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탈선한 전차, 상가에 돌진

금산금산 2011. 8. 14. 08:58

[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⑩ 탈선한 전차, 상가에 돌진

 

"동네 꼬마들 참혹한 현장 눈물로 지켜봐"

 

 

                      1952년 가을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우편국 앞 사거리에서 벌어진 전차 충돌 사고 현장.

                                     옛시청에서 서면을 거쳐 온천장으로 가는 시발전차(383호)가

                        대신동 부산공설운동장 앞에서 출발해 초량까지 가는 로컬전차(309호)를 들이받았다.

                                             부산우편국 앞에선 행인들이 사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1930년대에도 간혹 전차가 탈선해 상가로 돌입하는 사고가 벌어지곤 했다.

                                                                        사진가 허구 제공

 

 

전차가 부산 시내를 달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시가지에 길게 깔린 레일을 따라 내달리던 노면 전차의 모양새가 새삼 보고 싶다.

버스 크기만 한 몸체가 좌우로 흔들대면서 그 질주하던 정경이 거듭 눈에 선하다.

옛 시절, 시내를, 그것도 거리의 한복판을 내로라하고 달리던 그 모습은 위세 당당했다.

 

 

'우르르, 우르르!' 달리다가는 중간마다, '꽈당꽈당!' 울려 퍼지던 바퀴의 굴림이 다시금 귀에 선하다.

 

 

레일 위의 공중에는 트롤리선이라는 전선 비슷한 것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서 전력을 끌어들이는 기다란 쇠 장대,

'트롤'이라고 부르던 쇠 장대가 전차 지붕 위로 달랑대는 모양새가 무슨 장난을 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보수·대신동 네거리 대형 참사

내리막길 가속 견디지 못해 옆으로 넘어져

 

종점인 대신동(부산공설운동장 앞)에서 부민동을 지난 다음, 대청동을 거치거나,

아니면 광복로(훗날 남포동으로 이전)를 거쳐 범일동까지 내왕하던 전차,

그리고 영도 남항동을 떠나 영도대교 위를 거친 다음, 시내까지 내왕하던 전차,

그것이야말로 1930~40년대 부산의 시내 전차였다.

 

그런가 하면 부산진역 근처의 신좌수영에서 서면, 거제리를 거쳐서 온천장까지 내왕하던 교외선 전차도 있었다.

 

 

1930년대만 해도 모두 45대의 노면전차가 '남전'(남조선전기주식회사)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었다.

정류장은 모두 30개가 넘었고, 레일 길이는 20㎞를 넘었다.

인구가 20만에 못 미치던 도시로서는 규모가 큰 편이었다.

 

 

부산 전차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1915년 이미 그 일부가 개통되었다.

지금부터 근 100년 전의 일이다.

그러다가 1968년 철폐되기까지, 반세기를 훌쩍 넘는 동안,

부산 전차는 시민의 유일한 대중 교통수단으로 사랑과 아낌을 받아 왔었다.

전차의 철폐 이유는 버스, 트럭, 승용차의 통행이 잦아지면서 복잡해진 시내의 교통사정을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한데 지금은 그 유적만이 가까스로 몇 곳에 남아 있을 뿐이다.

영도의 남항동, 옛 전차 종점 자리와 대신동의 옛 전차 종점 자리에는 각기 바위에 새겨진 기념비가 서 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전차가 남겨져 있다.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에는 전차가 박물관 소장품처럼 전시돼 있다. 아니 모셔져 있다.

대형과 소형 두 가지 중에 소형이 귀태를 내면서 전시되어 있다.

그 차체 안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내달릴 것 같은 기색이 역력하다.

 

 

그 앞에 서서 부산 전차의 과거를 더듬고 있노라면,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참극의 현장이 떠오른다.

 

 

필자가 초등학교 상급반 학생이던 때였다.

현장은 보수동, 부민동, 동대신동, 서대신동 등 네 고을이 마주 보고 있는 네거리였다.

대신동 종점에서 한 정거장 거치고 전차가 지나가게 되어 있던, 그 네거리다.

 

 

대신동에서 계속 경사진 내리막길을 달려오던 전차가, 네거리 건너 맞은편의 큰 가게에 돌입했다.

그나마 옆으로 넘어져서는 엎드린 꼴로 건물 안으로 들이박힌 것이다.

 

 

마침 부민초등학교에서는 멀지 않은 곳이라서

소문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우리 꼬맹이는 다들 넋을 잃고는 그 참혹한 현장을 지켜보았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나서 처음 보는 참변의 현장을 대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모르긴 해도 가속이 붙은 채로 탈선해 10여m쯤 미끄러진 끝에 전복된 뒤 건물과 충돌했다.

사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운전사나 승객만이 아니고 가게 사람들 가운데서도 희생자가 났었을 것 같다.

 

 

그것은 부산 전차의 역사에서 가장 큰 참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한데도 필자가 전차에 부치는 그리움은 그 탓에 지워지지는 않는다.

내 추억 속에서는 참변의 그늘 넘어 지금도 부산 전차는 달리고 있다.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