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도 모르는] <19>
부산 사람의 타오르는 온기, 추억의 '연탄' 이바구
겨울나기 벗인 동시에 목숨 앗아가던 검은 死神 …서민 애환 서린 결정체
연탄은 서민들이 겨울을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연료였지만 치명적 가스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은 부산의 한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트럭에 싣고 있는 모습. 부산박물관 제공 |
- 나무 땔감보다 편리해 인기
- 1960년대 대부분 가정 사용
- 소비 늘면서 연탄 부족 파동
- 매년 상승 가격도 걱정거리
- 우후죽순 연탄 공장 통폐합
- 1978년 부산서는 6곳 생산
- 부전역 인근 있던 부일연탄
- 2008년까지 끈질기게 만들어
- 보국여관 묵었던 여대생들
- 가스 중독돼 사망하며 파장
- 석유값 내리며 점차 사라져
- 산동네에선 아직 온기 지펴
■ 연탄 한번 갈아보셨습니까?
산업화 시기 우리나라는 연탄공화국이었다.
이 시절 연탄을 경험해 본 세대를 '연탄 세대'라고 한다.
연탄 한번 갈아보지 않고, 연탄재 한번 치워보지 않고 당시 서민 생활을 이해할 수 없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연탄과 쌀, 그리고 김장을 준비해야 마음이 놓였다.
부잣집 창고에 수북이 쌓인 연탄은 부를 상징했다.
반면, 가난한 서민은 연탄을 한두 개씩 새끼줄에 매어 들고 나르면서 따뜻한 겨울나기를 소망했다.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말라고 연탄재를 뿌려주었고, 언덕길에서 오가도 못하는 연탄 수레를 보면
뒤에서 밀어주었다.
이렇게 인정과 온기의 상징이었던 연탄은 때론 무서운 사신(死神)이 되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연탄은 장작의 대체연료였다.
1920년대 평양광업소에서 연탄이 생산됐지만,
본격적으로는 한국전쟁 시기 부산에서 가정 난방 연료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부산의 산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거의 민둥산이다.
연료를 전부 땔감에 의존했기 때문에 부산의 산림은 거의 황폐한 상태였다.
1952년 정부는 임시수도 부산에서 연탄 사용을 역설했으며, 1953년에는 서울과 부산 등 주요 도시에
장작 반입 금지령을 공포했다.
한국전쟁 탓으로 더욱 황폐해진 산림의 보호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장작에서 연탄으로의 변화는 주거 시설의 변화를 가져왔다.
땔감으로 활활 타던 아궁이는 이제 연탄을 넣는 '연탄 바께쓰'로 바꿔야 했다.
■ 1960년대 난방의 총아인 연탄
부산의 한 연탄가게에서 손수레에 연탄을 옮기는 장면. 부산박물관 제공 |
연탄은 구멍 수에 따라서 9공탄, 19공탄, 22공탄, 25공탄 등으로 나뉜다. 1950년대 초반에는 9공탄이 생산됐으나 1955년 이후부터 19공탄으로
대체됐다.
[구멍이 많을수록 화력이 세기] 때문에
19공탄은 출시되자마자 곧 인기를 끌었다.
19공탄은 표준 품질에 따르면 12시간 연소해야 정상이었지만
실제 하루에 3~4번씩 연탄을 갈아줘야 했다.
연탄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는 장작과 숯을 때는 것보다
훨씬 편리해 주부들이 환영했다.
하지만 연탄불을 확인하면서 매번 갈아주는 일이 고역이었다.
연탄불이 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자 연탄불을 빠르게 피워주는 번개탄이 등장했다.
1960년대 연탄 사용량이 크게 늘었으며, 부산의 가정에서 대부분 난방과 취사연료로 [연탄]을 사용했다.
가을부터 연탄 사용이 급증하기 때문에 연탄 기근은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비화했다.
특히 1965년 겨울에 불어 닥친 [연탄 파동]은 정부의 연탄 수급 관리와 가격 대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시켰다. 하지만 습기가 많은 연탄은 사용할 수 없으며, 가을철에 서민이 대부분 연탄을 사들였으므로
되풀이되는 연탄 파동은 피할 수 없었다.
1967년과 1969년에도 부산 사람은 연탄 파동과 수급 차질의 찬바람에 떨어야 했다.
매년 상승하는 연탄값도 서민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부산의 연탄값]은 부산시와 연탄제조업자가 협의해 결정했지만,
실제 [거래되는 가격]은 시내와 변두리마다 차이가 났다.
■ 탄가루 날렸던 부산의 연탄공장
연탄의 원료인 무연탄은 우리나라 강원도에 무궁무진하게 매장되어 있다.
삼척 탄광에서 캐낸 무연탄은 전국의 연탄공장으로 운송됐다.
[무연탄]은 [유연탄]에 비해 순간 화력이 떨어지지만, 연기와 그을음이 적기 때문에 연탄의 원료로 적합했다.
[연탄]은 무연탄을 압축해 만드는데 프레스 제조기가 나오면서 생산 효율성이 높아졌다.
정부가 운영하던 연탄공장이 민영화된 때는 1954년이었다.
연탄공장들은 연탄 수요와 함께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1960년대 후반에는 전국적으로 400여 개나 되었다.
1978년 정부가 작은 연탄공장들을 통폐합한 결과, 부산에는 [6개의 연탄공장]에서 연탄이 생산됐다.
부일연탄, 일자표연탄, 보림연탄, 왕표연탄, 협성연탄 등이 부산 연탄공장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2008년까지 끈질기게 연탄을 생산했던 부일연탄은 부전역 인근에 있었다.
강원도에서 생산한 무연탄 연료를 동해남부선을 따라 바로 운송하기 위해 역전 인근에 있었다.
연탄공장은 서민에게 온기를 주는 고마운 공장이었지만, 인근에 사는 주민에게는 골칫거리였다.
바람을 타고 날리는 탄가루는 호흡기에 좋지 않았으며, 애써 빨래한 옷들을 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보국여관 연탄가스 중독사고
연탄가스 중독사고는 겨울철 신문의 사회면 주요 기사로 등장했다.
연탄이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치명적인 가스였다.
일산화탄소는 냄새도 맛도 없이 은밀히 다가가 잠자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더욱이 집안에서 사용하는 연료였기에 식구가 함께 떼죽음을 당하는 비극이 연출됐다.
연간 수백 명씩 가스중독으로 사망하자 연탄은 '살인탄', '검은 사신', '겨울철 살인복병' 등
수많은 오명을 얻게 되었다.
부산 사람도 검은 사신을 물리치지 못했다.
1955년 온돌방에 쥐가 낸 구멍으로 가스가 새어나와 괴정동의 젊은 청년이 죽었고,
1956년 범일동의 한 가족이 가스에 중독돼 어린 딸이 사망했다.
1957년 온천동 모 중령 집에서 연탄가스로 자녀 두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962년에는 부산을 찾아온 젊은 숙명여대 학생 2명이 중앙동 보국여관 객실에서
가스 중독으로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음악회에 출연하기 위해 부산에 온 꽃다운 나이의 여대생이 사망한 사건이었기에 사회적 파장이 컸다.
보국여관은 객실 난로의 연통을 몇 개로 연결해 연기를 배출했다.
학생들은 잠자기 전에 방 안 공기가 안 좋다며 난로에서 연탄을 빼달라고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른 객실의 난로에서 나온 연탄가스가 연통을 타고 학생의 방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난로의 연통을 가설하거나 온돌을 수리한 업자의 책임으로 호되게 몰고 갔다. 하지만 연탄가스 중독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일은 아니었다.
애초 연탄 사용을 권장하고 온돌과 아궁이 시설의 개량을 꾀한 것은 정부였기 때문이다.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연탄은 따뜻하지만 위험했다.
해마다 끊이지 않는 연탄사고와 품귀 파동, 그리고 대기 오염까지.
연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인해 유류와 프로판 가스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기름값이 워낙 비싼 데다 가스 공급을 위한 시설 투자가 만만치 않아 이런 시도는 번번이 좌초됐다.
1980년대 유가 인하 정책이 단행되어서야 기름을 사용하는 가정이 늘어났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연탄을 찾는 사람이 점차 줄었다.
화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듯 했던 연탄에 다시 불이 지펴진 때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였다.
아직도 부산에서는 연탄을 때는 서민이 많다.
서구 아미동과 같은 산동네에는 연탄은행이 문을 열었고, 사랑의 연탄 나르기 운동도 벌어진다.
이제 연탄은 훈훈한 사랑과 인심을 가리키는 추억의 상품이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에게 물어보자.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활활 타오르는 연탄과 같이 남을 위해 뜨겁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
아니라면 산동네에 굴러다니는 연탄재를 함부로 찰 일이 아니다.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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