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飯事] ⑦ '황궁'다법
여닫는 잔 뚜껑 사이로 향긋한 차향
황제에게 바친 진상품에서도 차가 으뜸이었다.
다회는 화려한 다구와 장식, 의상, 음악, 문학, 회화 등이 망라된 종합예술이었다.
지난 1987년 중국 법문사 지하궁에서 출토된 당나라 유물에서도 금, 은, 유리로 만든 다구가 많았다.
황궁 다구는 모양과 소재, 이름부터 달랐다.
그중 은제품 다구는 독극물에 의한 암살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황궁에서 사용됐다.
법문사 박물관에 남아있는 세 다리의 물받이 은소금대와 연꽃 은사발, 금박 은수저 등도 용도가 다구였다.
금실, 은실로 된 차 바구니와 도금한 은롱자도 덩이 차를 덖을 때 사용한 차바구니였다.
다해(茶海)와 봉조대(鳳爪臺)도 황궁에서만 사용했다.
다해는 둥근 원탁 모양의 도자기로 뚜껑과 물받이가 있다.
그 위에서 차를 우렸다.
다법(茶法·차를 달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황제만을 위한 다법이 따로 있었다.
그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다법은 당태종 이세민을 위해 소림사 스님들이 만든 '황궁다법'이다.
이세민이 사지에 몰렸을 때 소림사 승려들이 도움을 주었고, 이에 대해 복권된 황제는 이들을 왕족으로 봉하고 황제와 같은 황금색 옷의 착용을 허용했다.
이후 황궁 경호도 소림사 무승들이 맡았다.
이때 개발된 것이 황궁다법인데, 손 대신 배사(집게·사진)로 잔을 씻고 차를 우려내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개완배도 황궁다법의 일부다.
개완은 왕족들이 차를 마실 때 쓰는 1인용 다기로 큰 잔에 뚜껑이 있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차향을 맡는다.
황궁다법은 그러나 청나라 멸망과 함께 중국대륙에서 사라졌다.
대륙을 차지한 공산당이 전통을 부정하면서 황궁다법도 끝난 것이다.
그 황궁다법이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왔다.
화교인 허주보원 큰스님이 소림사 고승 화엄자와 금강자로부터 황궁다법을 배운 뒤
필자에게 전수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2년 저장성과 2003년 후베이성에서 열린
'육우 탄생 127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 차 문화(행다법)와 황궁다법을 펼쳐보였다.
그때 중국차인들의 놀라운 눈빛이란.
요즘은 황궁다법을 재전수받기 위해 중국 차인들이 우리를 찾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중차문화연구회장 dorim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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