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골목] <13> 보스니아 '모스타르'
건물마다 총탄 흔적, 그래도 시장에는 생기와 인심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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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레트바 강 위로 설치된 아치형 돌다리인 스타리 모스트. |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해였는데….
아마 학생 신분이 아닌, 사회인이 된다는 설렘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해, 지구 반대편에서는 '인종청소'라는 미명 하에 20만여 명이 희생됐다.
그 나라가 보스니아다.
■ 수없이 많은 묘비… 건물은 파괴되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버스를 타고 보스니아 모스타르로 건너왔다.
도중에 끝없이 세워진 묘비와 파괴된 건물이 불안감을 부추겼다.
숙소도 잡지 않은 상태였다.
배낭여행을 오래 하다보면 숙소를 미리 잡는 일이 드물다.싸고 교통이 편한 숙소를 잡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뒤 수배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터미널에 도착하니 삐끼 아주머니들이 숙소를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를 따라 나섰다.
15분 정도 걸어가니 총탄자국이 선명한, 낡은 아파트가 나왔다.
거실에는 아파트보다 더 낡은 소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내어준 방에는 1인용 침대만 달랑 하나 있었다.
부부가 지내기에는 좁았다.
욕실과 부엌은 공동 사용이었다.
■ 중세 옷 입고 호객 행위하는 젊은이들
방에 짐을 풀어놓고 거리 구경에 나섰다.
거리는 전쟁 후유증이 뚜렷했다.
건물마다 쑹쑹 뚫린 총탄 흔적이 있었고, 그런 건물 사이에 시장이 위치했다.
그래도 시장은 시장이었다.
싱싱한 과일과 주먹보다 큰 호두, 갓 잡아 올린 민물고기를 파는 상인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자신의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중세 옷을 입고 다니며 호객 행위를 하는 젊은이들도 보기에 좋았다.
골목
그 냄새에 이끌려 빵 한 봉지를 샀다.
5천 원을 냈는데 빵집 주인은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빵을 건넸다.
시장 인심이 느껴졌다.
먹거리 시장을 빠져 나오니 기념품 가게가 줄을 섰다.
터키산 파시미나와 직접 두드려서 만든 청동제품, 탄피로 만든 기념품 등을 팔았다.
■ 거대한 십자가와 이슬람 첨탑 '대치'
거리를 한참 걸어가다 '스타리 모스트'를 만났다.
보스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다.
풍경부터 이채로웠다.
다리 한쪽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다른 쪽에는 둥근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솟아 있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문화가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두 문화는 오랫동안 교류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내전과 더불어 두 문화는 한순간에 원수가 됐다.
다리는 전쟁 중인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때 파괴됐다가 지난 2004년 복원됐다.
그때 강바닥에 가라앉은 돌조각을 일일이 찾아내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고 한다.
이것이 이듬해인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보다는 아마 다리에 담긴 증오와 전쟁,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다리는 이후 '평화의 다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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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보스니아 모스타르의 상점 거리. 터키산 파시미나와 청동 제품, 탄피로 만든 기념품 등을 이곳에서 살 수 있다. 이랑주 씨 제공 |
다리 앞에는 구시가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상점과 카페가 즐비했다.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스니아 전통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가 나오자마자 이를 들이켜려고 하니 한 남자가 제지했다.
커피 찌꺼기가 떠 있으니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 뒤 마셔보니 맛이 참 묘했다.
깊고, 진하고, 쌉쌀하고, 텁텁하고, 또 시큼했다.
그 남자는 보스니아 커피는 5가지 맛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 가장 행복한 공간은 가족 함께한 곳
숙소로 돌아오니 집주인의 손녀딸만 있었다.
부엌에서 저녁식사를 만든 뒤 함께 먹자고 하니 곧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오니
그때 먹겠다며 사양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터미널에서 손님을 삐끼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버스가 10시에 있었는데 그때 한 명의 여행자라도 더 포섭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저녁도 먹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들이 귀가한 시간은 밤 11시.
그때 비로소 세 식구는 조촐한 저녁식사를 나눴다.
손녀딸은 식사를 하다 말고 작은 그릇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누군가를 불렀다.
길고양이였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앞서 길고양이를 먼저 챙긴 그 손녀딸이 기특했다.
식사가 끝난 뒤 이들은 거실의 낡은 소파에서 잠을 잤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방은 여행자들에게 내어준 것이다.
허름한 아파트가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변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스니아 여행은 1993년이란 시간과 그 시간의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 것 같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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