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0-6> [新 강서별곡]- '허왕후의 첫날밤'-가상 인터뷰
행궁에서 치른 신혼 첫날밤, 서방님과 백년해로 하면서 가락국 창대하게 이끌자 약속
대화 어떻게? 느낌으로 아니까
- 말은 안 통해도 사랑의 감정은 시공 초월
- 서방님이 밝은 달이 나를 빼닮았다하여
- 첫날밤 보낸 곳을 명월산이라 이름 붙여
- 3곳에 사찰 세워… 지금은 흥국사만 남아
- 아들 열에 딸 둘 낳아 … 장남이 왕위 계승
- 왕자 중 일곱 명은 외삼촌 따라 불가 귀의
- 총명했던 묘견 공주는 왜국의 첫 여왕 돼
- 일본이 아무리 아니라 해도 역사가 말해
정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요. 싣고 온 파사석탑이 신통력을 발휘했던가 봐요.
저의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입니다. 가야에 올 때 제 나이가 열 여섯이었고요.
허황옥이란 이름은 후대에 붙여진 중국식 이름이라고 봐야죠.(한반도에서 중국식 성이 일반화된 것은
7세기 이후이다)
오늘은 특별한 얘길 좀 듣고 싶습니다.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과의 신행 첫날밤(初夜)에 대한 겁니다. 이야기 보따리를 좀 풀어주세요.
수로왕은 서기 42년 난생(卵生)했다고 돼 있지만(삼국유사), 사람이 어떻게 알에서 나나요?
건국신화의 시점을 맞춘 거겠죠.
수로왕의 심복 유천간이었죠.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나 봐요.
망산도(현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닿아 주포, 능현(강서구)을 거쳐 신방이 꾸며진 흥국사로 들어갔어요.
인도 경전 '베다'의 '혼인의 노래'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더럽혀진 옷은 버려라. 바라문에게 재물을 나눠라…'.
첫날밤을 맞는 신부의 처녀막이 온전한지 확인해 서로 신뢰를 쌓게 하는 관습이죠.
듣자하니 제가 속곳을 벗은 자리가 능현(비단치 고개)이라 불린다죠.
(이종기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에서 부분 인용)
휩싸였을 거예요. 왕후장상도 벗겨보면 똑같은 인간이고, 사랑의 감정도 시대를 초월해 비슷한 거 아닐까요.
명월산 위로 달이 백옥같이 밝았고요. 신방 뜨락으로 나와 달을 보며 잠시 고향생각에 빠졌죠.
어느샌가 서방님이 다가와 살포시 제 어깨를 감싸며 말했어요.
"그대는 저 밝은 달보다 더 현숙하구려. 내 그대와 백년해로하며 가락국을 창대하게 이끌고 싶소. 날 믿고
도와주오…."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낯이 붉어졌죠. 저도 한마디 했죠.
"하늘의 뜻으로 맺은 가약, 사랑과 믿음으로 서방님을 도와 가락국 만대가 번창하도록
저의 모든 걸 바치겠다"고 했지요.
# 명월산의 밤은 깊어가고
김수로왕과 인도에서 온 허왕후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부산 강서구 지사동 흥국사(興國寺). '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절 이름과 이곳의 산 이름인 명월산(현 보배산), 그리고 사왕석 등이 가락국 시대의 자취로 알려져 있다. |
저를 닮았다며 그리 명명하셨어요. 그후 서방님은 저희가 첫날밤을
보낸 곳을 기린다며 명월산에 3곳의 절을 세웠어요.
세자를 위해 서쪽 벼랑에 신국사(新國寺)를, 저를 위해 동쪽 골짜기에 진국사(鎭國寺)를, 그리고 서방님 자신을 위해 산 가운데에 흥국사(興國寺)를 세운 거죠. 이를 삼원당(三願堂)이라 부르기도 했죠.(현재는 명월사지에 흥국사만 남아 있음)
썼고, 서방님은 가락어를 사용했어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서로를 보며 한참 웃었어요. 그러다 한자로 수담을 했죠.
말이 안 통해도 느낌으로 아니까…. 후후, 사랑엔 국경이 없고,
사랑하면 다 통하는 거 아닌가요?
거시더군요. 산속에서 올빼미들이 울었어요.
올빼미눈처럼 하고 있으려니 이목구비가 또렷해져 더욱 아름답다 며 절 꼬시더라고요. 헉, 이거 수작 맞죠.
그래서 후에 김(金)씨 성을 갖게 된 거래요. 무엇보다 소박한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않았고, 흙으로 쌓은 계단이 석 자밖에 되지 않았어요. 백성과의 낮은 자리 눈높이를 맞추려는 자세였죠.
그러나 나라의 격을 높이는 대목에선 높은 자리 눈높이를 택하셨어요.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해서 그 교화가 엄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위엄이 있었죠.
('삼국유사' 전문자 고운기 시인의 분석)
# 왕자와 공주들의 행방
남방불교 유물로 꼽히는 사왕석. |
들어갔죠.
불공에 방해된다며 돌아가라고 매정하게 자르더군요. 돌아설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길이 멀수록 모정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 몇 년뒤 다시 찾아갔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8월 대보름달이 산천을 비추고
있는데, 산문 밖에서 오빠가 전과 달리 웃으며 '이제 만나보시지요'라고 하지 않겠어요. 바삐 안으로
들어가니 왕자들의 소리가 들렸어요.
"…어마마마, 연못을 보면 저희를 만날 수 있어요…"
아, 달빛이 투영된 못속에 황금빛 가사를 걸친 일곱 아들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게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지리산 칠불사 전설 인용)
◆ 우리나라 국제결혼 1호 등 콘텐츠 무궁무진… 허왕후 스토리를 팔아라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락국에 도착해 첫 발을 디뎠다는 부산 강서구 송정동의 망산도. |
허황옥,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는 우리나라 국제결혼 1호, 최초의 다문화가정, 여권(女權) 신장, 지혜의 상징이라 할만하다. 허씨 성이 그로부터 이어내렸고, 인도 아유디아와의 교류도 그로부터 비롯됐다.
허왕후 설화는 한국문화사의 상징적 테마이자 시공을 초월해 각광받는 역사문화 콘텐츠다.
허왕후를 직·간접으로 다룬 콘텐츠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1970년대 중반 아동문학가 이종기 씨(95년 작고)는 인도 아요디아 기행을 바탕으로 '가락국탐사'(일지사·1975)를 펴내 이 방면 연구의 물꼬를 텄다. 1997년 출판된 이 씨의 '춤추는 신녀-일본의 첫 왕은 한국인이었다'(동아일보사)는 가야의 묘견공주가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고, 그가 곧 왜국의 첫 왕 히미코(卑彌乎)라고 주장해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고고학자 김병모 씨의 '김수로왕비 허황옥'(조선일보사·1994)과 개정판 '김수로왕비의 혼인길'(푸른솔·1999)은
허왕후가 인도에서 중국 안악현 보주(普州)를 거쳐 김해로 들어왔다는 가설을 펼쳐 가야사의 지평을 넓혔다.
반면 소설가 강평원 씨는 지난 2001년 '쌍어속의 가야사'(생각하는 백성)란 책에서 허왕후의 고향이 중국 내륙지방인 서장성의 아유타국 아리지방이라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도 '허황옥 가야를 품다'(김정, 푸른책들), '가락국의 후예들'(김병기, 역사의아침), '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박창희, 이른아침) 등이 허왕후 이야기를 조곤조곤 다루고 있다.
공연물도 적지 않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AG) 때 총체무극 '허왕후'가 무대에 올려졌고, 2009년 양성평등 지역문화 확산사업으로 총체극 '가야여왕 허황옥'이 공연됐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는 허왕후 이야기를 뮤지컬 등으로 각색해 매년 가야문화축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부산관광공사는 올해 망산도~유주암~흥국사~김수로(허왕후) 왕릉 구간을 '로드 스토리'로 개발, 관광상품화를 모색한 바 있다. 경남도와 김해시는 확대 스토리텔링 사업의 일환으로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김해까지 허왕후 신행길 전체를 '아시아의 영원한 사랑의 길(Asia Forever Romance Road)이란 주제로 문화관광상품을 개발 중이다.
※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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