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계획 1
'생과 사'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
![]() |
▲ 묘지와 화장막은 막연하지 않게 죽음의 실체로 경험된다. 사진은 부산영락공원에서 성묘객이 벌초하는 모습. |
주검을 매장해 봉분을 만들어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풍습은 우리의 독특한 장묘문화이다.
그러나 장묘문화도 묘지로 사용할 국토가 부족해 화장(火葬)한 후
유골을 납골이라 불리는 곳에 보관하거나 땅속에 묻는 문화로 변하고 있다.
묻힐 묘지가 마련되어있지 않는 사람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화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에는 유골을 어디에 안치할 것인지 생각해 자손에게 일러 주어야 한다.
죽음학 수업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장소는 (공원)묘지와 화장막이다.
가까운 이의 장례를 직접 지켜본 이에게 묘지와 화장막은 막연하지 않게 죽음의 실체로 경험된다.
그래서 나는 장례나 벌초 때 가급적 폐가 안 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나와 유전학적으로 가장 많이 닮은 어른이, 돌아가셨지만 여기 (여전히)계시고, 가끔 이렇게 뵈러 온다는
세대 연속성이 생생하게 학습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도 언젠가 이런 모습으로 사라지겠구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면,
이는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나 역시 화장막에서의 첫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동생의 주검은 나에게 친근하며, 나의 가슴에 살아있었다.
그러나 관이 불구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몇 초간이 지나고, 우리는 말없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후 등장한 하얀 뼈들은 동생이란 존재를 영원 속으로 보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후 나는 청소년기를 지난 아이들에게도 부모의 현존과 사라짐의 경계를 확실히 알리기 위해
장례의 모든 절차에 동행하기를 권했다.
장례(葬禮)는 문화와 종교에 따라 그 의례 형식이 다소 다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장례는 죽은 자를 애도하면서 잘 보내려는 남은 자들의 예의(禮儀)이고,
그 애도 과정 동안 남은 자들이 받는 위로(慰勞)의 시간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형식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상 가서, 나는 유족의 특성에 따라 향을 붙이거나, 절하거나, 헌화한다.
특히 장례는 비일상적인 일이므로 유족의 입장에서도 그 절차를 다 알고 있을 순 없다.
장례전문가(대학의 관련학과, 장례지도자 양성과정 등에서 배출됨)가 있기에 그들과 상담해
적절한 형식을 구성하면 된다.
장례가 가진 영향 중 하나가 고인(故人)을 보내면서 남은 가족들이 새로이 연결되고 결속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부모 사후에 오히려 자녀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장례를 치른다는 그 과정은 흔하지 않게 우리에게 생(生)과 사(死)를 동시에 생각하도록 하고,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관적 답이라도 찾아보게끔 한다.
부모 사후, 비로소 내가 여기 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는 말들도 같은 의미이리라.
이기숙
전 신라대 교수
국제죽음교육전문가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에서 배운다] 장례 계획 2 (0) | 2016.03.19 |
---|---|
"김주열 열사 미안하오!~" 56년 만의 속죄... (0) | 2016.03.16 |
[죽음에서 배운다] 죽어가는 과정 (0) | 2016.03.06 |
'댁의 LED 등은 안전하십니까" (0) | 2016.02.17 |
아내 '명절 시트레스(시댁+스트레스)' 풀어주기… 바쁘다 바빠! (0) | 2016.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