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승복은 1968년 사망 당시, 속사 국민학교 계방분교 2학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듯이, 1.21 사태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던 1968년 말.
3차에 걸쳐 울진/삼척지구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의 무장간첩 중 잔당 5명이 추격을 피해서 북으로 도주하다가 12월 9일 밤 11시, 강원도 평창군 노동리 계방산 중턱 이승복의 초가집에 침입하여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북한 간첩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 의하면 가족들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려 했는데, 느닷없이 무장간첩들이 쳐들어와 어머니 주대하의 이마에 기관단총을 들이대며 밥을 지어달라고 협박했으며, 이에 주씨는 "쌀이 없다"고 하자 이들이 "강냉이(옥수수)나 삶으라우"라고 하여 간첩 2명의 감시 하에 옥수수를 삶아서 줘야 했고, 이승복 등 3남매는 간첩 3명에게 둘러싸여 감금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무장 간첩들은 삶은 옥수수를 먹고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넣은 채 "남조선(남한)이 좋으냐, 북조선(북한)이 좋으냐"고 질문하며 북한 체제선전을 하자, 이승복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고, 격분한 간첩 중 1명이 이승복을 끌고 나온 뒤 나머지 가족들도 함께 끌고 나갔었고
이들은 먼저 모친 주씨의 머리를 벽돌만한 돌덩이로 쳐서 죽였고, 뒤이어 이승복도 공비들의 양 손가락에 입을 찢기고 돌까지 맞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동생 승수와 승자도 함께 살해되어 퇴비더미에 묻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시 고 이승복은 공무원 신분도 아니었고,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2020년 9월 21일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어업지도선을 타고 당직 근무했던 이씨가 실종됐다가 하루 뒤인 22일 북한군 총격에 의해 숨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당시 살해한 이씨 시신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공무원의 신조’중에 “국가에는 헌신과 충성을”이라는 신조가 있고, 그리고 ‘공무원 4대 금지의무’ 중에는 “직장 이탈 금지 의무”라는게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시 상황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업지도선을 타고 당직 근무했다던 이씨가 실종되었고 하루 뒤인 22일 북한군 총격에 의해 숨진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혹시 이씨가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왕 죽을거라면, 국가의 공무원 신분으로 고 이승복처럼 “나는 공산당이 싫다!”며 죽었다면 얼마나 명예로운 죽음이었을까요?
그러나 당시, 죽음 앞에서 구차하게 애걸하는 이씨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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