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따라 골목따라] '충무시장 실비집' 골목
장마 속 주막집 풍경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온 도시가 촉촉이 젖는다.
건물이 젖고,도로가 젖고,사람들 마음마저 속절없이 젖는다.
바야흐로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비가 오면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르고 첫사랑의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렇게 비 오는 날 서민들은,애잔함을 달래려 '파전 부쳐 먹기'를 즐기곤 했다.
빗소리 들으며 허름한 주막집에서 막걸리 한잔 들이켜며 찢어먹던 파전.
그 아련한 낭만의 주막시절을 대부분의 가장들은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 오는 날의 허름한 주막. 흔들리는 유리창 사이로 빗방울이
듣고,연탄불 위 철판에는
파전이 지지직지지직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곳.
이러한 장마 속의 주막 풍경이 충무동 한 구석진 골목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충무시장 실비집 골목이 그 곳이다.
충무동 네거리 근처에 있는 이 실비집 골목은 약 10여년 전부터 한두 집 생기기 시작하여
지금은 약 20여 곳이 성업 중에 있다.
처음엔 장을 보러 온 아낙네들의 주전부리나 동네 남정네들의 소일거리 잔술을 팔던 곳이었다.
손님이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팔던 곳이니 정해진 상차림표도 없고 정해진 가격도 없었다.
그러던 곳이 2~3년 전부터 값싸고 맛있고 푸짐하다는 소문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며
지금의 시끌벅적한 골목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 골목의 원조격인 금강집에 들어선다.
"어서 오이소! 오랜만이네예?"
싹싹한 주인과 후덕한 안주인이 반갑게 객을 맞는다.
부부가 운영하는 이 집은 안주인의 넉넉한 미소만큼 음식도 맛깔스럽다.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제일 싼 음식은 계란말이로 천원이며 제일 비싼 음식은 조기 매운탕으로 5천원이다.
5천원짜리 음식은 조기 매운탕이 유일하다.
20여가지 음식을 팔고 있는데 주로 지짐 종류와 생선요리 종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짐은 파전,정구지전,감자전,김치전 등이 있고 생선 종류로는 조기구이,고갈비,서대구이,납세미구이 등
생선구이와 가오리찜,명태찜,서대찜 등 생선찜 등이 입맛을 자극한다.
그리고 진국홍합탕,해물탕,조기매운탕 등 칼칼하고 시원한 탕 종류도 뒷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이 집의 대표 격인 파전과 조기구이,홍합탕을 시킨다.
먼저 파전이 들어온다.
한점 크게 찢어 입에 넣는다.
두 볼 가득 향긋한 파내음이 퍼진다.
오동통한 파의 몸통이 아삭아삭 씹히는 게 일품이다.
맛으로나 양으로나 일반 음식점의 만원짜리 해물파전 부럽지 않다.
이어서 조기구이가 나온다.
노릇노릇하니 잘 구워졌다.
우선 조기 대가리를 떼어내 씹는다.
생선구이 특유의 짭짤함과 구수함이,바싹하게 씹히는 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남김없이 통째 먹는 조기구이 맛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곧이어 나온 진국홍합탕은 입가심 음식의
백미다.
냄비 가득 넘치도록 홍합을 담고 약간의 물로만 끓여내는 진국홍합탕은
뽀얀 국물의 시원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땡초로 입맛을 살린 그 매콤함이 기름진 음식의 입가심으로 안성맞춤이다.
비가 오면 도시의 서민들은 걱정이 앞선다.
힘든 세상살이가 빗물처럼 가슴을 적시기 때문이다.
서민의 애환과 함께 하는 이 빗속에서,그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실비집 골목.
이런 골목들이 있어 우리 서민들은,이 삭막한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을 위해,사랑을 위해,미래를 위해…
최원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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