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델타시티에 부산 미래 건다 <1-2> [낙동강 삼각주 이야기]- 서낙동강 '나루'의 추억
막배 놓친 사람들 주막서 공짜 잠 … 그믐밤 갈대숲 참게잡이 장관
지난 5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저동 옛 북섬나루에서 낚시꾼들이 한적하게 낚시를 즐기고 있다. 왼쪽의 상수도관에선 어린이들이 뛰어놀거나 낚시꾼들이 붕어와 잉어를 낚기도 했다. 권혁범 기자 |
- 삼각주 나루 70여 개 추정
- 보부상·학생·아낙들로 복작
- 처녀·과부 뱃사공 물길 갈라
- 상수도관 '워터파크' 역할
- 번성하던 상가·대중문화
- 곳곳에 다리 놓이면서 쇠퇴
- 북섬·해창·신노전 등만 흔적
- 몇 곳 복원·생활사 조사를
"막배 가요, 막배!"
오후 9시.
처녀 뱃사공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부산 강서구 대저동 서연정마을을 바쁘게 돌았다.
하루 치 장사를 끝내고 얼큰하게 취한 보부상이 헐떡거리며 주막을 뛰쳐나왔다.
밤늦게까지 여자친구와 놀다 때를 놓친 대학생도 허겁지겁 나루로 향했다.
붕어를 가득 잡은 낚시꾼도 아쉬움을 달래고 낚싯대를 걷었다.
아랫동네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아낙네도 농업용수로를 따라 나룻배를 향해 내달렸다.
"자, 이제 물 건너갑니다."
뱃사공은 노를 저었다. 막배는 서낙동강 물길을 가르며 경남 김해시 대동면으로 떠났다. 북섬나루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막배를 놓친 사내 몇몇이 나루 바로 옆 주막에 모였다. 이들은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켜고 나서는 주막에서 공짜 잠을 청했다. 30~40년 전 북섬나루는 언제나 복작거렸고,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했다.
■ 삶을 이어준 뱃길
1970년 녹산수문 근처의 나루에서 학생들이 나룻배를 타고 통학하는 모습. 부산 경일중학교 졸업앨범 |
낙동강 삼각주는 충적평야라 산이 없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나무를 구할 수 없었던 대저 사람들은 대동으로 건너가 땔감을 마련해
나룻배로 싣고 왔다.
북섬나루는 대저와 김해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대저엔 묘를 쓸 곳도 없었다.
그래서 대저 사람들은 서낙동강 건너 대동에 조상을 묻었다.
이 때문에 북섬나루는 명절 때면 성묘객으로 종일 북적였다.
번호표를 발행해 배 타는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당연히 주막은 흥청거렸고, 주모는 신이 났다.
막걸리와 삶은 달걀이 엄청나게 팔렸다.
서낙동강을 가로질러 놓인 상수도관도 기막힌 역할을 했다.
개구쟁이 어린이들은 이 좁은 관 위를 뛰어다니며 강을 건넜다.
그러다 지치면 강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다이빙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낚시꾼들도 상수도관에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북섬나루 자리는 1970~1980년대만 해도 팔뚝만 한 붕어와 잉어가 예사로 낚이는 황금어장이었다.
이 상수도관은 대저가 부산시에 편입될 때 식수를 김해공항까지 끌어오기 위해 만든 것인데, 지금은 기능을 잃고 흉물로 방치돼 있다.
북섬나루는 다행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루의 전설, 주모 문덕조(81) 할머니도 예전 주막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 할머니는 "옛날엔 정말 대단했다. 장사가 잘될 땐 달걀 10판(300개)을 삶아 하루에 다 팔았다"며
"처녀 뱃사공도 과부 뱃사공도 있었다. 지금은 한적한 곳이지만, 그땐 사람으로 넘쳐났다"고 회상했다.
나루엔 물류도 오갔다.
북섬나루에서 서낙동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지금의 강동교 밑에 해창나루가 있었다.
이 나루는 강동동 덕포마을과 강 너머 가락동 죽림리를 이었다.
가락중학교 학생들이 이용한 '통학나루'이기도 했다.
해창나루는 무엇보다 범선과 발동선이 오가는 상업항구로 번창했다.
규모도 컸다.
이곳엔 특히 오일장인 가락장터가 섰고, 장이 열리면 가락오광대가 한바탕 신명 나게 놀았다.
음식점과 숙박업도 번성했다.
김해평야 곡물의 집산지여서 정미업도 흥했고, 밤마다 술판이 이어졌다.
크기는 작았지만, 매우 요긴했던 신노전나루도 있었다.
평강천과 샛강을 사이에 두고 세 갈래로 갈라진 대저동(신노전마을)·강동동(천자도마을)·명지동(순아마을)을 삼각형 모양으로 연결했다.
에코델타시티 사업부지의 한가운데다.
'신노전'은 '새 갈대밭'이란 뜻으로, 원래는 갈밭 천지였던 곳이다.
삼각주 아래쪽 동네에서 부산 시내로 가려면 이 나루를 건너 버스를 타야 했다.
시내 학교로 통학한 학생들은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씩 걸려 밤이 깊어야 집에 닿았다.
세 마을을 잇다 보니 물가엔 주막들이 빙 둘렀다.
밤이면 수군수군 재잘재잘 이야기 소리가 강가를 메웠고, 술주정과 싸움도 끊이지 않았다.
현재는 대저동 신노전경로정 앞에서 흔적을 볼 수 있지만, 나루터 자리는 대부분 강 쪽으로
10m 이상 토사가 쌓여 땅으로 변했다.
■ 소통과 교류의 상징
향토사학자들은 낙동강 삼각주에 형성됐던 나루를 70여 개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흔적이나마 남은 나루는 북섬·해창·신노전 등 네댓 곳뿐이다.
나루는 그 시절 소통과 문화 교류를 책임졌다.
민속·생활사·마을소식·교육·대중문화 등이 뱃길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대부분 섬이었던 삼각주는 나루를 통해 같은 문화권을 형성했다.
육지의 문화가 물로 떠나고, 물과 뭍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기도 했다. 삼각주 주민은 흔히들 문화와 생활사를 "퍼 날랐다"고 표현한다.
삼각주 곳곳에 다리가 놓이면서 문화는 급속도로 전파됐지만, 절대
머무르진 않았다.
빠르게 전달된 문화는 정착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나루 근처엔 집과 주막이 빽빽이 들어서 문화를 모았지만, 다리 인근엔 모든 것이 사라졌다. 편리한 만큼 정도 메말라 버렸다.
나루엔 낭만도 흘렀다.
당시의 나루엔 갈대가 지천이었다.
강폭도 훨씬 넓었다. 물결이 찰랑거리고, 거기에 비친 달은 잔잔히 흔들리며 춤췄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갈대도 멋졌다.
그믐밤이면 참게를 잡으려고 너나 할 것 없이 횃불을 들고 갈대숲을 뒤졌는데,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처럼 풍류 넘쳤던 서민의 생활상도 다리가 놓이면서 볼 수 없게 됐다.
나루터 주위 옛길도 흔적이 없다.
대신 새로 뚫린 신작로만 남았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나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삼각주 주민의 삶과 문화가 집결된 나루를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에코델타시티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황규성 전 강서문화유적보존회장은 "에코델타시티 예정지는 예부터 들녘이 많았고 나루와 포구도 발달했다"며 "이를 중심으로 한 삼각주 주민의 생활사를 조사하면 김해평야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표적 나루 몇 곳을 복원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주경업 부산민학회장은
"구포·북섬나루는 현대판 나루로 복원 가치가 있다. 이용의 편의도 있고, 즐길 거리도 된다"며
"다리 등 다른 교통수단을 원활히 하면서도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 젓는 배가 대표적, 통통배·범선 등 다녀…승객이 줄로 끄는 배도
■ 낙동강 하구 나룻배
낙동강 삼각주 섬들을 이어준 나룻배는 노 젓는 배가 대표적이다.
통학하는 학생이나 보따리상, 나들이객, 짐꾼 등을 싣고 다녔다.
규모가 큰 나루에선 세월이 흐르면서 발동선이 등장했다.
해창나루 등지에서 30명 이상을 태웠다.
나중에야 디젤 엔진이 달렸지만, 첫 발동선엔 방앗간에서 쓰는 모터가 사용됐다.
이 배는 '통통' 떨렸고, '통통'거리는 소리도 컸다.
이 때문에 삼각주 사람들은 '통통몰이' 또는 '통통배'라고 불렀다.
학자들도 잘 모르는 사실.
낙동강 하구엔 줄로 끄는 배도 있었다.
강폭이 좁아 뱃사공이 필요 없을 땐 강 양쪽에 튼튼한 쇠밧줄을 매어 배 위에서
승객이 직접 줄을 잡아당기며 나룻배를 움직였다.
무수한 작은 섬들 사이에선 삿대를 이용해 배를 저었다.
에코델타시티 예정지의 중앙 부분(천자도·순아마을 주변)은 원래 큰 섬만 여덟 개였다.
지금은 다 메워졌지만, 작은 섬들은 훨씬 더 많았다.
이처럼 거리가 얼마 안 되는 섬들 사이는 삿대배가 다녔다.
이 밖에도 명지염전이 성했던 때엔 소금을 100섬이나 실을 수 있는 덩치 큰 범선도 낙동강을 누볐다.
뱃사공은 면사무소에서 허가를 받아 나룻배를 운영했다.
2~3년에 한 번씩 입찰을 통해 운영권을 따냈다.
마을 사람들에겐 뱃삯을 따로 받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씩 쌀이나 보리를 받고, 평소엔 그냥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뱃사공이 얼굴을 모르는 외지인들은 반드시 현금을 내야 나룻배를 탈 수 있었다.
뱃사공은 대부분 나루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살았다.
배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강 건너에서 손님이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했다.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협찬: K water
'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코델타시티에 부산 미래 건다 <1-3> [낙동강 삼각주 이야기]- 지켜야 할 '전래민속' (0) | 2014.01.29 |
---|---|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2-1> 물길 되찾기- '콘크리트로 덮인' 하천 (0) | 2014.01.25 |
에코델타시티에 부산 미래 건다 <1-1> [낙동강 삼각주 이야기]- '떠나는' 사람들 (0) | 2014.01.18 |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1-6> 동천 스토리- 부산의 중심, '서면' (0) | 2014.01.18 |
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1-5> 동천 스토리- '발원지'를 찾아서 (0) | 2014.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