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골목] <31>
영국 런던 '포토벨로 로드마켓'
'노팅 힐'이 찍은 정직한 노점상들의 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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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 노팅힐 포토벨로 로드마켓의 벼룩시장에 나온 그릇들. 오래된 느낌을 주는 그릇이 많다. 그릇 뒤의 붉은 건물도 고풍스럽다. 이랑주 씨 제공 |
영화 '노팅 힐'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휴 그랜트가 거리를 걷는데, 순식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바뀌는 장면을... [휴 그랜트가 걸어가던 그 길]이 바로 포토벨로
로드 마켓이다.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가 인상적인
이 영화의 배경인 포토벨로 로드 마켓은 영화
제목처럼 노팅힐에 위치하고 있다.
토요일마다 엄청난 규모의 벼룩시장이 선다고 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군중을 따라 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양쪽으로
늘어선 파스텔 톤 건물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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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와 기타로 멋진 연주를 선보이고 있는 아저씨들 덕분에 벼룩시장 쇼핑이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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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이 예쁜 건물 앞에서 영국 아저씨들이 첼로와 기타로 멋진 연주를 선보였다.
이들 건물 사이로 무려 2천여 개의 골동품 가게가 늘어섰다.
입구에 '1887'이라 씌인 빨간색 건물 앞에 고풍스러운 식기가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백화점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리는 '웨지우드'같은
도자기가 그냥 큰 바구니에 담겨 있어 놀랐다.
그중에는 쓰던 그릇이 많았다.
가격도 쌌다.
■ 도심에서 추억을 팔다
언제 만들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전화기,
장난감, 빈티지 패션 아이템이 가득했다.
과거 어느 귀족이 사용했을 법한 은식기도 있었다.
작고 예쁜 은수저에 관심을
보이니 가게 주인은 수저에 얽힌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냈다.
아시아 골동품 가게에 들어서니 우리나라의 쌀 뒤주나 한약방에서 쓰던
약장, 나주 소반 같은 가구도 보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거 사용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포토벨로 로드 마켓은 300년
전 청과물 시장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1837년부터 골동품이 주류를 이뤘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은 2천 곳이 넘는 골동품 점포로 시장 통로가 다 메워졌다.
가게 주인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다.
■ 길거리 노점도 유기농을 판다
이게 뭔가 싶은 물건을 구경하다 거리 끝자락에서 먹거리 코너를
만났다.
이곳이 당초 식품을 판매하던 곳이었음을 알려주는 청과물 매장은 향긋한 과일 향이 강했다.
가게 앞에서 사람들은 씻지도 않은 사과를 베어 물었다.
이상하게 보고 있으니 주인이 "유기농이라서 그냥 먹어도 된다"고 답했다.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과일이 유기농이라니.
놀라웠다.
각종 육고기를 파는 노점도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들다.
상인은 돼지, 소고기를 부위별로 잘라 랩으로 포장했다.
물론 가격표도 정확히 붙였다.
상인은 하얀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도 고기에 대한 신뢰감을 높였다.
■ '골동품시장'과
'벼룩시장'의 공존
벼룩시장은 2차 대전 이후 전쟁에서 돌아온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한 퇴역 군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물건을 내다팔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기존의 골동품시장에 벼룩시장이
더해지면서 시장은 명물 거리로 거듭 태어났다.
허름한 재킷,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조잡한 보석 제품, 별로 쓸모 없을 것 같은 골동품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비녀 같은 장식이 특이해서
깎아주면 사겠다고 했더니 상인은 대뜸 "정찰제"라고 면박을 준다.
이 점포만이 아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망토를 하나 사려니 10원도 안 깎아
준다.
시장은 흥정하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의하니 정직한 상인은 정찰제를 고수한다고 되레 더 타박했다. 영국 특유의 국민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옥내
상점도 많지만, 포토벨로를 유명하게 만든 건 이처럼 길거리에 자리잡은 '정직한' 노점상이 아닌가 싶다.
노점을 이곳에 차리려면 구청으로부터 스트리트 마켓 허가증을 받아야 한단다.
또 요일에 따라 정해진 요금을 내야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한 상인이 설명했다.
낡은 것도
하찮지 않게 대우받는 곳이 영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마다 크고 작은 벼룩시장을 잘 키운다면
새로운 일자리와 함께 관광산업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라는 뜻의 '아나바다'는 벼룩시장을 통해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벼룩시장을 학생들에게 시장을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영국인의 모습도 신선했다.
세상에는 소중하지 않은 물건이 없다란 교훈도 남기면서 말이다.
lmy730@hanmail.net
이랑주
VMD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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