설이 있다. 마지막으로 임진왜란 때 두 기생이 적장을 안고 바다로 뛰어 들었기 때문에 '의기대(義妓臺)'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이 세 가지 설은 상호 모순이 없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경상좌수사 박홍은 자신의 이기(二妓)를 버려두고 혼자 줄행랑을 놓았다. 왜장이 이 둘을 노리개로 삼으려 하자 두 기녀는 의분을 품고 왜장을 껴안고 바다에 뛰어내렸고, 뱃사람들이 두 기녀의 시신을 건져 올려 이기대에 묻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림 = 송영명 화백 |
현재 부산시와 관할인 남구청은 의로운 이기(二妓)의 실체를 조사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최고의 해안산책로인 이기대에서 아름다운 두 여인과 동행하기를 기대해본다.
글 = 김하기 작가 |
부산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황석영과 이문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대 부경대 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창작과 비평에 '살아있는 무덤'으로 등단해 '완전한 만남' '천년의 빛' '식민지 소년' 등 16권의 책을 썼다. 소설가, 작가, 칼럼니스트로 한국인의 창의성에 관심을 가지고 전 방위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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