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공 2

여공女工 모시러, 전라도로!~

국제고무(국제상사)는 회사 통근버스가 100여 대나 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의 신발공장들은 일손이 부족하여도 곧바로 충원하기가 어려웠습니다그래서 농촌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인력을 모집하여 데려왔습니다특히 전라도에서 여직원을 많이 수급했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전라도로 넘어가서 사람들을 데려온 뒤 회사 기숙사에 재우고, 다음날 일요일 오전에 공장을 구경시켜주고 점심 먹여서 다시 전라도로 데려다 주고,다음에 갈 때는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태우고 오는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lUQqMX9QA&t=3s

아이들 생각해서 ‘꾹 참고 견뎌내어야’만 했던 여공들의 삶!

신발공장에서 신입으로 일을 하게 되면 처음엔 신발창이나 가피에 풀을 칠하고, 빠찌(패치patch) 붙이는 것을 하며 신발창 다듬는 일도 하게 됩니다 작업량이 워낙 많아서, 칼날에 손을 베이거나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j 씨는 신발공장을 다니면서 아이 둘을 혼자서 키웠다고 합니다결혼한지 8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시 국민학교 1학년이던 딸애가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 싫어서, 공장으로 찾아와 있는 것이 늘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hsM4HwAf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