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8-3> [카메라의 렘브란트 최민식[- '한 시대의 절규'로 남을 '사진'들
쉼없이 거리 배회하며 '인간애' 포착…그는 '고행의 순례자'였다
- 늘 땀이 밴 등산복·작업복 차림에
- 초라하고 낯선 곳 잠입 사진 촬영
- 일상 행동들이 간첩들과 흡사해
- 수없이 신고 당하는 수모 겪기도
- 가난과 배고픔, 힘겨움 속에서도
- 삶의 절절한 몸부림 작품에 담아
- 우리 현대사 아픔 기록·고발하며
- 좀 더 나은 희망의 세상 향한 일갈
내가 본 삼십여년 동안의 선생의 행장은, 늘 어딘가로 떠나거나 어딘가로 부터 돌아오는 모습이었다.
단출하게 차려진 한 끼 식사조차 이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듯 선생은 서둘러 장비를 챙겨 먼저 일어서곤 했다. 우리가 한참이나 더 밥상머리에서 주절주절 세상의 떠도는 분란들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을 때
선생은 고단하고 먼 세상의 언저리를 한 바퀴 돌아 그 증빙자료를 카메라에 담아 왔다.
■한 순례자의 고행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누추를 확인하고자 한 순례자의 고행이었다.
존엄 뒤에 깃든 누추와 누추 뒤에 가린 존엄을 찾아내 여기 인간의 진면목이 있노라고 한 눈에 펼쳐보였다.
허튼 농이나 늘어놓던 우리는 선생이 들이미는 인간의 표정에 얼굴이 붉어져 혼비백산 꼬리를 감추곤 했다.
언제라도 길을 나설 채비가 되어 있던 선생의 평소 행장은 절박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적 본능이
만들어낸 오랜 습관이었다.
사진은 순간을 찍는 예술이고 그 순간을 놓치면 상황은 되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긴박하고 아슬아슬한 양식이다. 찰나와의 쉼 없는 줄다리기,
그래서 선생의 걸음은 빨라야 했다.
작가란 인간과 세상이 맞대면하기 전 인간을 대표하는 선발대로 나가 세상과 한판 맞장을 뜨는 자이다.
어떤 결탁과 화해의 몸짓도 거부하며 세상이 던지는 모종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진면목을, 그 이면에 감춘 교활한 이중성을 남김없이 까발려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작가는 언제나 마음이 다급하고 바쁘다.
유유자적 한눈을 팔거나 멋과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선생의 복장은 그래서 늘 등산복이나 작업복 차림이었다.
무거운 사진 장비를 어깨에 메고 고단한 삶의 처소를 탐색하느라 거기에는 늘 땀이 배어 있었다.
초라하고 낯선 곳에 잠입해 그 동향을 수시로 포착하기를 즐긴다는 점에서 선생의 일상은 간첩들의 행동거지와 일치했다.
그 바람에 백번도 넘게 간첩신고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후끈하고 비린 땀 냄새
'1965년 부산' ,억세게 살아가는 짐꾼을 담았다. |
땀 냄새, 그렇다, 후끈하고 비린 땀 냄새, 오늘의 기초 예술이 표류하는
이유는 이 땀 냄새의 부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예술 여러 장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이 땀 냄새를 맡은 지가 오래 되었다.
너무도 말끔하게 귀티가 흐르는 표정으로 언제든지 세상과 결탁할
용의가 있으니 아무 염려마시라고 세상을 안심시킨다.
세상을 긴장시키지 못하는 작가, 세상과 먼저 놀아나는 예술가는 허명과 돈의 노예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고, 무수한 경험 중 어느 지점을 선택, 주목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드리우는 무늬 또한 달라진다.
길게 보아 선생의 시대는 태어난 1928년에서 운명하기까지의 85년이었고, 짧게 보아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57년부터 왕성한 작품 활동이 이어진 2000년대까지 오십여 년이었다.
예술 전 장르를 살펴봐도 50년 넘게 한시도 안주하지 않고 맹렬하게, 초기에 설정했던 한 주제만을 일관되게
탐구한 작가는 흔치 않다.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피사체를 찾아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저자거리를 기약 없이 배회해야 하는 사진 예술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선생의 생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일치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스물을 전후해 해방과 동란을 겪었고 삼사십 대에 가난과 개발독재를, 오륙십 대에 시민혁명과 민주화를, 칠팔십 대에는 세계화의 그늘을 경험했다.
선생의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에는 대부분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뿌린 자취가 배어 있다.
때로 고달프고 때로 억장이 무너지고 때로 눈물겹고 때로 안도의 미소를 보낸다.
허다한 욕망과 질시, 좌절과 비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 미궁을 통과하며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위협받고 망가지는지를 증언한다.
선생의 사진은 그렇게 녹슬고 잊혀진 인간의 선을 두드려 깨우고, 우리가 서둘러 밀어낸 이웃의 위치를 한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인다.
흩어지고 등 돌린 관계, 멸시와 반목으로 내달리던 불화의 관계를 이해와 용서와 화해의 관계로 돌려놓게 하는 힘이 있다.
불화를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불화를 청산하는 것, 나 역시 선생이 포착한 여러 장면의 사진에서 부끄럽고
눈물겹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집단이 영원히 짊어질 수밖에 없는 생의 고단한 족쇄 같은 것이었다.
예술의 관점은 저 먼 유토피아를 향한 희구를 보여주거나
그것으로 나아가기를 방해하는 갈등 요소들을 보여주는데 있다.
작가가 펼쳐놓은 미궁을 단단히 허리끈 조여매고 건너게 하는 것,
이 악물게 하는 것, 어떤 시련도 넘어갈 수 있는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 조금 전 지나온 험난한 길을 잊지 않게 하는 것, 겸허와 용기, 고통으로
짐 진 이웃을 아우르게 하는 힘이 선생의 사진 속에 있다.
불화는 평화를 깨트린 측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을 때, 그래서 불화의 피해 당사자가 입은 상처가 씻기지 않고 남아 있을 때 유지된다.
선생의 중요 작품에서는 이런 불화의 분위기가 강조된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풍경에서도 아기와 어머니의 관계는 숭고하고 평화로운 사랑의 교감보다 배고픔의 위기로부터 벗어나려는 절박한 몸부림으로 그려진다.
아기는 다급하고 어머니는 지친 표정이어서 먹고 사는 일의 지난한 고행에 몸서리를 치게 한다.
조화롭게 어울려 융화된 모습이 아니라 혼자 또는 두서너 명이 외따로 떨어져 주어진 상황을 견디고 버틴다.
그 과정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게 한 동력은 선생이 가진 인간애였다.
천의 얼굴을 가진 인간의 모습 중에서도 그 남루를 찍기로 한 것, 그것은 부당한 현실을 증언, 고발함으로써
동시대로 하여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을 가지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지나간 독재정권들이 그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하려 한 것이나 그런 일로 수없이 불려 다니고 냉대를 받으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선생의 굳은 의지는, 서로를 가혹하게 단련시킨 촉매였다. 진정한 예술가일수록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타자의 슬픔과 고통에 더 잘 반응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지켜내는 작가정신은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모든 방식들의 종착점은 화해와 평화일 것이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필연의 과정이 있다. 실패와 좌절과 절망 같은 것, 그러므로 삶을 유지하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는 조용하고 나른한 평화가 아니라 밀고 당기는 아수라와 같은 끝없는 쟁투에 있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인간을 있게 한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그 고난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몸부림이었다. 선생의 사진 속 인간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 최민식 선생이 남긴 금언들
- "어떤 부정의와도 대적 카메라는 강력한 무기"
선생은 언젠가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거예요'라는 말에 무척 낙심해
'딸 아이가 나에게 던졌던 말이 수도꼭지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나를 괴롭혔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누추한 풍경을 찍으며 스스로 흡족하였다면 그런 지적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생은 충분히 힘들게 전력을 다해 한 시대와 불화했고, 그 구체적 표정을 찾아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렸다.
선생이 응시한 사진 속의 지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 증빙자료를 수집하게 한 카메라는 창작과 놀이를 위한 도구가 아닌 촌철살인을 위한 '무기'였고,
그렇게 하도록 이끈 힘의 원천은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예술가적 자의식이었다.
사진예술이야말로 거의 완벽하게 기억의 정점을 기록하고 남기는 장르다.
선생이 포착한 불우의 기억이 지금 끝도 없이 승승장구하는 인간의 방만을 제어하는 한 장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잃어버린 인간의 굳센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을 담아 선생이 남긴 말씀 몇 단락을 여기에 옮긴다.
-사진의 가장 간명하고 객관적인 공시는 호소요, 도전이며 제압이다.
-인간이 있었기에,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었기에 나의 카메라는 눈물을 삼키며 진실의 셔터를 눌러왔다.
-카메라는 어떤 부정의와도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렌즈를 통해 잡힌 피사체는 그 어떤 웅변보다도 설득력이 있다.
-나의 영원한 테마 '인간'은 그 자체가 부분이기도 하지만 융합된 하나의 세계이며 시대이고 사회사이자 인간사이다.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매개인 고통에 시선을 못 박았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 속에서 한마디의 절규를 듣는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인간이다'.
최영철 시인
※ 공동기획: 재단법인 협성문화재단,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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