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여섯 빛깔 여름 이야기] <해수욕장 3곳>의 맛

금산금산 2013. 7. 7. 17:50

[ 여름 이야기

 해수욕장 3곳의 맛

 

'색다른 맛'이 쏟아지는 부산의 '삼색 해변'으로 가요~

 

▲ 광안리 해변의 스포츠 바 '비치드'에서 공은진(27·왼쪽) 씨와 제시 앨리스 피어슨(24) 씨가 광안대교의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부산의 해수욕장들은 개성만점이다. 제각각의 색깔과 결이 뚜렷하고 표정이 다양하다. 게다가 변화무쌍해서 지루해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본격 피서철을 맞아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 세 곳의 맛과 멋을 탐색해 보았다. '젊음의 광안리' '글로벌 해운대' '가족과 연인의 송정'. 해수욕장 3색(色)3미(味), 그 매력 탐구에 나서 보자.

<광안리>

유명 커피집 즐비
바에서는 매일 '불금'

<해운대>

내·외국인 용광로처럼 섞여
명실상부 국제 관광 특구

<송정>

외식 나들이 명소로 변신
광어골의 미덕은 '여유'

■젊음의 광안리

소싯적에 광안리 해변은 좋은 놀이터였다. 신발과 옷가지를 백사장에 묻어 놓고는 앞뒤 안 재고 풍덩! 하얀 면 팬티만 입고도 씩씩하게 해수욕을 즐겼다. 1980년즈음까지 흔했던 풍경이다.

신나게 물놀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뿔싸! 숨겨 놓은 옷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도리없이 팬티 한 장 달랑 걸친 채 귀가하면서도 녀석들은 주눅들지 않았다. 민락항 주변의 어촌에 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그 광안리는 푸근하고 만만했다.

기억건대, 광안리는 지난 30여 년간 두 번의 변곡점을 거쳤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민락항을 매립한 자리에 회타운이 들어서는 것과 함께 해변가에
커피숍카페 그리고 포장마차
가 공존하던 시절은 과도기였다.

2003년 1월 개통된 광안대교는 광안리의 밤풍경을 바꿔 놓았다. 이에 발맞춰 서양의 어느 해변 같은 노천 테라스가 우후죽순 등장하더니 '어촌'은 순식간에 '휴양지 해변'으로 탈바꿈했다.

해거름에 개방형의 테라스에 앉아 밤바다의 미풍을 맞아 보라! 은은한 밤바다와 조명을 밝힌 광안대교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이색 밤풍경에는 거부하기 힘든 일탈의 마력이 있다. 신나는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고 싶은 파티장 느낌의 바와 펍이 성황을 이루며 밤새 신열에 들뜨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젊음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곳! 광안리는 부산에서 가장 '핫'한 열린공간이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커피전문점
들이 총출동해 경연을 펼치고, '써스데이파티' '퍼지네이블' '파리스' '21g' 등 일일이 거명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바는 매일이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다.

그중 파크호텔 옆 스포츠 바 '비치드(Beached·051-924-9662)'. 2층 창문을 열어젖히면 해변과 광안대교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이다. 이곳은 뉴질랜드산 에일맥주를 취급하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만난 공은진(27) 씨는 광안리 예찬론자다. "지난해 불꽃축제를 여기서 보고 반했어요!"

그렇다고 광안리는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일까? 통기타 라이브를 즐기는 '무아', '내사랑우수의마적' 등 구석구석에 7080의 숨결이 살아 있다. 해변도로에서 한 블록 들어가면 예전 식당가도 건재하다. 아마도, 30여 년 전 '팬티 차림'이었던 녀석들도 그 어딘가에서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해운대해수욕장 팔레드시즈상가 1층에 문을 연 '스페인클럽'의 프란시스코호세 알바루이스 셰프가 돼지고기 햄'하몽 이베리코'를 깎고 있다.

■글로벌 해운대

지난해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해변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리다 낭패를 겪었다. 무심코
셔터
를 누르고 있는데, 어이쿠, 가만히 보니 백사장의 여성들은 거의 토플리스 차림이다. 여기가 누드 비치? 물정 모른 도촬자가 된 셈인가? 도둑이 제발 저리듯 쭈뼛거렸다. 동행한 아내와 딸을 남겨 두고 도망치듯 해안 도로변으로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바에 뛰어들었다. "우노 세르베사 포르파보르!"(맥주 한 잔 주세요!)

해수욕장이 개장한 해운대 해변을 걷다가 팔레드시즈 상가 1층에서 바르셀로나 해변의 바를 빼닮은 가게를 발견하곤 호기심이 발동했다. '스페인클럽'(051-746-1164)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알록달록한 타일로 마감된 바 끝에서 한 외국인 요리사가 돼지고기 햄 '하몽 이베리코'를 열심히 깎고 있어 본고장 느낌을 물씬 풍긴다. '하몽 이베리코'는
흑돼지의 뒷다리를 말린 것으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아, 해운대에 스페인 요리점이 생기다니!


맥주를 주문했더니, 바르셀로나 생맥주가 나온다. 지난해 난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생맥주다. 게다가, 바르셀로나 해변에 온 것 처럼 보이게 인테리어를 했단다!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면서 마음씨 좋은 아저씨 풍의 프란시스코호세 알바루이스 셰프에게 말을 걸었다. 도쿄에서 일하다 와서
일본어
에 능통하다. 매일 아침 일찍 자갈치에 가서 장을 직접 본단다. 싱싱한 해산물을 직접 고르는데, 자갈치 아지매들과 눈인사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스페인식 볶음밥인 파에야에 자갈치산 해산물을 듬뿍 얹어낸다.

지난해의 해프닝을 말했더니 "다들 휴양차 해변에 와 있었을 텐데, 아무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라면서 껄껄 웃는다. 같은 이유로 해운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일상의
스트레스
를 훌훌 털어 버린 듯 표정이 밝아서 참 좋다고 찬사 연발이다. 손님들은 과반이 외국인이다.

해운대는 이제 외국인, 외국 음식에 거부감이 전혀 없다. 외국 셰프들이 몰려오고 서울의 맛집들도 앞다퉈 분점을 낸다. 외국인 전용의 가게도 부쩍 늘었고 내외국인이 용광로같이 뒤섞이면서 글로벌한 맛 대결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생맥주를 마시면서, 스페인 세비야 출신의 셰프하고 말을 나누다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해운대는 명실상부 국제적인 관광특구다!
송정해수욕장의 외식 거리 '광어골'에 지난 4월 둥지를 튼 이탈리안 레스토랑 '테이블4'에서 손님들이 한가로이 외식을 즐기고 있다.

■가족과 연인의 송정

주말을 이용해 해운대 삼포걷기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세 개의 포구(미포, 청사포, 구덕포)를 거쳐 송정해수욕장까지 닿는 길이다. 솔내음과 해풍이 뒤섞인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가족과 함께 2시간 남짓 걸었다. 바다를 따라 난 동해남부선 철로 위를 무궁화호 열차가 칙칙폭폭 대며 달리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송정해수욕장 못미처 광어골에 다다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길 양쪽에 빼곡히 늘어선 식당가에서 그만 길을 잃어 버리고 만 것이다. 대체 무엇을 먹으란 말인가! 500m 남짓한 길 양편에는 칼국수와 아귀찜, 샤부샤부 가게를 비롯해 베트남 요리와 중국 음식점, 경양식
레스토랑
수십 곳이 도열해 있다.

지난 1994년 '모닝캄'을 필두로 '솔베이지' '나나이모' 등 경양식 레스토랑들이 들어선 이후 지난 20년간 광어골은 부산에서 손꼽히는 외식 거리로
성장
했다. 동해남부선 기찻길 옆 숲이 가족 단위와 아베크 족이 찾는 외식 나들이 명소로 탈바꿈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포화된 느낌의 해운대 신시가지나 달맞이 쪽에서 탈출해 나와서 자연을 느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지금의 광어골을 있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광어골은 '해운대의
푸드 코트
'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다양함과 넉넉함을 자랑한다. 도로폭이 넓으니 주차난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사시사철 편안하게 식사하면서 바다구경까지 할 수 있는 가족과 연인의 명소로 우뚝 서 있다.

광어골의 막내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테이블4'(070-7808-9679)의 김희영 셰프는 "광어골의 미덕은 여유"라고 정의했다. 그 자신이 해운대 달맞이언덕의 초입을 벗어나 지난 4월 광어골에 둥지를 튼 이유도 그런 여유를 좇아서다. 그때는 식탁이 4개뿐이어서 '테이블4'라는 상호를 달았지만 광어골로 옮긴 뒤에 8개로 갑절 늘었으니, "확장 이전으로 불러 달라"고 너스레를 떤다.

레드 와인을 곁들여 한치 샐러드와
스테이크
의 맛을 보았다. 이 집만의 창작 소스는 여전히 중독성이 있다. 그 맛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게다가 이젠 줄을 서거나 테이블이 꽉 차 발길을 돌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좌석의 여유가 생졌으니, 달맞이고개 시절 단골들이 여전히 광어골로 출근도장을 찍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김승일 기자 .    
사진 = 이재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