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델타시티에 부산 미래 건다 <1-1> [낙동강 삼각주 이야기]- '떠나는' 사람들
김해평야 산증인들 무관심한 세상 향해 소리 없는 절규
부산 강서구 대저2동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철호(56) 씨가 에코델타시티 개발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농민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다. 권혁범 기자 |
◇ 토마토농사 이철호 씨
- 대 이어 25년째 '짭짤이' 재배
- 개발 탓 모든 것 내려놔야
- 농민 생계대책 뒷전에 허탈
◇ '흙사람' 허혜경 작가
이들 모두 가까운 미래에 실체 없는 전설로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그렇지 않을 거라고.
강줄기마저 돌려놓은 문명의 욕심이 삼각주의 역사를 빠르게 지워버리고 있으니.
대규모 곡창지대가 형성된 건 1934년 서낙동강에 대저·녹산수문이 생기면서부터다.
지금 삼각주 농민 대부분도 이때를 전후해 태어났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아버지가 살았던 땅에서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198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서기를 했다.
삼각주는 기회의 땅이었다.
강이 쌓아준 충적토는 비옥했다.
또 바다에서 올라온 염분 섞인 물은 오히려 토마토의 당도를 높였다.
여기에다 대를 이은 노하우는 '짭짤이토마토'라는 부산의 명물을 탄생시켰다.
또 다음 해 2월 10일~5월 20일 수확하며, 봄철에 딴 토마토가 가장 맛있다.
이 씨의 토마토 재배 면적은 3600평(1만1900㎡)가량.
대저2동 토마토 농민의 평균 경작지는 2000~3000평(6600~9900㎡) 정도다.
첫째 딸은 시집을 갔고, 둘째 딸은 대학원 공부 중이다.
막내아들도 벌써 대학교 2학년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자녀들의 통학거리도 멀었지만, 삼각주의 품을 떠날 수 없었다.
한때 '월급쟁이'로 '사장님'으로 잠시 외도했던 같은 마을 형님·동생들도 지금은 대부분 돌아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여름철 태풍·장마 때는 홍수와 싸워야 했고, 겨울철 쏟아지는 눈은 비닐하우스를 폭삭 주저앉혔다.
이곳 90여 토마토 농가는 2003년 태풍 매미와 지난해 폭설 피해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에코델타시티 개발로 언제 떠나야 할지 몰라 큰돈을 들여 비닐하우스를 손보기도 어렵다.
특히 80% 이상이 임대 농민들이라 지주들이 언제 땅을 비워 달라고 요구할지도 모른다.
한창 자식들 밑에 돈이 많이 들어갈 나이다.
농가 부채도 만만찮다.
그러나 이제 모든 걸 놓고 떠나야 한다.
이들이 홍수와 싸워 갈대밭을 개간한 건 대역사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엔 에코델타시티라는, 성격이 다른 대역사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
김해평야 산증인들이 무관심 속에 잊히고 있다.
이 씨는 "우리는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고 땅을 개간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생계대책을 논의하기도 전에
지질조사나 환경영향평가를 한다"며 "농민들은 공황상태다. 도무지 앞날을 알 수 없다"고 허탈해했다.
에코델타시티 개발 예정지에 포함된 부산 강서구 강동동 흙사람 작업실 '소담재'에서 허경혜 작가가 자신이 빚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권혁범 기자 |
세상에 지치고 상처받은 외지인들에게도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다.
허경혜(62) 작가가 대표적 사례다.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1982년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지점토 인형작가
사토미키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사토미키 선생에게 흙사람 빚는 법을 배운 허 작가는 1985년 귀국했다. 당시 우리나라엔 지점토 공예가 붐이었지만 그녀는 흙사람 만들기를
고집했다.
스승을 찾기 어려워 인체해부학이나 정밀묘사 관련 책을 보며 독학했다. 그녀에게 흙사람은 삶의 표현이고 거울이었다.
두 남매를 데리고 사하구 하단·괴정, 김해공항 뒷골목 등지로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을 찾아 전전했다.
산이 없어 황량했지만 들녘이 있고 석양이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정이 넘쳤다.
드디어 그녀에게도 평온이 찾아왔다.
삼각주에서 묵묵히 살아온 어머니·아버지의 모습은 작품 소재가 됐다.
하지만 허 작가는 또 이곳을 떠나야 한다.
에코델타시티 개발로 곧 소담재가 헐린다.
그래도 그녀는 낙동강을 떠나기 싫어 인근 명지국제신도시를 보고 있다.
그런데 신도시 쪽은 워낙 땅값이 비싸 고민이 크다.
차를 마시며 느낌을 나누는 자리다.
매주 월요일엔 스님을 모시고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다도를 가르친다.
남아 있는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활용하려는 거다.
그렇게 허 작가는 삼각주 시골 마을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 낙동강 삼각주
- 500년 전 형성 추정… 조선시대 염전 성업
삼각주 지형이 근대 지형도에 나타난 건 1900년대 초이지만, 이보다 앞선 대동여지도(1864년)에도
대저도 명호도 등이 그려져 있다.
따라서 대동여지도는 삼각주의 지형 발달 과정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오래전 지금의 다대포에서 내륙 쪽으로 깊숙하게 바다가 들어와 있었는데, 이 지역을 김해만이라 부른다.
즉 현재 낙동강 삼각주가 자리를 잡은 곳은 과거 바다였다.
가야시대를 지나 조선 초기까지 배를 타고 다니던 곳이다.
조선 세종 6~7년 경상감사 허연이 편찬한 경상도지리지 김해부읍지에는 '명지 사람들은 소금 굽는 일을 생업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명지염전은 1935년 휴업의 비운을 맞는다.
이때까지 명지소금의 연간 생산량은 100㎏들이 10만 가마였다고 전한다.
염전은 해방 후 뜻있는 사람들이 복구했지만, 1960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 자문위원
김경철(습지와새들의친구 습지보전국장) 김상화(낙동강공동체 대표) 김승환(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반용부(부산대 환경연구원 특별연구원·전 신라대 인문사회과학대학장) 주경업(부산민학회 회장)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협찬: K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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