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작소 <12-5>
[기장 해안 100리 五感 스토리]-
'시랑대'와 '용녀'의 전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머문 자리… 세찬 파도 치면 애잔한 울음 들린다
- 용녀와 스님의 사랑 이야기 간직
- 이조참의 지내다 낙향한 권적이
- 돌벽에 새긴 이름 아직 전해져
용(龍)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 속에 있고, 구름 속에 머물고, 바다에 거하고, 상상 속에 깃든다.
한국인의 용에 대한 인식은 다분히 감각적이고 주술적이다.
한국인은 태고적부터 용을 키워왔다.
용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삶을 노래했다.
허다한 용의 전설 중 기장 시랑대 스토리는 용녀가 스님을 사랑한 이색적인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주제가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 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유행가 신파조같지만, 인간세계를 그리워한 용의 현현이란 점이 주목된다.
이 자리에 해동용궁사가 들어서고 해룡단이 생긴 게 우연이 아니다.
전설의 무대인 시랑대는 기장읍 시랑리 동암마을 남쪽 해동용궁사 옆에 자리한다.
원래 이름은 원앙대(鴛鴦臺)였으나, 1733년(영조 9년) 당시 기장 현감이었던 권적이 놀러가서
돌벽에 '侍郞臺(시랑대)'라는 글자를 새긴 이후 시랑대란 이름을 얻었다.
이조참의를 지낸 권적은 기장현감으로 좌천되자 이곳에서 시를 쓰며 낙향의 아픔을 달랬다.
조선시대 참의는 신라, 고려시대의 시랑(侍郞)에 해당한다.
'귀양살이라지만 오히려 신선이 노는 봉래산이 곁에 있다.(謫居猫得近蓬萊)/ 이 사람은 이조참의로 지내다가 여기에 왔노라.(人自天曹二席來)/ 시랑대란 석 자를 푸른 바위에 새겨(三字丹書明翠壁)/ 천추의 긴 세월동안 남아 있게 하리라.(千秋留作侍郞臺)'
자신의 귀양살이가 천추의 한이 아니라, 천추에 남을 명소(시랑대)가 되길 바란 시정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랑대 인문학의 굳건함이다.
신라 말기에 역시 시랑을 지낸 최치원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밴 것도 같다.
시랑대 인근 바위에는 19세기 말 손병현, 엄신영 등 기장지역 문사들이 새긴 시문도 함께 남아 있다.
기장 사람들은 이곳의 용녀 전설을 사실인양 믿고 싶어한다.
"바윗면을 봐. 용녀의 탯줄이 붉은 줄로 길게 박혀 있고, 돌 바닥엔 네모진 바늘 상자와 탯줄을 끊은 가위 형태가 뚜렷이 남아 있어. 또 젊은 미랑스님이 용녀를 구출하려고 뛰어 내렸던 곳에는 짚신 자국까지 깊게 새겨져 있고…."
공수마을 촌로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전설을 사실로 착각할 정도다.
세찬 파도가 칠 때 시랑대 동굴 부근에 가보면 애절한 용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도 한다.
전설이 이야기 바위를 만들었는지, 이야기 바위가 전설을 잉태했는지 헷갈린다.
스토리텔링의 절묘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글=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
만화=최인수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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