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 지도'를 그리다] <10> 해운대 ④
'영화의 전당', 한국영화 중심 서울서 부산으로 견인하는 공간
▲ 지난 3일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장산 쪽에서 바라본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부산일보 DB |
부산국제영화제가 중구에서 처음 열린 것은 필연에 가깝다.
도시의 중심지는 세 가지를 구비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 센텀 입주
중구서 해운대로 중심축 이동 결정적
'영상클러스터'에 영화인 유입 기대
부산은 한반도문화의 출발지
'아시아영화의 창' 넘어
'세계 각지로 나가는 방사형 창'으로
하지만 영화제의 개막식장은 중구가 아닌 수영만 요트 경기장이었다.
한국영화 산업은 쑥쑥 자라는 아이의 키처럼 급성장했다.
■영화의전당과 피프광장
도시의 변화는 시장과 영화관이 바로미터다.
하지만 중구의 역사와 문화라는 삶의 지문이 해운대의 고층 건물에는 아직 찍히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의 센텀 입주는 부산 영화의 중심을 중구에서 해운대로 이동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영화의전당 건립은 삼고초려의 산물
영화제 관계자에게 영화제 전용관은 신혼 부부에게 생애 최초 주택 구입과 부합한다.
전용관 건립을 위한 최초의 시도는 1997년 부산을 방문한 대통령 후보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노력은 2002년, 광복동 서울깍두기 2층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수많은 국고가 투여되는 큰 사업을 진행하는것은 쉽지 않았다.
부지 선정도 부산시와 영화계가 이견을 보였다.
영화의전당에서 첫 개막작이 상영되던 날 건축가협회가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영화에서 세계 영화로 도약
영화의전당 건립은 영화제 전용관의 완공이자, 중구에서 해운대로 부산 영화의 중심이동을 상징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해운대 동백섬은 풍수지리적으로 신령한 거북이가
거북이 등에 탄 [한국영화]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문관규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cinemhs@hanmail.net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
중구는 부산의 정치 경제의 중심이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중구는 부산 근대 역사의 호적이 있는 동네"라고 설명한다.
구도심이 부산의 역사와 문화의 본적이면, 중구는 부산영화의 본적지에 가깝다.
도시의 중심지는 세 가지를 구비한다.
그것은 관공서와 대형 백화점과 영화관이다.
중구는 이 삼박자를 이미 갖추었으며 거기에 영화의 역사까지 구비했다.
중구 남포동은 'ㄱ'자 지형의 극장 밀집 지대였다.
당시 문정수 시장은 남포동에 영화의 광장을 조성하여 부산국제영화제에 적극성을 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 센텀 입주
중구서 해운대로 중심축 이동 결정적
'영상클러스터'에 영화인 유입 기대
부산은 한반도문화의 출발지
'아시아영화의 창' 넘어
'세계 각지로 나가는 방사형 창'으로
하지만 영화제의 개막식장은 중구가 아닌 수영만 요트 경기장이었다.
개막식장은 해양도시 부산을 대표할 장소가 필요했다.
영화제 참관 경험이 많은 박광수 감독이 묘안을 냈다.
그곳은 바로 바다 이미지와 광장 이미지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수영만 요트 경기장이었다.
요트 경기장은 스크린 좌측에 바다가 배치되었고,
위에는 하늘이, 전면에는 넓은 광장이 포진한 천혜의 공간이었다.
개막식장이 수영만 요트 경기장으로 결정된 것은
전통의 중구와 신흥 해운대가 영화제의 양축으로 자리 잡는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영화 산업은 쑥쑥 자라는 아이의 키처럼 급성장했다.
극장은 전통의 단관 극장이 복합 상영관으로 전환되고 제작비는 물가보다 더 높이 상승하였다.
해운대는 부산의 메가 프로젝트에 적극 호응하여
신축 호텔이 해운대 해변을 중심으로 건립되고 메가박스와 CGV가 둥지를 틀었다.
■영화의전당과 피프광장
도시의 변화는 시장과 영화관이 바로미터다.
센텀시티에 입점한 대형 백화점과 복합 상영관은 부산 시민의 발길을 중구에서 센텀으로 돌리게 하였다.
중구 극장의 쇠락과 해운대 복합 상영관의 난립은 한국영화산업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한국 영화산업은 1990년 중반에 충무로 자본과 대기업 자본이 배급을 양분하였다,
1998년 한국의 첫 복합 상영관이 문을 열면서 단관 개봉 시대에서 복합 상영관을 통한 확대 개봉 시대로 진입했다. 부산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전통의 중구 단관 극장은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하고 신도시 해운대에는 복합 상영관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복합 상영관 시대의 개막은 중구에서 해운대로 부산국제영화제 이전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중구의 역사와 문화라는 삶의 지문이 해운대의 고층 건물에는 아직 찍히지 않았다.
외지에서 방문한 영화 관객과 게스트에게 해운대는 영화 감상 이외의 부산의 문화를 만나기 어려운
현대적 공간에 불과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둔 1996년 9월11일, 부산시가 남포동 극장가 거리를 '피프(PIFF)광장'으로 명명하고 선포식을 가졌다. 부산일보 DB |
상영관과 숙박 시설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잠시 괄호로 묶어 둔다면,
부산영화제 전용관은 중구에 설립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구와 해운대는 문화와 개발의 논리를 대표한다.
해운대에 손을 들어 준 것은 경제논리에 의한 문화논리 패배 사례이다.
행정의 효율성을 고려한 선택은 시민들의 문화적 허기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빵의 시대가 지나면 오락의 시대가 도래한다.
오락의 시대에 정신적 허기를 달래 주는 것은 문화라는 샘물이다.
우리는 빵에 굶주리는 것보다 문화에 목마르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의 센텀 입주는 부산 영화의 중심을 중구에서 해운대로 이동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또한 한국 영화계의 중심축 이동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영화의전당 건립은 삼고초려의 산물
영화제 관계자에게 영화제 전용관은 신혼 부부에게 생애 최초 주택 구입과 부합한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영화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영화제 전용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영화인들은 삼고초려와 무수한 노력의 산물로 영화의전당 완공을 이루었다.
전용관 건립을 위한 최초의 시도는 1997년 부산을 방문한 대통령 후보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야권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와는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여권의 이회창 후보는 광복동 원산면옥에서 회동을 하였다.
두 후보에게 긍정적 답변을 얻어 냈다.
두 번째 노력은 2002년, 광복동 서울깍두기 2층에서 이루어졌다.
이춘연 대표와 배우 안성기 그리고 임권택 감독 등은 당시 노무현 후보를 만났다.
노무현 후보는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친영화적 후보였다.
영화인들은 영화제 전용관의 필요성을 재차 역설하였고
영화인의 요구라면 복날에 얼음이라도 구해 주고 싶었던 노무현 후보는 흔쾌히 수용하였다.
하지만 수많은 국고가 투여되는 큰 사업을 진행하는것은 쉽지 않았다.
대통령 신분으로 부산을 순방한 자리에서 영화인들은 거듭 노무현 대통령에게 간곡하게 청원을 드렸고
결국 확답을 받았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회고에 의하면 46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정하였으며
정부와 부산시가 각각 230억 원씩 분담하는 방안이었다.
삼고초려로 영화의전당이 첫 삽을 뜨게 되었다.
또 다른 문제들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었지만 영화인들의 노력과 부산시의 전폭적 지원으로 성사되었다.
부지 선정도 부산시와 영화계가 이견을 보였다.
영화인들은 해운대 한국콘도 뒤쪽 부지와 동백섬 입구를 선호하였으나
부산시는 센텀시티의 영상클러스터 조성이라는 메가 프로젝트 속에서 영화의전당 건립을 추진하였다.
결국 영화의전당 부지는 센텀으로 결정되었으며
부산 영화의 중심이 중구에서 해운대로 기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영화의전당에서 첫 개막작이 상영되던 날 건축가협회가 세미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한 건축과 교수는 "예전에는 영화하는 분들을 딴따라라고 해서 얕봤는데
그분들이 영화의전당 추진하는 것을 보니 만만치 않더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영화인들은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삼고초려가 아닌
백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이 있다는 핵심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세계 영화로 도약
영화의전당 건립은 영화제 전용관의 완공이자, 중구에서 해운대로 부산 영화의 중심이동을 상징한다.
아울러 1920년대 서울 영화인 1차 유입과 1950년대 영화인 2차 유입에 이어
2010년대 영화인 3차 유입이라는 영화사적 사건을 견인하는 건물의 완공이기도 하다.
영화의전당은 부산 시민들이 영화문화를 수혈받는 젖줄이다.
센텀 영상클러스터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공공기관의 이전을 통해
한국영화사에서 3차 영화인 이동의 거점이 될 것이다.
영화의전당은 부산영화의 중심을 해운대로 이동시키는 것과 동시에
한국영화의 중심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견인하는 공간임을 미래의 한국영화사가 입증할지도 모른다.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려는 거북이 형상의 동백섬 모습. 부산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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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인 영구망해(靈龜望海)다.
풍수 지리학자 김두규는"영구망해의 땅인 부산 해운대는 미국이 지배하는 태평양을 노려보는 지형으로
부산 해운대가 새로운 문명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 희망적 해석을 내렸다.
이와 같은 기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영화 감독의 미국 진출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해운대에 자리한 것은 영화가 거북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동백섬이 바다를 바라보는 거북이라면 영화의전당에서 펼쳐진 영화제는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해외진출 시나리오를 이미 작성 중이다.
영화의 중심 이동과 풍수지리적의 해석의 절묘한 맞물림은 예사롭지 않다.
거북이 등에 탄 [한국영화]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부산은 대륙문화의 종착지이자 외래문화의 선착지에서 또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받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해양문화의 도래지가 아닌 반도 문화의 출발지이다.
부산영화제가 표방한 슬로건이 '아시아영화의 창'이었다면
이제 한국영화는 세계로 나아가는 창을 부산 해운대에 세워 둔 것이다.
그동안의 이동축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상하 운동이자, 중·동구에서 해운대로 이동하는 동서 이동이었다면
앞으로는 부산에서 해외 각지로 나아가는 [방사형] 이동의 창이 열릴 것이다.
문관규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cinemhs@hanmail.net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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