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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골목] <20> 영국 런던 '버러마켓'

금산금산 2014. 5. 28. 19:14

 

[이랑주의 장&골목] <20>

영국 런던 '버러마켓'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팔아 보세요"

 

 

 

버러마켓의 농산물 가게 주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판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버섯과 브로콜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진열돼 있는 가운데 무섭게 생긴 핼러윈 호박이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랑주 씨 제공

 

 

버러마켓영국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이다.

 1276년 개장했으니 700년도 더 됐다.

단절이 극심한 우리로서는 좀처럼 상상하기조차 힘든 세월이다.

버러마켓은 우리나라 농수산물시장과 비슷하다.

버섯, 토마토, 배스, 참치, 육류, 소시지, 치즈 등 농수축산물이라면 없는 것이 없다.
일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식재료 시장이라고 한다.

주말이면 런던시민은 물론이고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물론 유럽의 시장도 변화가 심하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 상설로 운영하는 시장은 점차 사라지고

주말이나 특정 요일에만 문을 여는 경우가 흔해졌다.
하지만 영국
스페인은 다르다.

이곳의 전통시장은 여전히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대형 마트와는 다른 길을 찾으면서 전통과 고객을 함께 지켜나가고 있다.

버러마켓의 한 상인이 말했다.

"대형 마트와 인터넷 쇼핑은 앞으로 더 많은 물건을 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만나고, 먹고, 즐기면서 행복을 찾고 싶어 합니다."


■ "가장 신선한 재료들" 자부심

버러마켓의 최대 장점은 신선도다.

가장 신선한 재료만을 판다는 자부심을 이곳 상인들은 갖고 있다.

막 딴 듯한 버섯이 통나무 매대 위에 올려져 있고, 토마토는 플레어 스커트를 펼친 것처럼

둥근 매대 위에 둥글게 진열됐다.

다른 쪽에는 은색 배스와 게, 참치가 군침을 돌게 하고, 육류와 소시지, 치즈도 신선했다.

치즈가게 앞에 묘한 안내문이 붙었다.

"제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요?"라고 씌인 안내문이었다.

그리고 그 표제어 아래에 치즈가 만들어진 장소와 과정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가리비 가게에는 주인이 직접 잠수복을 입고
보트를 끌며 가리비를 잡으러 가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슴고기를 파는 가게는 총을 들고 사냥감을 겨냥하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과일가게에는 사과 따는 사진이, 빵집에는 빵을 만드는 사진이 있었다.

고객은 물건뿐 아니라 원산지에 대한 믿음과 이야기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감전동 새벽시장에도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
얼굴이나 과일을 따는 할머니의 미소가 담긴 사진

입간판이나 POP으로 붙여 놓는다면 고객 시선이 훨씬 부드러워질 것 같다.


■ 요리책 만든 전통시장 '명성'

버러마켓은 요리책을 만든 전통시장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버러마켓 요리책'인데, 계절별로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수산물, 시장에서 파는 재료로 만드는 간편식 등을 사진과 함께 상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요리책 발간은 상인들이 식재료를 사러 온 소비자들에게

간단한 조리법과 보관법 등을 알려주던 관습에서 비롯됐다.

보통은 구두로 알려주는데, 어떤 주부는 조리법을 써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여러 해 동안 거치다 보니 아예 상인들이 알고 있는 식재료 보관법과 조리법을

책으로 펴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버러마켓 요리책인 것이다.

부산의 자갈치시장과 부전시장에서도 상인들이 가장 잘 아는 요리법을 중심으로 요리책을 한 권 펴내면 어떨까? 전통시장을 잘 찾지 않는 젊은 주부들에게 유용할 것이고, 시장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효과도 클 것 같다.


■ 위기가 곧 기회… 시장의 선택은?

전 세계 전통시장은 비슷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형 마트에 손님을 빼앗기고, 인터넷 쇼핑몰에도 밀리고 있다.

미국도, 유럽도, 남미도 다르지 않다.

유통업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그 위기감은 더 컸다.

심지어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에서도 전통시장은 급격히 쇠락하고 있다.

시장을 찾는 사람도 적고, 시장 숫자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금언은 틀린 말이 아니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시장도 많다.

과거처럼 단순 판매 기능의 공간으로 남아 쇠락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와 사람, 재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공간이 될 것인지는

순전히 전통시장의 상인들에게 달렸다고 하겠다.

버러마켓은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로 7백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했다.

세월의 속도에 밀려나지 않고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시선이 판매하는 자신이 아니라 물건을 사가는 고객에게 늘 맞춰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1천500여 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하지만 시장 기능을 가지고 생존할 수 있는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에 잰걸음으로 ?i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세월의 속도 보다 '각도'에 관심을 둔다면 새로운 생존 지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랑주
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

버러마켓의 생선가게. 청년 상인들이 의외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