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오산~둥주리봉'
봄 빛 짙은 섬진강 품에 안겨 지리산 백운산을 담다
죽연마을에서 동해마을까지 10㎞ 코스
오산 정상·'사성암 '서 S자 섬진강 조망
반야봉 노고단 왕시루봉 등 장쾌한 풍경
배바위 선바위 등 기암 즐비, 걷는 맛 듬뿍
호남과 영남을 가르는 듯 하지만 실은 두 지역을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는 강. 바로 섬진강이다.
섬진강 중·하류 유역에는 남도 사람들이 버텨 온 질곡의 삶 만큼이나 자연·문화 유산과 볼거리도 많다.
특히 지리산과 광양 백운산으로 대변되는 2개의 거대한 산군이 강의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마주 보고
"형님, 아우"하는 것처럼 사이좋게 뻗어 있어 산꾼들에게 유독 각광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2개의 큰 산은 물론이고 산줄기에서 뻗어 내린 크고 작은 부속 봉우리와 산들
또한 주말 근교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섬진강 주변 어느 산을 가더라도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의 육중한 능선과 큰 봉우리,
그리고 섬진강 물줄기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근교산&그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오산에서 둥주리봉으로 가는 도중 만난 배바위에 서서 지리산 방향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 왼쪽 멀리 있는 봉우리가 오산이고 중간 부분 희미한 능선이 지리산 노고단 능선이다. |
이번 주는 전남 구례의 오산(鰲山·542m)~둥주리봉(690m) 코스
역시 섬진강과 지리산 백운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 코스다.
이 코스는 조망미가 빼어날 뿐 아니라 골산과 육산의 특징을 절반씩 가진, 말 그대로 아기자기하면서도 산길 걷는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매력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산 정상 아래 절벽에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암자로 알려진 '사성암'도 자리 잡고 있어
역사의 향기도 듬뿍 맡을 수 있겠다.
그뿐인가.
4월 초순이면 '섬진강의 봄'을 대표하는 벚꽃이 매화의 빈자리를 채우며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 사이를 잇는 강변도로에 만발하니
'봄나들이 산행지'로는 그만이다.
깔끔한 이정표가 길 안내를 친절하게 해준다.
전체 산행은 죽연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해 돌탑지대~쉼터(정자)~오산 주차장~사성암~오산 정상~
매봉~자래봉~선바위전망대 갈림길~솔봉고개~동해삼거리~배바위~둥주리봉 정상~능괭이갈림길~
동해마을 순으로 진행된다.
총 10㎞.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가량 걸린다.
사성암 둘러보기와 경치 감상, 휴식, 식사 등을 고려하면 5시간30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오전 10시께 산행을 시작한다면 늦어도 오후 4시 이전에는 마무리할 수 있다.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
들머리인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죽연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섬진강벚꽃길'을 따라 남쪽으로 200m 가면
주차장과 오산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다.
오산 방향으로 콘크리트 길을 따른다.
머리 위 오산 정상 주변에 있는 활공장에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가른다.
임도 주변 매실밭에는 아직도 희고 붉은 매화가 만발하다.
5분쯤 오르다 만난 콘크리트 임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5분 뒤 콘크리트 임도 끝나는 지점의 이정표는
'오산 사성암 1.7㎞'를 가리킨다.
길은 어느새 편안한 숲길로 이어진다.
완만한 오름길이다.
얼마 가지 않아 돌탑 20여 기가 들어찬 돌탑지대.
높이 3m 이상의 큰 것에서부터 1m 안팎의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키는 제각각이지만 산비탈에 누군가 정성 들여 쌓아 놓은 돌탑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돌탑지대를 통과하면 반듯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15분쯤 오르면 왼쪽에 쉼터와 전망대를 겸한 아담한 크기의 정자가 보인다.
발아래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섬진강 줄기가 훤하다.
정자에서 내려와 정상을 향해 가다보면 3분 뒤 콘크리트 길을 버리고 왼쪽 산길로 치고 오르는 갈림길을 만난다. 사성암까지의 거리는 0.4㎞. 7분가량 오르막을 치면 갑자기 넓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일명 오산주차장. 셔틀버스 종점이다.
정면에 수직으로 뻗은 절벽이 보인다.
넓은 길을 따라 왼쪽으로 100m쯤 가면 오산 정상 및 활공장으로 가는 등산로와
사성암으로 가는 길이 나눠지는 갈림길.
오른쪽 넓은 길로 직진, 150m만 가면 3개의 기둥에 의지한 채 벼랑에 매달린 약사전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지 1년 뒤인
백제 성왕 22년(544)에 세웠다는 사성암(전라남도문화재 제33호)이다.
원래 이름은 오산에 있다고 해서 '오산암'이었는데 고승들의 수도처가 된 후 '사성암'으로 바뀌었다.
오산에서 둥주리봉으로 가는 길. 로프와 철계단이 많다. |
깎아지른 절벽과 그 중간에 절묘하게 앉아 있는 불당이 조화를 이룬
사성암은 절집 자체가 주는 절묘한 풍경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뒤돌아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물줄기와 주변 풍광이 더욱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이런 곳에서 수도를 하면 원효대사 도선국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도를 깨칠 것 같다. 특히 저 아래쪽 섬진강 줄기와
구례 순천 곡성 지역의 산들이 첩첩으로 쌓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지장전 소원바위 산신각 도선굴을 거쳐
나무덱 길이 열려 있는데, 곧바로 오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연결된다.
사성암 입구 갈림길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사성암의 여러 전각을 품고 있는 절벽 꼭대기에
서게 되는데 이곳에서의 풍광 또한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다.
오산 정상까지는 불과 3분이면 족하다.
'해발 530.8m'라고 표시된 정상석이 있지만
실제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542m라고 돼 있다.
정상에서 3분쯤 더 가면 만나는 삼각점봉이 실제로 530.8봉이다.
오산 정상에서는 S자 모양으로 굽어 도는 섬진강 물줄기는 물론이고 구례읍과 만복대 정령치 성삼재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릉, 노고단 반야봉 형제봉 왕시루봉 등이 한꺼번에 조망된다.
사람들이 이 산을 두고 '지리산 남서쪽 최고 전망대'라고 했던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깨닫는다.
정상석에서 30m만 가면 정자 전망대가 있다.
살짝 내려선 뒤 오르막을 타면 앞서 언급한 530.8봉이다.
이후 계속되는 능선길은 발길 닿는 곳마다 천혜의 조망미를 갖춘 전망대의 연속이다.
15분 뒤 매봉(528m)을 지나 능선을 따라 계속 직진하는 길로 내려서면 5분 후 안부인 '매봉능선삼거리'에 닿는다. 약간 오르막을 치면 7분 후 자래봉(524m)을 지난다.
'자라 오(鰲)' 자를 쓴 오산과 구분하기 위해 자라봉이라 불리던 것이
지역 사투리로 변형돼 자래봉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출발 10여분 만에 만나는 돌탑지대. 섬진강이 가깝다. |
곧바로 선바위전망대갈림길.
오른쪽으로 250m쯤 가면 울산 태화강의 선바위와 흡사하게 생긴
'선바위'가 있으니 잠시 둘러본 후 능선으로 되돌아와도 된다.
능선길을 재촉하면 오른쪽 마고실마을로 내려가는 선바위갈림길.
직진한다. 3분 뒤 철계단을 오르면 잇따라 빼어난 조망처다.
2분 후 뾰족한 암봉에서 뒤돌아보면 선바위전망대가 뚜렷하고
그 뒤로 사성암과 오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서쪽 발아래 섬진강과 동쪽의 중산리계곡 너머 계족산과
그 너머 광양 백운산 연봉들, 북쪽의 지리산 연봉들, 남쪽의
둥주리봉까지 4방이 탁 트인 '일망무제'의 풍광에 넋을 잃을 지경이다.
조망미 면에서는 오히려 오산 정상보다 더 빼어난 곳이다.
전망대 암봉을 내려서면 눈앞의 솔봉을 곧바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4명의 성인이 수도한 곳으로 알려진 구례 오산 사성암. |
우회로를 통과해 안부에서 능선을 좀 더 따르면 울창한 적송숲을 지난다. 곧이어 임도와 만나는데 솔봉고개다.
왼쪽에 솟은 둥주리봉을 향해 방향을 잡는다.
300m쯤 임도를 따르다가 '동해삼거리' 이정표에서 임도에서 이탈,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7분 후 중산능선갈림길을 지나 배바위삼거리를 통과하면
5분 뒤 로프를 잡고 오르는 큰 바위가 나타난다.
배바위다.
동쪽의 중산리계곡에서 보면 거대한 배가 산 위에 걸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리산과 백운산 계족산 둥주리봉 등 사방 풍광이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왼쪽 아래로는 수백길 낭떠러지. 주의하자.
배바위 암릉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살짝 우회하는 아기자기한 길이 이어지고
다시 로프를 잡고 오르면 해발 둥주리봉 정상이다.
'둥주리'라는 말은 '둥지'와 같은 말이기도 하고 '짚으로 크고 두껍게 엮은 둥우리'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남동쪽 능선을 따르면 천황치와 천황산을 거쳐 백운산까지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취재팀은 '동해마을 3.1㎞' 이정표 방향인 서쪽 내리막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도선국사가 음양오행설을 깨달았다는 사성암 도선굴. |
일명 '장골능선'으로 불리는 산줄기를 타고 내려서는 길은
한적하고 걷기에도 수월하다.
20분 후 능괭이갈림길에서는 오른쪽 동해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왼쪽 능선길은 순천시 황전면 금평리 용서마을과
용서폭포로 가는 길이다.
15분 후 멋들어진 소나무가 서 있는 민가 앞 갈림길에서
임도를 택하지 않고 왼쪽 내리막 산길을 택해
15분만 더 내려서면 동해마을 동해슈퍼 앞 도로에 닿는다.
'섬진강벚꽃길'로 명명된 이 길에는 4월 초순에 벚꽃축제가 열린다.
벚꽃 터널 사이로 20분 정도 걸으면 출발지인 죽연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
◆ 떠나기 전에
- 사성암, '추노' '토지' 등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오산(鰲山)은 구례의 진산으로 불린다.
노고단 만복대 계족산 등 오산보다 높고 큰 산들이 많지만 주민들이 굳이 오산을 구례의 진산으로
대접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성암(四聖庵)'이 있고 구례읍을 굽어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절벽 중간에 건립된 전각 등으로 인해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은 사성암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우선 약사전.
오른쪽 계단을 올라 3개의 기둥 위에 지어진 약사전 내부에 들어서면
안쪽 벽이 다름 아닌 자연석 절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석벽에 음각된 마애약사여래불(전남문화재 제222호)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득도한 후 손톱으로 그렸다'고 한다.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수령 800년 이상된 귀목나무 두 그루가 섬진강을 굽어보며 절을 지키고 있고
지장전 뒤에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바위(일명 뜀바위)가 있다.
조금 더 가면 산신각과 도선굴이 있다.
도선굴은 도선 국사가 수도한 작은 바위굴이다.
최근의 '추노',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경리의 원작의 '토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사용됐다.
하산길에 능괭이갈림길에서 오른쪽 동해마을이 아닌 왼쪽 길로 가면 용서폭포로 갈 수 있다.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수직폭포인데, 가물 때는 폭포수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비 온 후에 산행을 한다면 용서폭포를 거쳐 용서마을로 하산하는 것도 볼거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 교통편
- 구례행 버스 오전 7시 9시 등 하루 6회 운행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는 오전 7시와 9시 11시 등 하루 6회 운행한다.
2시간50분 소요.
구례터미널에서 들머리인 문척면 죽마리 죽연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 11시40분, 12시20분 등에 출발한다.
버스를 놓쳤을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산행 후 동해마을에서 구례읍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 1시20분과 오후 6시30분에 있다.
자가용의 경우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내린 후
국도 19호선을 타고 이정표 기준 구례 쌍계사 하동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화개장터와 연곡사(피아골) 입구 앞을 지나 구례 방면으로 좀 더 가다보면 사성암 표지판이 보인다.
간전 사성암 방면으로 865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회전, 간전교를 건넌 이후
사성암 표지판만 따라서 10㎞ 정도 가면 들머리인 죽마리 죽연마을에 닿는다.
구례 '둥주리봉~오산'
천왕봉부터 노고단까지, 지리산 한눈에 보는 즐거움
▲ 둥주리봉에서 오산 가는 능선길 전망대에서 만난 지리산 주능선. 오른쪽 맨 뒤 하얗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천왕봉이고, 왼쪽 큰 산 뒤로 잘록한 형세를 한 성삼재 위로는 노고단이 보인다. |
새해 첫날엔 지리산 일출을 보고 싶었다.
천왕봉에서 운해 위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1월 1일에도 천왕봉을 찾은 탐방객이 무려 3천 명이라고 지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말해주었다.
아쉽게도 이날 천왕봉엔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병신년(丙申年) 첫 주에 소개하는 산은 천왕봉부터 노고단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두루 보이는 곳이다.
전남 구례 둥주리봉~오산 종주 산행이다.
숲을 보려면 숲 벗어나야 한다
4㎞ 이상 능선만 타는 멋진 길
호남정맥도 보고 구례군도 보고
소원 하나만 들어준다는 사성암
결정 못 하고 그냥 지나치는데…
■ 큰 둥주리 안에서 길을 잃다
주변 바위 절벽 풍경이 빼어난 용서폭포. |
산 이름이 독특했다.
둥주리봉(690.2m)이다.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둥주리는 짚으로 엮은 큰 둥우리라고 한다.
둥우리는 옛날 닭이나 병아리를 기를 때 대나무나 싸리로 엮어 만든 것이다.
짚으로 엮어 씨앗이나 곡식을 넣어두는 것도 둥우리라고 불렀다.
산세 때문인지, 산 중턱에 있는 옴팍한 공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산 이름은 그랬다.
이번엔 원점회귀가 여의치 않아 둥주리봉에서 오산(鰲山·541.7)까지 종주하는 코스를 잡았다.
순천시 황전면 용서마을에서 출발하여 용서폭포~독립가옥 갈림길~둥주리봉~동해마을 갈림길~자래봉~오산~사성암~돌탑지대~죽마마을 사성암 주차장까지 10㎞를 5시간가량 걸었다.
용서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용서는 용이 살던 곳이라는 뜻인데 지은 죄나 잘못을 묻지 않고 덮는다는 '용서(容恕)'라는 뜻이 더 떠올랐다.
새해에는 타인의 작은 허물을 덮고 관용 베풀기를 실천해 볼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만 관대한 삶을 살았다.
용서마을회관 앞으로 난 마을 중앙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내 포장된 임도가 이어진다.
영하의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도로가 부담스럽다.
등산로에서는 비켜나 있지만, 폭포가 좋다고 해서 찻집 앞마당을 지나 용서폭포로 간다.
폭포는 높이가 50m에 주변 바위 절벽이 매우 커서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00개가 넘는 암벽 루트가 있다.
올해는 유난히 춥지 않은 겨울이라 빙폭은 아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물도 많지 않았다.
폭포에서 되돌아 나와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걷다가 그만 산중에 있는 파란 지붕의 외딴 집에 끌려 길을 헤맸다. 동해마을에서 올라오는 능선길을 찾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계획을 고쳐 임도를 따라 올랐다.
덕분에 집 구경 잘하고 나왔다.
오산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사성암. |
■ 남엔 호남정맥 북엔 지리산
둥주리봉의 남사면은 높고 가파른 절벽이었다.
능선에서 처음 만난 조망바위에 서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멀리 백운산 줄기와 호남정맥의 우람한 모습이 눈에 담겼다.
높이 오른 수고를 덜어주는 풍경이다.
정상이 코앞에 다가왔다.
누군가 쌓은 듯한 이 층 바위가 장승처럼 서 있다.
둥주리봉 정상의 가파른 곳에는 이 층 정자가 멋들어지게 앉아 있다.
지리산이 보인다.
천왕봉부터 노고단까지 한눈에 보인다.
숲을 보려면 숲을 벗어나야 하는 모양이다.
정자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길을 조금 헤매기도 했거니와 부산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 이미 점심때가 되었다.
전세 낸 이 층 정자에서 두루 막힘 없는 풍경을 만끽하며 보온도시락에 담아온 뜨거운 시래깃국을 먹었다.
이제 오산으로 향하는 긴 종주를 시작한다.
4㎞ 이상을 오직 능선만 타는 멋진 길이다.
군데군데 바위가 있다.
이정표에 배바위라는 이름이 자주 보였다.
왜 배바위인지 알려주는 안내판은 없었다.
창녕 화왕산의 배바위처럼 그 옛날 대홍수 때 배를 묶었던 곳일까.
아니면 바위 모양이 배처럼 생겼다는 것일까.
역시 배바위 위에서는 배바위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멀리서 보아야 하리라.
그렇다면 건너편 계족산에 가면 보일까.
의문을 품고 걸음을 재촉한다.
전준배 산행대장이 "산은 암릉이 있어야 제대로다"고 말했다.
바위 능선이 있어야 조망이 빼어나다는 말이었다.
구례군에서는 바위마다 전망 덱이나 정자를 세워 쉬어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잠시 임도가 이어진다.
능선으로 임도가 지나가니 어쩔 수 없다.
임도 옆에는 멋진 화장실도 있다.
5분 정도 걷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안부다.
소나무가 모로 누워 있다.
바람이 그랬다.
15도 정도 누워서도 살 수만 있다면 좋다.
뿌리를 드러낸 나무는 죽었다.
조망이 좋은 바위에 서니 오산 아래 천애 절벽에 자리 잡은 사성암이 언뜻 보인다.
곧 자래봉(524m)이다.
옛 용소 자리로 짐작되는 곳의 외딴집. |
■ '자라산'에서 섬진강으로
마주 오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오산이 가까워질수록 소음과 인기척이 많다.
소음은 등산로 정비를 하는 것이고, 인기척은 오산 전망대에 오른 사람들의 환호다.
오산 바로 아래 사성암까지 마을버스가 다니고, 사성암에서는 불과 10여 분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여성도 오산에 올랐다.
오산은 자라가 섬진강 물을 마시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형세라고 한다.
전설 속의 자라는 영물로 '천 년을 사는 동물'이라고 하니 구례 사람들이 오산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를 알겠다.
오산 정상에도 이 층 정자가 번듯하게 놓여 있다.
구례 시가지는 물론 멀리 지리산 화엄사와 토지면 등이 다 보인다.
이 층 정자 전망대에서 구례에서 왔다는 현지인에게 '둥주리'의 뜻을 물었지만 몰랐다.
둥주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산 전망대를 내려서면 복잡한 바위 지대를 휘휘 돌아 사성암 경내로 내려서게 된다.
바위에는 부처님 형상이 보이고, 암자는 바위틈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성암은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들어준다'는 기도 도량으로 알려졌다.
속으로 오직 한 가지 소원을 떠올리려 했지만, 결국 정하지 못하고 절을 지나쳤다.
절 바로 아래 주차장에 마을버스가 서 있는 것을 보니 갑자기 걷기가 싫어졌다.
뒤도 안 돌아보고 산길을 택해 휘휘 하산하는 산행대장의 뒤만 보며 터벅터벅 걸었다.
하산길 너덜 지대에는 누가 쌓았는지 돌탑이 빼곡하다.
목마른 자라가 섬진강가에 닿았을 때 이 기분일까.
주차장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차를 보니 주변이 온통 환해졌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구례 둥주리봉~오산 '산행지도'
구례 둥주리봉~오산 '산행팁'
전남 구례 둥주리봉~오산 종주 산행을 하려면 전남 순천시 황전면 금평리 용서마을로 가야 한다.
마을 입구나 마을 앞 도로변에 주차할 수 있다.
단체 산행을 가더라도 산행 종점인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사성암 주차장이 매우 넓어
대형 버스를 무난하게 주차할 수 있다.
예전에는 부산에서 둥주리봉~오산 종주 산행을 위해서 하동나들목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구례로 접근했다.
하지만, 2011년 4월 29일 순천~완주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부산·경남권 산꾼의 접근성이 한결 좋아졌다.
부산에서 출발해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순천까지 간다.
순천분기점에서 남원·동순천 방향의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황전나들목에서 내리면 된다.
이번에 소개한 산행지는 들머리와 날머리가 달라 차량 2대를 가지고 가서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차가 한 대라도 산행 종점인 죽마마을 사성암 주차장에는 개인택시가 많기 때문에
차량 회수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성암 주차장에서 용서마을까지 택시 요금은 1만 원 정도이다.
대중교통은 굳이 권하고 싶지 않으나
부산에서 순천까지 가서 순천 시내버스를 타고 용서마을까지 가는 방법을 택할 수는 있다.
부산~순천 시외버스는 사상 부산서부버스터미널(1588-8301)과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1577-9956) 어느 곳에서도 탈 수 있다.
양쪽 다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1만 2천 원 내외.
순천종합버스터미널(1666-6563)앞 정류소에서 33번 시내버스를 타면 용서마을까지 간다.
버스는 오전 6시 1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다.
용서(龍棲)마을 이장은 마을 뒷산에 있던 커다란 소(沼)에 용이 살았다고 해서 용서마을이라고 했다.
또한 오산은 자라 형상이다.
영물인 자라와 용, 섬진강의 두꺼비까지 만날 수 있다.
새해 처음 소개하는 산행지가 성스러운 동물들의 주 무대인 것은
올해 모두에게 행운이 듬뿍 있을 징조다.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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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오산'
흐르다 목 메면 예서 쉬다 가소!
▲ 오산 사성암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구례들판.
문척면 나들목인 신. 구 문척교와 그 아래로 넉넉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며 지리산 북서쪽 자락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동편제의 고장 구례의 너른 들판 한 귀퉁이에 자리한 야트막한 산.
[자라모양]을 하고 있어 오산(鰲山)이라고 불리지만 중국 전설속의 큰 산과는 달리 겉모습은 볼품이 없다.
높이도 고작 531m.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도 1시간 내외에 불과하지만 산꼭대기 고스락은 분수처럼 비밀을 내뿜는
화수분 같은 산이다.
밀의 하나는 넋을 빼앗는 조망의 즐거움이다.
'산에 들면 산을 모르고 산을 벗어나면 그 산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오산에 오르면 바로 헌걸찬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동쪽으론 노고단,반야봉,삼도봉이 뚜렷하고 멀리 명선,촛대봉이 아련하다.
동쪽으론 문수리가 아스라이 펼쳐지며 그 오른쪽으로 왕시루봉과 황장산이 능파를 이루며 달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리산 최고 전망대인 셈.
두번째 비밀 역시 풍광의 아름다움이다.
실핏줄 같은 개울 물을 모아 남도의 이산 저산의 뭉툭한 허리를 감돌며
굽이치는 섬진강이 가장 찬란한 빛으로 흐른다.
지리산 어떤 전망대도 오산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비경을 따라잡기 힘들 듯 싶다.
세번째 비밀은 오산의 보석 사성암의 전설로 시작된다.
깎아지른 벼랑에 제비 집처럼 붙여 지은 사성암은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이래
원효,의상,도선,진각 등 4대 성인이 수도를 했다는 곳이다.
사성암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절 주변 곳곳에 성인들의 흔적이 전설 혹은 설화로 전해 내려온다.
시간이 있다면 고려 때 새겨진 마애불도 둘러볼 만하다.
마지막 비밀은 사성암 주변 수직바위 군.
오산십이대라 불리는 이 바위들은 갖가지 전설과 기기묘묘한 형태로 탐방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답사 산행은 부산에서 출발하는 점과 교통편이 불편한 점을 감안, 코스가 짧은 원점회귀 형으로 잡았다.
기점인 각금마을과 종점인 마고마을 사이의 거리는 1.5㎞.
각금마을 오산입구에서 시작해 사성암∼정상∼자래봉∼마당재∼매봉∼헬기장∼안부사거리을 거쳐
마고마을로 내려온다.
산행시간은 사성암 답사 1시간을 포함해 4시간 가량.
하산 지점 몇 곳만 주의하면 비교적 평탄하게 코스를 이어갈 수 있다.
암릉과 호젓한 융단길이 교대로 이어지는 것도 이번 산행의 보너스.
군데군데 탈출로도 잘 나와 있어 가족과 함께 나서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들머리는 구례에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신·구 문척교를 지나면서 나타난다.
진행방향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오산을 기준삼아 오른쪽으로 2㎞쯤 가면
2차선 아스팔트 길 왼쪽으로 열려있다.
그 길을 150m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본격적인 등로가 시작된다.
등로 중간중간 너덜겅을 만나고 캐런과도 조우한다.
정상까지는 약 50분.
경사가 조금 급하지만 지그재그 식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다.
정상은 사성암을 돌아나와 패러 활공장 왼쪽 끝머리 방송중계시설 옆으로 에둘러간다.
식수는 사성암 약사전 아래 샘터에서 필히 준비할 것.
정상엔 경방원 초소와 다 허물어진 벽돌집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정상에서 눈여겨볼 것은 남쪽방향 자래봉 지능선위에 우뚝 솟은 섬바위다.
우렁찬 모습은 멀리서 봐도 장관이지만 가까이 보면 더욱 황홀경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등로는 아기자기한 암릉길.
특히 이곳은 섬진강 조망의 백미로 꼽힌다.
바로 2개의 섬진강을 볼 수 있기 때문.
능선 왼쪽은 남행 섬진.
오른쪽은 북행 섬진.
좌우 번갈아 감상하는 맛이 오롯하다.
이런 현상은 유턴하는 섬진강의 꼭지점에 오산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상에서 자래봉(524m)까지 약 30분.
봉우리라는 별다른 표식도 없지만 조망도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다.
하지만 자래봉을 벗어나면 조망도 제법 시원하게 뚫린다.
진행 방향 왼쪽으로 지리산이 한결 또렷하고 섬진강도 굽이굽이 속살을 드러낸다.
탈출로가 있는 마당재를 지나면 마고실 사람들이 매봉이라 부르는 567m봉이 나온다.
자래봉에서 매봉까지 약 45분 소요.
이 구간이 오산 코스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등로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직진 방향은 매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이고 오른쪽 길은 매봉을 사면으로 돌아 트래버스하는 길이다.
광주 산꾼 백계남씨는 특유의 노란 리본에 '진행하지 말 것'이라고 써 놓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매봉을 올라도 무방하다.
매봉 역시 사위가 튀어져 있어 멋진 조망을 자랑한다.
곧장 진행해도 별 무리는 없지만 시간상 부담이 된다.
매봉에서 갈래길로 다시 내려오면 바로 하산길.
오른쪽 길을 택해 5분쯤 트래버스하면 헬기장을 지나 안부사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직진 방향은 마고와 동해마을을 가른 능선길이고
리본이 많이 달려있는 왼쪽 길은 둥주리봉으로 이어지는 종줏길이다.
능선길은 오랫동안 묵은 탓인지 중간에서 자주 끊긴다.
취재팀은 가지 말라는 표식으로 썩은 나무를 엑스자형으로 걸쳐 놓았다.
하산은 오른쪽 마고마을을 내려다보며 계곡으로 떨어지면 된다.
10분쯤 급경사로 내려오면 자갈이 깔린 산판길과 만난다.
아름드리 적송과 함께 산판길을 돌고돌아 내려오면 산행종점인
마고마을이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글=진용성기자
사진=정대현기자 j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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