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BMW(Busan+Bus, Metro, Walking)] ①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

금산금산 2013. 5. 12. 19:09

 

[문태광의 BMW(Busan+Bus, Metro, Walking)] ①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

부산 최초 극장 '행좌' 터 표지석 등 서민 삶 흔적 곳곳에…

 

▲ 신흥장여관 간판을 단 옛 소화장 건물.

 
부산은 신석기(동삼동 패총)부터 가야(복천동고분군), 개항기(원도심)까지 다양한 층위의 시대적 궤적을 느낄 수 있는 도시다. 골목길과 산복도로를 거쳐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을 이어가는 기행도 물과 산의 도시인 부산이니 가능하다. 부산(Busan)을 버스(Bus)와 도시철도(Metro)로 걷는(Walking) 'B.M.W.' 시리즈를 마련했다. '부산의 갈맷길', '영호남 명산 55선', '부산의 산', '영남알프스 근교산 100선'의 책을 잇따라 낸 로드텔러 문태광 선생이 도시철도 역을 중심으로 부산의 속살을 들여다 본다.

"이 무렵 부산 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해먹던 사람이건 이곳으로만 밀려들면 어느덧 소시민으로 타락해져 있게 마련이었는데, 부두 노동자들이 들끓던 남포동 부둣가 일대는 엉망으로 질퍽대면서 서민의 피부를 짙게 느끼게 하였다."

부산의 피란시절을 그린 이호철의 소설 '소시민'의 서두다. 소설은 부산 자갈치와 남포동, 재래부두, 산복도로를 배경으로 했다. 그 배경의 중심축을 이룬 자갈치(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에서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답사는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3번출구)∼옛 청풍장·소화장∼옛 제일극장∼이승기호떡∼옛 소화관∼행좌 터 표지석∼사쿠라가와∼옛 부산요 터∼고갈비골목∼옛 부산상품진열관 터∼대각사∼옛 후쿠다 장 양조장 터∼옛 동양척식주식회사∼보수동 책방골목∼아카데미사진실∼부평시장∼한복거리∼국제시장∼족발거리∼자갈치역 순으로 잡았다. 원점회귀 코스로 대략 2시간 30분이면 족하다.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 표지석.
첫 행선지인 옛 청풍장과 소화장은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에서 가깝다. 출구를 나와 첫번째 골목에서 할매집을 찾은 뒤 그 골목의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과 1944년에 각각 건축된 청풍장과 소화장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이들 두 건물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집합 주거시설로 임시수도 시절에는 국회의원들이 임시 숙소로 사용했다. 청풍장은 현재 부성갈비, 소화장은 신흥장여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건물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산 도시철도 자갈치역 주변 코스
골목을 빠져나와 비프(BIFF)광장 쪽으로 들어가면 1960년 부산 최초의 발레공연(김혜성)이 열린 옛 제일극장(메가박스 부산극장 신관)과 1934년 '부산좌'(일제강점기의 극장)로 건축된 부산극장 신관을 만날 수 있다. 광장 모퉁이에는 늘 긴 줄을 형성하고 있는 이승기호떡 포장마차도 있다.

모퉁이에서 광복로 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른쪽에 옛 소화관인 동아데파트가 있다. 소화관은 1931년 조선 최초의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극장으로 유성영화인 '춘향전'이 상영됐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 낡았지만 4층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당시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다시 비프광장 길로 돌아와 남포문고 후문 쪽으로 움직이면 할매집회국수를 만나고 바로 그 앞에서 부산 최초의 극장으로 알려진 '행좌'(1903) 터 표지석을 발견하게 된다. 복개 전 개천이 있던 곳을 장식용 수로로 만든 '사쿠라 가와'(앵천), 1639년 두모포 시절부터 불을 지폈다는 '부산요'(窯) 터인 부산로얄호텔도 인근에 있다.


점심 무렵 이곳을 지난다면 고갈비 골목을 다녀보자.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할매집과 남마담, 단 두 곳만 영업하고 있지만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이곳에서의 옛 추억이 하나둘은 있을 것 같다. 참, 상호인 '남마담'은 남 씨 성을 가진 여인이 아니라 남자마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갈비 골목에서 나와 광복중앙로를 따라 대청로 방면으로 올라가면 왼쪽에서 옛 부산상품진열관 터, 대각사, 옛 후쿠다 장 양조장 터, 옛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잇따라 만난다. 부산상품진열관은 1905년 건축 당시 아치형 입구와 3층 높이의 원뿔형
지붕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박람회(일한상품박람회)가 열렸다고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가 자신의 논문에서 주장한 바 있다. 지금은 새부산예식장을 거쳐 뉴부산타운이 됐다.

대각사는 병자수호조약 이후
일본 교토의 불교 진종대파의 승려 오쿠무라 엔신과 그의 여동생인 오쿠무라 이오코가 세운 절이다. 이오코는 사회 개혁을 주장한 여장부로 일본에 망명 중인 박영효를 도왔다는 설이 있다. 대각사에서 보이는 용두산아파트는 옛 '후쿠다 장 양조장' 자리다. 구한말 부산에 온 이토오 히로부미가 이곳에서 연회를 가졌다고 전한다.

대청로를 10여 분 걸어 가면 보수동 책방골목에 이른다. 책방골목 중간 지점의 가파른
계단 끝에 위치한 중부교회는 군사독재 시절에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들이 은신처로 삼던 곳이라고 작가 엄윤숙은 자신의 책 '부산을 걷다 놀다 빠지다'에서 소개했다.
보수동 책방골목.
마무리는 보수사거리에서 흑교로로 곧바로 내려 오지 말고 부평시장, 한복거리, 족발거리 등을 거치며 서민 삶의 흔적을 설핏설핏 훑어보는 것이 좋겠다. 사거리 인근의 '아카데미 사진실'은 개관한 지 60년이 넘은 시대의 산증인이며, 부평시장은 1910년에 조성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으로 깡통시장이 전신이다. 부평시장 인근의 부평맨션이 있던 곳은 당시 '백풍가'(白風街)로 불렸는데, 흰옷 입은 조선인이 일본 상품을 구입하려고 항상 모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장 내 죽집골목과 깡통골목이 유명하다. 문의:011-877-7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