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바구

연산동 [고분군] 베일을 벗기다]1.

금산금산 2014. 7. 13. 09:07

 

[연산동 고분군 베일을 벗기다] 1. 왜 연산동 고분군인가?

 

 

경주서 봤던 커다란 고분 연산동에도 있었다

 

 

 

▲ 부산지역에서 유일하게 외부 봉분 형태가 남아 있는 연산동 고분군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부산박물관 홍보식 문화재조사팀장(오른쪽)이 연산동 고분군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오래전부터 부산에는 연산동 고분군이 있었다. 연산동 고분군은 현재 부산지역에서 둥글고 높은 봉분을 가진 고분(고총고분)으로서는 유일하다.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그 실체를 자세히 모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유물이 도굴돼 비록 한계는 있지만, 부산일보가 그 실체를 벗기고자 한다.

회사원 이강우(47·부산 연제구 거제동) 씨는 지난해 친구와 함께 배산(연제구 연산동)을 등산하고 내려오다 깜짝 놀랐다. 등산을 마치고 연산동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경주에서나 볼 수 있었던 봉분들이 능선 정상부에 줄 지어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이 씨는 "부산에도 이런 왕급 무덤에 준하는 봉분들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곳엔 삼국시대 고총고분들이 산 정상부를 따라 줄 지어 있다.

부산에 삼국시대 고총고분이 있는 곳. 그것도 큰 봉분들이 능선을 따라 줄 지어 있는 곳이 바로 연산동 고분군이다.

고총고분 18기…직경 20m 넘는 것도
배산 인근 능선 정상부에 일렬로 배치
거칠산국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


■연산동 고분군은?


연산동 고분군은 부산지역에서 유일하게 거대한 봉분이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오래전부터 도심 속에 있었지만, 부산시민들은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고분군은 황령산 북쪽에 위치한 배산(254m)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온 40~60m 전후의 능선 정상부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18기의 큰 봉분(고총고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구릉 경사지에는 봉분이 없는 1천여 기 이상의 중소형 고분이 분포한다.

연산동 고분군 주위에는 삼한,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이 밀접해 있다. 요컨대, 온천천 북쪽 동래역 일대에는 복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을 만든 사람들의 마을과 동래패총(사적 제192호)이 위치한다. 동래패총에서 북쪽으로 2㎞ 남짓 떨어진 곳에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이 위치한다.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 두 고분군이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고분군 남쪽 배산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배산성이 있고, 그 남쪽에는 동래고읍성지가 있다.


■그동안 발굴 과정

연산동 고분군은 그동안 수차례 발굴 조사 과정을 거쳤다. 먼저, 1940년 이전인 일제강점기에 갑주류와 원두대도(圓頭大刀)가 출토(현재 일본 도쿄박물관 소장)돼 주목받았으나 이후 오랜 기간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또 상당수의 유물도 도굴됐다. 그러다가 1972년 6월에 고분군의 중요성이 인정돼 부산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됐다.

연산동 고분군의 성격 규명을 위한 발굴조사는 사실상 1980년대 후반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고총고분인 M4호와 M8호에 대한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2000년, 2007년에는 연산터널공사와 주택재개발공사에 따른 주변 경사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많은 중소형 무덤이 조사됐다.

2009년엔 부산박물관에서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발굴조사에 속도가 붙었던 것이다. 도심 가운데 위치한 고분군으로 활용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비 복원에 앞서 고총고분군의 규모와 잔존 상태 등을 파악해 복원 정비자료 확보와 연제체육공원 조성을 위해 해당 부지를 대상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부산박물관 홍보식 문화재조사팀장은 "이때까지는 고총고분이 10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차 발굴조사(2009년 12월~2010년 12월)에서 10기 이외에 8기의 고총고분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2012년 2월 연산동 고분군 2차 발굴조사에서 부산박물관 측이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모습. 부산일보 DB
이어 2011년 7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차,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월까지 3차 발굴조사가 각각 이루어졌다.

부산박물관의 1~3차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석유구 4기, 삼국시대(5세기 후반~6세기 전반) 고총고분 18기, 중소형묘 137기, 제사음식과 조문객에게 제공할 음식을 조리한 취사유기 3기, 통일신라시대 화장묘 1기, 고려·조선시대묘 107기, 조선시대 구상유구 2기 등 259기의 유구가 조사되었고, 모두 2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발굴 성과 및 의미

연산동 고분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18기의 고총고분이다. 현재 부산지역에서 둥글고 높은 봉분을 가진 고분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적이다. 고총고분은 봉분 직경이 20m 이상인 대형분을 중심으로 5~6기가 모여 3개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홍 팀장은 "도굴로 매장 당시의 실체를 온전히 알 수는 없으나 조사 성과로 볼 때, 무덤의 주인공들은 삼국시대에 부산지역에 있었던 소국(小國)의 하나인 거칠산국의 지배층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연산동 고분군 내 M3호분 석곽 내의 목곽 흔적(내부 하얀 선)과 벽면 상단 점토 위의 각재 흔적(외부 하얀 선). 부산일보 DB
이들 18기의 고총고분군은 주검과 부장품을 안치한 묘제가 모두 수혈식석곽이며 석곽이 모두 지하에 만들어져 있다. 특히 M3호분은 전체 길이가 19m, 너비가 6m로 영남지역 삼국시대의 고분군 충 가장 규모가 큰 수혈식석곽임이 확인되었다.

또 국내에서 처음 나온 '깃이 있는 판갑'을 비롯해 부엽공법, 연약지반 치환공법, 점토 덩어리 쌓기 등의 고대 토목기술과 뚜껑돌을 안전하게 이동하고, 석곽 내에 목곽을 설치한 건축 기술 등 지금까지 예가 없었던 독자적인 고총고분 축조 방식도 확인됐다. '깃이 있는 판갑'은 일본 고분시대 무덤에서는 20여 점이 출토된 바 있지만, 국내에선 처음 나온 유물로 삼국시대 일본과의 교류 관계 해명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대 고고학과 김두철 교수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연산동 고분군이 축조되는 시기(5세기 후반~6세기 전반)의 이 지역 집단은 신라에 복속된 정치체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신라의 무덤이 적석목곽묘로 지상화를 지향하는 데 반해, 연산동 고분군은 지하에 축조된 수혈식석곽묘로서 지역 토착의 전통을 계승한 측면이 강하고, M3호분처럼 봉토를 쌓는 방법도 독창적이어서 이 지역의 정치체제가 독자세력이었음을 말해 준다"고 추측했다.

이 밖에 무덤의 축조 공정마다 이뤄진 다양하고 새로운 제사 형태와 장지에서의 음식물 공헌과 조문객 맞이와 같은 새로운 장송문화도 연산동 고분군에서 확인된 중요한 성과이다.


■국가 사적 지정 당위성

연산동 고분군의 발굴 성과와 의미는 이곳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하고자 하는 당위성으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유적의 중요성, 희소성, 보존성에서 볼 때 국가 사적 지정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곳은 도심 한가운데 있어서 일반인도 접근하기가 쉬워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면 중·고등학생들의 체험학습의 장소, 대학 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학습 등 교육의 장으로서 더할 수 없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 팀장은 "지금까지 복천동 고분군의 중요성은 널리 인식되어 왔으나 배산에 위치한 연산동 고분군은 부산시민이나 타 시·도민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국가 사적 지정은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사적 지정을 위해서는 부산시와 연제구, 부산시민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면서 "부산시 등과 연계해 올 상반기 중으로 국가 사적 지정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