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과학으로 푸는 신비의 세계] <8> 제4의 제국 '가야 신비'

금산금산 2014. 6. 7. 15:00

[과학으로 푸는 신비의 세계] <8>

제4의 제국 '가야 신비'

 

'신라 황금문화 경쟁 밀려 '철의 왕국'역사 뒤안길로'

 

 

부산 동래구 복천동 고분 출토 갑주로 무장한 가야시대 전사의 복원된 모습.

 

 

[제4의 제국] 가야는 왜 쇠퇴했을까?

한때 '철의 왕국'으로 불릴 만큼 흥했던 가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과학적인 이유는 뭘까?

최근 가야가 드라마 제작 등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불릴 만큼 여전히 [많은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과학의 눈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보면 어떨까.

부경대 박맹언(환경지질과학과) 교수는

"가야가 흥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쇠퇴하게 된 이유도 함께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철의 왕국'이란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가야는 당시 첨단 산업인 제철 기술]에서 최고를 자랑하고 있었다.

박 교수의 말이다.

"최근 김해 지사동과 물금(오봉산 일대)에서 원석으로부터 철을 제련하는 용광로 유적이 발견됐다.

이는 이곳이 광산개발 및 철광석 공급에서부터 제련, 정련, 용해 등 일련의 종합시스템을 갖춘

제철단지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물금광산은 1980년대까지 국내 최대의 철광산으로 명성을 날렸고

김해 인근은 노두광산으로 1900년대 초까지 채굴되던 곳이다.


김해는 낙동강을 끼고 발달한 고대 제철단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포항제철소]나 [광양제철소]인 셈이다.

박 교수는 "이곳에서 생산된 철제품을 동래 등 내륙지방으로 옮기려면 지금처럼 만덕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낙동강~바다~수영강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철제품은 일본까지 수출되는 등 세력을 떨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철로 흥했던 가야는 그러나 황금문화의 신라와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신라에서는 왕의 수보다 더 많은 금관과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치 많은 금 귀걸이가 출토됐다. 신라는 4세기부터 현대과학 기술에 버금가는 최고의 금 가공기술로 당시 첨단 수출산업을 형성했다.

박 교수는 "일본서기에서 신라는 황금이 넘치는 나라로 기록될 만큼 황금문화가 발달했다"며

"금속문화의 흐름상 결국 가야의 철기문화는 보다 진척된 고부가가치산업인

신라의 황금문화와의 경쟁에서 밀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철기가 '브라운관TV'라면 황금문화는 'LCD-TV'로 비유될 수 있다.

여기에 해수면의 상승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김해 장유패총에서 3세기경의 철기와 해안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당시 해안이 지금보다 4~5m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김해 예안동의 해식동굴과 사주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다.

3세기 이후 어느 시점에서 김해지역이 융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해수면이 서서히 융기함에 따라 가야 제국의 항만 기능이 약화돼 무역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당시 수송수단 등을 고려할 때 무거운 철제품을 싣고 높은 산을 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이라고 설명했다.

[가야의 쇠퇴]에 대해 수백 개에 이르는 고분을 주목하는 학자도 있다.

칠레 [이스터 섬]에 있는 사람 얼굴 모양 석상의 경우처럼

고분 건설과 순장에 따른 국력 낭비가 국가성장 잠재력을 깎아먹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학자들의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 가야사 전문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부산대 신경철(고고학과) 교수는 "동의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가야 쇠퇴의 원인은 당시 [동아시아 정치 변동]에 있다는 설명.

신라의 요청에 따른 고구려 군사의 압박 때문에 금관가야가 [해체]되고,

가야제국이 [사분오열]되면서 멸망하게 됐다는 것.

"가야 고분은 노동력 등 국력을 낭비할 정도의 구조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임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