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내 부산, 내 옛 둥지'] 13, 대신동 고원견산(高遠見山)서 여우 만나다
"겁이 나 잠자리채 흔들자 숲속으로 도망"
고원견산은 지금의 엄광산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된 고원견산이란 이름은 해방 뒤에도 사용됐다.
고원견산은 '높은데서 멀리 바라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40년대만 해도 고원견산에는 여우가 살았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사진은 개금고개와 괴정고개를 연결하는 구간에 있는 엄광산 산성터.
중학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졸업반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1943년께 있었던 일이니 지금부터 반세기 하고도 근 십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로는 부산 교외의 변두리라고 해도 좋을 곳에서 여우를 만난 것이다.
그 당시 부용동의 보수천 개울가에 우리 집이 있었다.
그 개울의 물소리를 듣고 아침잠이 깨곤 했다.
어느 날, 보수천을 거슬러 먼 거리에 있었던 구덕운동장 근처까지 놀러 갔었다.
근 십 리 가까운 길을 잠자리채를 어깨에 들쳐 메고는 혼자서 덜렁거리면서 갔다.
엄광산 골짜기서 혼자 나비 잡다 마주쳐
그림책서 보던 그대로 눈빛이 '으리으리'
동대신동 주거지를 벗어나서 운동장을 왼편으로 두고는 그 맞은편 산기슭을 찾아들었다.
고원견산이었다.
고원견산은 한자로 '高遠見山'으로 지금의 엄광산이다.
고원견산이란 명칭은 아무리 봐도 우리말 같지는 않다.
그렇다.
왜정 시대에 일본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해방 후에도 그냥 그대로 남겨진 것이다.
부산에는 일본인들이 남겨 놓고 간, 일본색 짙은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부평동(富平洞)이 그렇고 대청동(大廳洞)이며 초장동(草場洞) 역시 그렇다.
그런가 하면, 일정 시대에 붙여진 몇몇 동의 이름은 해방 후에 바뀌어서 이른바,
왜색을 씻어 낸 곳도 있다.
'다니 마치'라고 하던 '곡정(谷町)'이 아미동(峨嵋洞)이 되고
'사카에 마치'라고 하던 '창정(昌町)'이 신창동(新昌洞)이나 창선동(昌善洞)이 되고
'나가테'(長手)가 광복로가 된 것은 그 본보기다.
그런가 하면 일본인들이 일본식으로 붙이긴 했어도
한국식과 통할 수 있는 지명은 그대로 남겨지기도 했는데, 토성(土城)동이 대표적이다.
이들 부산의 동명이나 지명과 견주었을 때,
고원견산은 전형적인 일본식 지명의 대표자격이다.
'고원견',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높을 고'에 '멀 원' 그리고 '볼 견'이니 억지로라도 뜻을 헤아리지 못할 것은 아니다.
일본식으로 '高遠見'은 '다카토미'라고 읽는데,
높은 데서 멀리 바라본다는 뜻이다.
그야 어떻든 간에 꼬맹이이던 나는 높게 멀리 내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비나 잠자리를 잡자고 해서 고원견산에 들어갔다.
지금으로 치면 동아대학교 구덕 캠퍼스 너머로 들어간 셈인데,
거기서 뜻밖에 묘한 것을 보게 되었다.
비교적 평탄한 곳을 마냥 들어가는데, 제법 큰 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현장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구덕산 중턱,
그러니까, 서대신동에서 사상으로 넘어가는 좁다란 고갯길의 중턱에 두 곳이나 있던 저수지와 함께,
당시로는 부산시의 상수도를 위한 대표적인 수원지였다.
나비며 잠자리를 쫓으면서 수원지(水源池) 둘레를 한참이나 돌아쳤다.
들꽃들도 한창이던 때라 경치에 반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친김에 저수지를 지나서 좁다란 골짝 길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서게 되었다.
달아나는 잠자리를 뒤쫓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잠자리를 채로 후려치고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일으키는데,
저만치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른빛 털의 네 발 산짐승이 아닌가!
갠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꼬리가 별스레 길고 별로 크지 않은 몸통이 날씬했다.
얼굴과 입이 뾰족했다.
침입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으리으리했다.
아, 여우다!
그림책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나는 겁을 먹었다.
하지만 어쩌랴? 무심코 잠자리채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흔들어대기도 했다.
그러자 여우가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는 이내 숲 속으로 내달았다.
살았다!
나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길게 한숨을 토하고, 토하고 했다.
이래서 꼬맹이와 여우의 만남은 끝이 났다.
하지만 오늘날 그걸 믿을 부산시민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동아대학교 구덕 캠퍼스 그 뒤의 산을 여우가 돌아다니는 것은 오늘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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