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진을 재발견하다] 11. '스펙터클'에 맞서다 / 최원락
삶의 터전 화려함 벗다
▲ 사진의 힘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은 아마추어부터 프로사진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카메라에 담긴
이른바 인기 있는 사진 소재이다.
특히 산비탈을 깎아 빽빽하게 앉혀 놓은 집들의 알록달록한 지붕은 감천동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부산의 산토리니니 마추픽추니 하는 화려한 수식어는 감천동을 스펙터클로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
'파편화된 일상을 거짓으로 통합하는' 바로 그 스펙터클 말이다.
하지만 최원락은 감천동 마을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그는 사진을 찍으면서 그동안 무관심했던 자신의 주변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온몸에 상처가 난 청년이 진료실에 찾아왔고, 이것이 그가 감천동 마을과 맺은 관계의 시작이었다.
관계성은 시선에
변화를 주는 순간 생겨난다.
최원락에게 감천동은 화려한 색채로
오히려 그곳은 흑백의 명암과 다양한 회색의 톤들이 압축되고 분리되는 삶의 공간이다.
사선 구도의 마을풍경은 나뭇가지에 걸려 마치 깃발처럼 나부끼는
검은 비닐과 조화를 이뤄 안정된 공간감을 형성한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의 몸을 자해하면서 평온함을 느끼는 청년의 상처 자국은
검은 배경 속에서 도드라지기보다는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가 담담하게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은 흑백사진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일 터.
이로써 그의 사진은 스펙터클의 현란함과 눈요깃거리에 저항할 무기를 획득한다.
최원락은 프레임을 잘 활용한다.
그가 구성하는 프레임은 시각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이미지의 관계성을 사유하게 한다.
빨랫줄과 함께 펄럭거리는 태극기가 태양으로 인해 구멍이 난 듯 보이는 사진이라든지, 왼편의 인물을 아웃포커싱해서 '돈 쓰지 마'라는 글씨가 두드러지는 사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개별적인 사진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의 맥락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그는 검은 비닐 깃발과 태양이 겹쳐 빛나는 태극기, 십자모양의 흉터, 벽에 쓰인 텍스트, 마루 밖으로
삐져나온 발 등 공통점이 없는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해 감천동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최원락에게 감천동 마을은 자신이 사진을 통해 다가서고 관계를 맺는 생동감 넘치는 장소이자
누구에게나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을 스펙터클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재현으로 물러난 삶을 불러낸다.
다시 말해, 그는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진짜 우리 삶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스펙터클을 넘어서려는 '상황'을 구성한다는 차원에서, 이것은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하나의 예술전략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글=이미정/사진평론가
최원락
◇약력=1955년 경남 고성 출생.
현재 내과 전문의로 최원락 내과 원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부산 시청자 미디어센터에서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수료.
영상작가전문교육원 시나리오 과정 수료. 개인전-'아버지의 자리' (2010년, 서울 공간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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