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진을 재발견하다] ⑤ 은유의 모험
어떤 관계
▲ 공존의 이유, 2004~2012 |
▲ 공존의 이유, 2004~2012 |
▲ 공존의 이유, 2004~2012
이정규의 사진은 소리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들려오는 메아리를 연상시킨다.
그의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안정된 톤과 특유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다음에는 이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쳐 왔을 엄격하고 치열한 과정이 떠오른다.
그는 흑백필름을 고집하는 아날로그 사진가다. 그는 우연히 접한 흑백사진에 매료돼 2003년 초, 사진아카데미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두 개의 사진을 이중인화해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든 '메이킹 포토' 시리즈이다. 하나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같은 느낌을 찾아다니며 스트레이트 하게 찍은 삶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낙엽을 모아 직접 제작한 촬영세트로 담아낸 즉물 사진이다.
이중 인화는 디지털작업으로 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되지만, 아날로그 작업으로 하려면 적잖은 품이 든다. 원본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이미지를 한 장의 인화지에 담고, 거기에 1.6㎜ 테두리 선까지 넣는 일련의 과정은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보는 이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한다.
이 두 이미지는 왜 붙어있는가? 쪼그려 앉은 할아버지와 단풍잎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는 게 좋겠다. 두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연관성을 찾는 것은 사진가가 만들어낸 의미를 해석하는 행위다.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이미지가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코드를 해독하는 행위다. 그는 각기 다른 상황, 다른 관점에서 찍은 두 사진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여 사진을 이중의 은유로 끌어올렸다. 그래서일까? 일상의 삶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의 사진에는 따뜻하고 애틋한 정감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주인을 잃은 고무장화와 빈 교도소의 열린 문이 부드럽고 섬세한 낙엽과 연결되는 것은 이정규의 자기반영적 전략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라져 버렸을 거라고 짐작한 것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삶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낸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의 모습과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을 온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사진작업을 해온 자신의 모습처럼. 그러나 그 내면의 프레임이 은유의 힘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자신이 사진의 근본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바로 사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 지겹지만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을 말이다.
◇약력=경성대학교 외래교수. 경성대학교 대학원 문화기획·행정·이론학과 박사수료(2010년), 경성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2007년). 고은사진미술관 '부산사진의 재발견-기억과 트라우마'(2011년) 전과 '정인성, 부산사진의 여명'(2011년)전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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