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4-1>
[부산시민공원 스토리]- 팩션- '하야리아' 땅의 비밀
"정신대 끌려간 여동생을 찾아야 한다"
일남은 스스로 일본군에 자원, 온갖 고초 겪으며 포로감시원이 됐다
옛 하야리아 부지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부산시민공원 내의 역사관 전경. 김성효 기자 |
- 일본군 오장을 유인, 죽이는 등
- 수용소서 남몰래 독립운동 활동
- 마침내 해방된 조국 맞았지만
- 전범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 마지막 외침은 "대한민국 만세"
- 미군부대 들어와 60여 년 주둔
- 시민 품으로 다시 돌아온 자리
- 땅 속 항아리서 나온 문서 한장
- 조선독립 청년단 창당 선언문
- 일남의 이름이 맨 위에 있었다
# 1
1942년 옛 하야리아 땅에서 활동한 포로 교육대의 한인 군속들. |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2년 6월 포로감시원을 교육시키는
부산 서면 연지동 감시군속교육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밤 12시가 되면 말을 탄 유령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포로감시원 교육생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포로감시원들은 서로 밤 12시에는 보초를 서지 않으려고 했다.
일본인 교육대장 [헤비 모리]가 고함을 질렀다.
"무시기 소린가, 밤에 유령이 나타난다니!"
교육대장은 성격이 뱀처럼 차갑다고 해서 별명이 헤비(일본어로 뱀) 모리였다.
헤비 모리는 왼손잡이로 항상 왼손에 말채찍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등짝을 내리치며 교육을 시켰다.
게다가 그의 광대뼈 밑에는 비늘 같은 희고 볼록한 흉터가 있는데
그것이 그를 더욱 [파충류 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자신의 [전령] 기노시타를 불렀다.
"어이, 기노시타!"
기노시타 이치오는 [조선인]으로, 창씨개명 전 이름은 박일남이었다.
"밤 12시에 말 탄 유령이 나타나 감시원들 사이에 서로 보초를 서지 않으려고 한다고?"
"그렇습니다. 유령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모두들 보초를 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헤비 모리가 말채찍으로 박일남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닥쳐라! 겁 많고 게으르고 건방진 후데이센징(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20세기 중반에 무슨 유령타령이냐?"
"그래도 소문이 쫙 돌고 본 사람이 있다는데요."
"틀림없이 대일본제국의 포로감시원 제도를 흔들려고 지어낸 말일 것이다.
전에 경마장을 운영한 걸 두고 조센징들이 선동을 하는 거야. 기노시타!"
"예."
"오늘 밤에는 나와 일본오장(伍長)들, 포로감시원 전체가 보초를 선다.
그래서 말 유령이 나온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헛소문임을 모두에게 보여주겠다. 모두에게 전해라, 알겠나?"
"옛!"
박일남은 대장의 말을 일본인 오장들과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에게 전했다.
특히 고향이 같은 울산인 친구 김덕구에게 이 말을 전했는데 김덕구는 정말 떨고 있었다.
"야, 일남아. 말 유령까지 나온다는데 우리 아무래도 여기 잘못 온 거 아이가."
김덕구는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되면 월급 50엔에 포로나 감시하며 후방에 편안하게 근무한다는 말에
속아 여기로 왔다.
대부분의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죽느니 차라리 후방의 포로감시원이 낫다는 생각에 전국 각지에서 이곳 부산 [서면 교육장]으로 몰려온 것이다.
다만 박일남만은 정신대에 강제로 끌려간 여동생 박순녀를 찾기 위한 일념으로 왔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아리따운 여동생 박순녀는 일본인 오장에게 붙들려 정신대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육개월 뒤 여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주소지가 버마 국경지대였다.
마침 그곳으로 가는 포로감시원을 뽑는다는 말에 박일남은 포로감시원에 지원했고,
조선인들 중에서 머리회전과 동작이 남보다 기민했던 그는 [헤비 모리의 전령으로 발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포로감시원 교육장에 와보니 군인들 이상으로 힘든 총검술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일본인 오장 밑에서 짐승처럼 갖은 학대와 수모를 당해야 했다.
교육대장 헤비 모리를 비롯해 [일본인 오장들은 말채찍을 들고]
수시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등짝을 치면서 말하곤 했다.
"앞으로 너희들이 감시할 포로들은 모두 기치쿠베이에이(귀축미영·鬼畜米英: 미국과 영국을 귀신·짐승처럼 여김) 양놈들이다. 키가 크고 피부는 하얗고 눈은 파랗고 머리는 노랗지. 하지만 기죽을 것 없어! 네놈들도 우리가 하듯이 양놈 포로들의 등짝을 이렇게 후려갈기는 거야. 말은 덩치만 컸지 멍청한 축생 아닌가."
애당초 생각과 다른 이런 대우와 학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포로감시원도 몇이 있었다.
박일남이 힘들어하는 김덕구에게 말했다.
"덕구야, 걱정 마라. 조선말 유령이 우리를 돕지 설마 우리를 죽이려고 하겠나?"
그날 밤 헤비 모리와 함께 일본인 오장들, 조선인 포로감시원들 전원이 보초를 섰다.
밤 12시가 지나서였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연지 언덕 너머로 조그만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커졌다.
"다그닥 다그닥 따그닥 따그닥!"
"기노시타,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유령의 말발굽 소리는 아니겠지?"
헤비 모리가 갑자기 권총을 든 손을 부들거리며 언덕을 향해 겨눴다.
"유령의 말발굽 소리 같은데요."
"경마장이 폐쇄된 지 수 년이 지났는데 무슨 말 달리는 소리냐!"
그 때 갑자기 말이 언덕 위로 뛰어오르며 말을 탄 한 장수가 나타났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조선 장수였다.
"네 이놈들! 나는 동래부사 송상현이다!"
그러자 누구랄 것 없이 모두들 놀라 고개를 납작 엎드렸다.
"나는 이곳에서 왜놈들을 물리치고 죽었건만 너희들은 왜놈들의 하수인이 되어 비겁하게 살려느냐?
조선인의 기상을 잃지 말라!"
이 말을 남기고 말 탄 장수는 순식간에 바람처럼 연지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색이 된 일본군들은 뒤늦게 허공에다 마구 총질을 해대며 허둥거렸지만 말 탄 유령은 떠나버린 뒤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에게는 그날 밤 이후 뜨거운 자긍심 하나가 자리 잡았다.
# 2
일본 도쿄 국제 전범재판소.
[CHQ(일본점령연합군 총사령부)]는 1945년 9월 11일부터 전쟁범죄 용의자의 체포를 시작하여
진주만 공격 당시의 내각 각료인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 A급 전범 39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겉으로는 엄한 듯했지만 최고의 전범 일본 천황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포로들의 몸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사면되어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재판과 기소는 끈질기고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일본인의 잔혹한 포로 학대 정책으로 연합군 포로들이 수없이 죽어나갔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 했다.
미국인 재판관 토마스가 영어로 말했다.
"박일남, 김덕구 나왓!"
들피지고 피곤한 모습으로 박일남, 김덕구가 법정으로 끌려나왔다.
"네놈들은 태국과 버마를 잇는 콰이강 다리 공사를 할 때 포로감시원들이지."
"예, 그렇긴 합니다만."
"박일남은 악질 소장 헤비 모리의 전령이고, 김덕구는 포로들의 뺨을 때리며 학대한 놈인가?"
"아닙니다. 우리 둘은 조선인으로 독립단체를 만들어 오히려 일본군에게 저항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헤비 모리의 전령이 맞긴 하지만 헤비 모리를 정글로 유인해 폭사시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이 통역, 이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하지만 [미군 통역병]은 영어를 일본어로 통역하고 [일본인 통역]은 다시 일본어를 한국어로
재통역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콰이강가의 [충카이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박일남과 김덕구를 비롯한
한인 포로감시원들이 배치된 것은 사실이었다.
일본군은 전략상 필요에 의해 태국과 버마를 연결하는 태면철도(泰緬鐵道)를 건설하였다.
이 울창한 밀림지대를 뚫고 건설되는 철도공사에는 연합군 포로 5만5천명이 강제 동원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난공사인 [콰이강의 다리]를 건설하는 데 헤비 모리와 박일남과 김덕구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 험한 곳을 박일남은 스스로 지원했다.
이곳 버마로 끌려간 여동생 박순녀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서 사방으로 박순녀를 수소문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는 여동생을 찾는 대신 비밀단체를 결성해 조국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 소장 헤비 모리는 박일남과 김덕구 등이 결성한 저항군이
밀림 속으로 유인해 은밀하게 폭사시켰다.
하지만 갑자기 [일본이 항복을 해버리자] 포로감시원인 이들은
하루아침에 포로 신세로 뒤바뀌어 전범이 되고 말았다.
미군과 일본인 통역병 둘이 서로 수군대더니 말했다.
"예, 자신들이 콰이강 다리 공사 때 미군 포로를 학대하던 포로감시원이 맞다고 합니다.
특히 박일남은 악명 높은 헤비 모리의 전령이 확실합니다."
또한 법정에 나와 증언하는 미군 포로들은 일본군보다 한국인을 더 증오했다.
일본군은 뒤에서 한국인 포로감시원에게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포로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콰이강의 철도 공사 현장으로 미군 포로를 끌고 갔던 것도 [한국인]이었고,
그들 앞에서 감시한 것도 [한국인 포로감시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군 재판장은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전범들이 자신의 죄를 모두 시인한 만큼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B급 전범 박일남 사형, C급 전범 김덕구 20년!"
동경 국제 전범 재판소는 최종적으로 B급 전범으로 한국인 포로 감시원 박일남을 비롯해 14명을 사형에 처하고, C급 전범 김덕구 등 115명은 종신형, 20년 형 등을 언도 받아 일본 스가모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해야 했다.
박일남은 교수형을 당하기 전 담배를 한 개피 피며 말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일본국의 전범으로 죽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
하지만 갓 독립한 우리나라가 힘이 없으니 어쩌겠나.
이게 식민지 국민의 운명이니 웃으면서 죽을 수밖에.
다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죽었다가 다음 세상에는 강한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다."
박일남의 말이 끝나자 사형집행관은 그의 목에 밧줄을 감고 용수를 뒤집어 씌웠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철컥 마루 밑이 빠지고 그는 허공에 매달린 채 버둥거리다 조용해졌다.
# 3
[광복 후] 포로감시원 교육대의 자리에 미군이 들어왔다.
그 이후 60년 동안 눌러 앉았던 [하야리아 부대]가 물러나고 그곳에 부산시민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공원 터를 닦기 위해 일하던 [포클레인 기사]는
며칠 전부터 추레한 차림의 한 노인네로부터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름이 김덕구라는 그 노인은 일제 패망 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곳에 금괴를 묻었다는 것이다.
포클레인 기사는 노인네의 말을 듣고 긴가민가하면서 혹시나 하고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파보았는데
금괴는커녕 미군들이 묻은 쓰레기들만 잔뜩 나왔다.
그런데 오늘도 노인네가 나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참견했다.
"이쪽에 보물이 묻혀 있을 듯한데."
"영감탱구가 오늘도 망령이야. 보물은 무슨 보물! 방해되니 저리 가요."
포클레인 기사는 신경질을 부리며 삽날을 푹 찍었다.
그때 텅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무슨 쇠 항아리 같은데?"
삽날로 찍어 올린 항아리 안에는 문서 한 장이 있었다.
조선 독립 청년당 창당 선언
우리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일본제국주의가 반드시 패망하고 조선이 다시 독립될 것이라고 믿는다.
말을 탄 송상현 장군의 유언비어와 출현은 우리 포로감시원 중 조선 독립 청년당이 한 일이다.
이 일로 우리 포로감시원들은 큰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며칠 뒤면 우리들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지회를 만들어 독립투쟁을 계속해 마침내 광복된 땅에서 만날 것이다.
1942년 6월 30일
조선 독립 청년당 대표 박일남 외 30명
김하기 소설가
※ 공동기획 :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시설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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