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⑫ 보수천 '검정 다리'서 물놀이
"벌거벗은 동네 꼬마들의 일급 수영장"
동대신동 골짝에서 흘러내린 보수천은 부용동, 보수동, 부평동, 토성동과 자갈치를 거쳐 바다로 흘러들었다.
보수동과 서대신동이 만나는 지점에 있던 '검정 다리' 아래는 꼬마들의 훌륭한 물놀이터였다.
복개된 보수천과 검정 다리는 지금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진은 6·25전쟁 직후 보수천의 정경.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 소장 제공
1930년 후반에서 1940년 중반까지 나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이 걸쳐 있다.
여섯 살에 부용동에 있던 '영생 유치원'을 한 해 다니다가 초등학교인 '부민 보통학교'(그 당시의 명칭)에 들어갔다.
4학년까지 부평동에 살았는데, 5학년부터 부민동으로 이사했다.
그러자니, 오늘날 부산 중구와 서구 일대가 놀이터가 되었다.
중구의 부평동, 보수동 ,대청동, 신창동, 창신동과
서구의 부민동, 부용동, 대신동 등이 꼬맹이의 왕국이었다.
물 맑고 깊지 않아 여름철 '놀이터 역할'
부용동 쪽 다리 밑 물건 파는 노점 즐비
그렇게 넓은 왕국 중에서도 보수천 일대는 각별했다.
고원견산(엄광산) 아래, 동대신동의 골짝에서 흘러내린 보수천은
부용동, 보수동, 부평동, 토성동을 거쳐 자갈치로 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
시가지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치고는 제법 넓게 또 길게 흐르고 있었다.
부평동에서 부민동으로 통해 있는 한길을 가로질러서 흐를 즈음에는, 강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했다.
그 위에 걸릴 다리는 2차선 넓이에 길이가 10m는 족히 넘었다.
그런 중에도 보수동과 서대신동이 만나는 지점의 '검정 다리'와 그 근처는 특히 재미났다.
동대신동 쪽에서 뻗어온 한길이 보수천을 가로질러서
보수동과 부평동으로 통하게 되어 있는 한길의 큰 목을 '검정 다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보수천 위에 걸린 다리의 교각과 난간이
검정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곧 '검정 다리'였다.
그중에서도 부용동 쪽의 다리목에는 별나게 장이 서 있었다.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작은 전들이 제법 길게 줄지어 있었던 것이다.
노점도 있고 판잣집도 있었다.
한데 그 가운데는 기겁할 장면도 있었다.
어느 가게에서는 약을 팔고 있었는데, 약초만은 아니었다.
처마 끝에 말린 약초 말고도 죽은 동물들이 주렁주렁 내걸려 있었는데,
그중에는 꿩, 고양이, 족제비 따위를 말린 것이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했었다.
약으로 쓴다고 했는데, 우리 꼬마들은 호기심이 나도 무섭고 끔찍해서 그 앞을 피해 다니곤 했다.
바로 그 '검정 다리' 아래는 꼬마들의 물놀이터였다.
물장구치고 헤엄도 치고 하는 수영장이기도 했다.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개천이 수영장이라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 당시 경남도청이며 부산재판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그만해도 부산 시내의 요충지라고 해도 좋을 곳이다.
두 곳의 초등학교가 지척이기도 한 지점이다.
거기다 그 당시로는 번화가인 보수동 거리와 부평동 거리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의 다리 아래의 개울이 수영장이 되다니,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동아대학교 구덕 캠퍼스가 자리 잡은 동대신동의 산골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 골짝 깊은 곳에서 발원해서는 서대신동 산비탈을 따라서 줄기차게, 또 비교적 세차게 흘러내린 개울은
검정다리 교각이 받쳐진 둔덕을 넘어서면서 얕은 폭포가 되어 내리쏟아지고 있었다.
허옇게 물거품이 거칠게 일고 있는 것이 시원해 보였다.
그 아래로는 널따란 물웅덩이가 패여 있었다.
깊지는 않아서 꼬마들 가슴에 못 미치는 정도였다.
맑은 계곡을 타고 내린 뒤라서 물은 아주 맑았다.
풀장치고도 일급의 풀장이었다.
수영복도 걸치지 않은 꼬마들은 고추를 달랑대면서 제 세상 만난 듯이 놀아댔다.
서로 물을 끼얹으면서 물싸움을 하는가 하면,
둔덕 위에서 아래 물웅덩이를 향해서 개구리처럼 뛰어들기도 했다.
물론 헤엄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왁시글덕시글, 왁자지껄하게 아우성쳤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검정 다리 아래도 위도 온데 간데 없다.
보수천 자체가 복개가 되었으니,
지금껏 말해 온 그 모든 사연도 복개되어서 묻히고 말았다.
모두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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