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이야기 공작소 <12-4> [기장 해안 100리 五感 스토리]- '어사암'과 이도재 스토리

금산금산 2014. 4. 5. 09:54

 

이야기 공작소 <12-4>

[기장 해안 100리 五感 스토리]-

'어사암'과 이도재 스토리

기장 기생의 베갯머리 송사, 굶주리고 억울한 백성을 구하다

 

 

기장 죽성리 바닷가의 매바위(어사암)에 새겨진 '어사암(御使岩)'과 '기월매(妓月每)' 각자. 주민들이 이도재 어사의 공덕을 기려 새겼다고 한다.

 

 

- 양곡 실은 배 풍랑에 침몰하자
- 배고픈 백성들 볏섬 건져먹어
- 관아 절도죄 물어 엄하게 처벌

- 진상 조사하러 온 이도재 어사
- 월매의 사정 설명과 호소 듣고
- 옥에 갇힌 주민들 풀어주게해

암행어사 하면 조선 영조 때의 박문수가 유명하지만,

부산 기장에도 꽤 유명한 어사가 있었으니 그가 이도재(李道宰·1848~1909)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임금의 특명을 받아 지방 정치의 잘잘못과 백성의 사정을 비밀리에 살펴서

부정 관리를 징계하던 임시 관리.

어사 박문수가 탐관오리를 적발하고 백성을 구제한 정의파 어사의 표본이라면,

이도재는 암행어사이되 관기와의 민생-보은 스토리가 따라 붙어 흥미를 더해준다.


1883년(고종 20) 6월 기장현 독이방(禿伊坊)에 있는 해창(海倉)에서 양곡을 실은 배가

부산포로 가다 풍랑을 만나 침몰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물에 빠진 볏섬을 건져 먹었다.

관아에선 이를 절도죄로 다스렸고, 많은 사람이 옥에 갇히고 심한 매질과 가혹행위로 죽은 사람까지 생겼다.

 

이를 안 조정에서 이도재를 암행어사로 지명, 진상파악을 하게 했다.

자칫 마을 전체가 옥사를 당할 상황이었다.

이때 기장 관기 '월매(月梅)'가 이도재를 모시면서 백성들의 딱한 사정을 하소연하며 주민 편을 들도록 설득했다. 미인계가 통했음인가.

이도재는 옥에 갇힌 주민들을 석방하고 사건을 무리없이 종결했다.

이때 이도재는 오언절구를 지어 죽성리 매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하늘이 텅 비어 보이는 것이 없는데(天空更無物)/ 사나운 파도는 시인을 위해 춤을 춘다(海鬪難爲詩)/구만리 밖 멀리 떠 있는(環球九萬里)/ 한조각의 배는 언제 돌아오려나(一葦可航之)'

싯귀는 비 바람에 마멸되어 지워졌으나 시흥은 고스란히 남아 후세의 마음을 흔든다.

그후 주민들은 이도재의 은덕에 대한 보답으로 매바위에 '어사암(御使岩)''기월매(妓月每)'라는

글자를 새겼고 '이도재 생사단'을 세워 오랫동안 축원 제사까지 올렸다.

어사와 관기. 쉽게 어울리지 않는 이같은 조합이 어사암 스토리의 차별성이다.

어진 어사가 슬기로운 기생의 미인계(?)에 넘어가 정의를 실현했으니 이 또한 지혜가 아닌가.

최근 기장군은 어사암에서 힌트를 얻어 '주민 암행어사제'를 도입,

행정 전반을 감시토록 하여 청렴도를 높이고 있다.

어사암이 현대판 어사 노릇을 하는 셈이다.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

글= 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
만화=서상균 기자 seose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