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예술]

[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13> '부산진구' 사통팔달의 부산 중심부…

금산금산 2013. 11. 9. 21:12

[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13> 부산진구

 

사통팔달의 '부산 중심부'… 인파 북적 극장도 덩달아 성황

 

 

 


▲ 1957년 문을 연 동보극장은 1993년 극장이 폐관되고, 상업시설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19일 부산진구 영광도서 일원에서 서면 문화으뜸로 준공식이 열렸다.

 

동해남부선 굴다리에서 영광도서 앞까지 550m 길이에 이르는 문화으뜸로는 봉수대, 부산탑 등

 

부산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인공적인 분수, 실개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총 사업비 67억 원이 들어간 이 거리는 '예술과 물을 주제로 한 관광테마 거리' 조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물이 문화으뜸로의 주제일까? 그 이유는 지금의
아스팔트 도로 밑으로 도심 하천 부전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전천은 부산진구 당감동 백양산에서 발원해서 동구 범일동을 거쳐 북항 바닷길로 흐르는 동천의 한 지류이다.

 

당감천, 가야천, 전포천, 호계천과 함께 동천을 이루는 부전천은

 

성지곡 수원지를 시작으로 서면 교차로와 롯데 백화점 부산본점(옛 부산상고) 사이를 지나 부전동 더?竊아?럴스타(옛 제일제당) 부근에서 동천에 이른다.

 

총 길이 3.5㎞의 부전천은 1970~1980년대에 걸쳐 전 구간이 복개되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1950년대 주택·공장 우후죽순
여가시설 기능 극장 잇따라 생겨

1975년 사상공단으로 노동자 이탈
고정 관객층 잃고 위축됐지만
유동 인구 많아 1990년대까지 명맥

2000년 'CGV 서면' 개관
부산에 멀티플렉스 시대 열어

그러나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하천은 때로는 산업화의 발원지로, 때로는 민주화의 성지로,

 

때로는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도심의 젖줄 역할을 담당했다.

 

이제 하천의 흐름을 막고 있는 아스팔트를 걷어 내고,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자.

동천의 지류인 부전천 최상류에는 성지곡 수원지(등록문화재 제376호)가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가인 성지(性智)가 경상도에서 가장 빼어난 골짜기를 발견하여 성지곡(聖知谷)이라

 

이름 붙인 이곳은 1909년 9월에 완공된 조선 최초의 근대적 상수도용 수원지이다.

 

착공 당시 부산 인구가 4만 명 정도였지만 30만 명까지 늘어날 것에 대비해
건설한 성지곡 수원지는

 

부산진구에서 동구 일대까지 수돗물을 공급하던 부산 시민의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용수 공급을 중단하고 유원지로 바뀌고, 1978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부산 어린이 대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소풍과 사생대회
행사로 학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의 성지곡 수원지는 시민들의 목마름을 달래 주던 곳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휴양지로 변화했다.

 

유원지 내 동물원과
놀이시설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지만, 이석훈 감독의 '두 얼굴의 여친'(2007)에서 로맨틱한

 

안식처로 나오는 울창한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이루어진 고즈넉한 숲길은 갈맷길 7코스 1구간(성지곡 수원지~금정산 동문)의 들머리이다.

부전천의 물줄기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면 연지동 LG 사이언스홀이 있다.

 

이곳은 과거 락희(樂喜) 화학공업사가 있던 자리이다.

 

락희 공업사를 세운 사람은 연암 구인회, 바로 LG그룹의 창업주이다.

 

1954년 이 자리에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락희 공업사는 일명 '동동 구리무'로 불리던 럭키 크림의 선풍적인

 

인기와 국내 최초로 개발한 럭키 치약의 연이은 성공으로 사업을 확장해 간다.

 

1958년 락희 공업사 맞은편에 금성사를 설립하여 라디오와 TV를 생산하는데

 

이 금성사가 바로 LG전자의 전신이다.

 

부전천을 근거지로 산업화를 이룬 기업은 LG만이 아니다.

 

부전천과 동천의 합류지점인 부전동 더?竊아?럴스타는 과거 제일제당이 있던 자리다.

 

1953년 호암 이병철의 지휘 아래 세워진 제일제당은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제분공장을 설치하여 사업을 확장한 제일제당은 1996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CJ 제일제당으로 거듭난다.

부산진구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을 중심으로 발전한 상업 자본은 이 일대의 공장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그러나 하천의 물길을 바탕으로 생겨난 공장, 주택 지대의 개발은 교통난과 하천의 오염을 가져오고,

 

이는 역설적으로 하천의 복개를 야기했다.

주택과 공장지대가 크게 발달하면 당연히 생겨나는 것이 여가 시설, 그중에서도 영화관이다.

 

부전동 일대에는 서면 교차로의 북성극장(1947~1975년, 현 부전동 우리
투자증권 빌딩)을 시작으로

 

동보극장(1957~1993년, 현 동보 프라자), 태평시네마(1961~1979), 노동회관극장(1962~1996),

 

태화극장(1962~1982년, 현 쥬디스 태화), 대한극장(1970~현재 CGV 대한), 은아극장(1987~2003) 등이 생겨났고

 

1970년대 초반까지는 크게 성행했다.

 

하지만 도심지에 흩어진 공장을 한데 모으기 위해 사상공단이 1968년에 착공, 1975년에 준공되어

 

부산진구 일대의 공장도 사상공단으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노동인구이탈로 고정 관객층을 잃은 일부 재개봉관이나 소극장은
폐업에 이른다.

 


CGV대한으로 바뀐 대한극장(왼쪽)과 상업시설로 완전히 바뀐 은아극장 모습.

 

그러나 동구의 극장가가 1970년대 후반 그 기능이 거의 소멸했던 것과는 다르게

 

부산진구의 상영관들은 1990년대까지는 명맥을 이어온다.

 

이는 일찍이 서면 일대가 인근 공장노동자들 이외에도  다른 소비층을 중심으로 상권을 유지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원래 서면이라는 명칭은 동래부의 서(西)쪽에 위치한 면(面)이라는 뜻이 있지만,

 

실제로는 부산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일찍이 교통, 금융, 유통,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도로가 여러 방향으로 막힘없이 닿는 사통팔달의 구조인 서면 교차로는 1915년 전차가 개설되면서

 

더욱 교통이 편리해졌고 1923년 부산공립 제2상업학교(옛 부산상고)가 이전하면서 많은 유동인구가 유입되고,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배경으로 등장한 진남로 한복집 모습.

원래 쌀집인 적산가옥에 영화촬영을 위해 한복집 간판을 붙였다(왼쪽).

박 감독은 시내 한복판인 서면 뒷길 진남로를 판타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1982년 대현 지하상가 설립과 이듬해 태화쇼핑(현 쥬디스 태화)의 개점을 시작으로 서면은 명실상부한

 

소비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상권의 발달로 인한 소비자의 끊임없는 유입은 1990년대까지 서면 일대의 극장들을 유지시키는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건은 1995년 롯데 백화점 부산본점의 개점이다.

 

당시 부산엔 태화쇼핑, 미화당, 유나, 부산 백화점 등 향토 백화점만 영업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때 1995년 8월 동구에 대기업 백화점인 현대 백화점이 부산 최초로 개점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옛 부산상고 터에 롯데 백화점 부산본점이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최대의 규모로 개점한 롯데 백화점은 부산 쇼핑의 중심을 서면으로 모으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90년대 서면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비 상권은 일대의 단관 극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부산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영관 문화를 만드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멀티플렉스 시대의 개막이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를 시작하며 부전천과 동천의 합류점을 조금 지나서 범4호교 부근에 멀티플렉스라는 새로운 형태의 극장이 생긴다.

 

대형쇼핑몰 지오플레이스에 생긴 CGV 서면은 12개관 2177석의 극장이다.

 

CGV 서면의 등장은 부산 관객에게 새로운 관람 문화를 경험하게 했다.

 

과거 극장가는 영화관과 여타의 오락,
외식 산업이 지역 단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러나 멀티플렉스는
주차장, 오락시설, 음식점 및 기타 편의 시설이 하나의 건물에 집약적으로 구성된

 

복합 소비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교통이 불리한 이곳에 대형쇼핑몰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굳이 기존 상권에 들어가 다른 극장과 경쟁할 필요 없이, 주위 편의 시설의 도움 없이, 대형 쇼핑몰 자체로

 

새로운 상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관객들은 이제 손쉽게 영화를 예매하고,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쇼핑을 하고,

 

편안한 좌석에서 영화를 본 뒤, 같은 건물에서 커피나 밥을 먹고 바로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전천의 끝자락에 생긴 멀티플렉스라는 새로운 극장문화는 다시 물길을 거슬러, 서면 복개천을 올라간다.

 

이 새로운 물결은 기존의 소비 상권이 유지하던 단관 극장들을 소멸시킨다.

 

그리고 2000년도 CGV 대한(4개관, 옛 대한극장)을 시작으로 2001년엔 롯데 백화점 부산본점에

 

롯데 시네마(11개관)와 대형 쇼핑몰 밀리오레에 메가박스(7개관, 현 롯데 시네마 서면점)가 들어서고,

 

2006년 효성엑센시티에 씨너스(6개관, 현 메가박스 서면점)가 생기면서

 

부산의 멀티플렉스 시대라는 새로운 물줄기를 흐르게 한다.

글=김기만 부산대 영화
연구소 전임연구원

sguerrilla@naver.com

사진=이경희 사진가 mizise@naver.com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