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불탄봉~보로봉'
쪽빛 바다…붉은 동백…황금 억새…
한낮인데도 어두운 긴 동백터널과 쪽빛 바다와 기암괴석이 절경인 거문도 산행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을 만큼 인상적이다. 오른쪽 큰 바위가 신선바위. 정상이 평평해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뒀다고 전해내려온다. |
[동백]은 지는 모습이 필 때보다 아름다운 유일한 꽃.
시들며 이지러져 인생무상의 서글품마저 느끼게 하는 다른 꽃과는 달리 뒷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예부터 '선비의 꽃'으로 불린다.
반쯤 벌어진 붉은 꽃송이가 그 모양새 그대로 '툭'하고 떨어지면 사뿐히 즈려밟기조차 부담스럽다.
섬 전체 수종의 80%가 동백인 거문도(巨文島)가 예년과 달리 이른 시기에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섬 전체를 붉게 달구기 시작한 동백꽃 때문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동편 자락의 한 섬인 거문도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100만평 정도의 천연 항만이 호수처럼 형성돼
오래전부터 구미 열강들의 각축장이 돼 왔다.
결국 거문도는 구한말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 1885년 강제 점령,
당시 해밀턴항으로 세계지도에 그 이름을 내밀었다.
연평균 16도로 제주 서귀포와 더불어 가장 높아 동계 피한처(避寒處)로 꼽히는 거문도는
동백의 일렁이는 쪽빛 물결과 단아한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남국의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다.
혹자는 산은 뒤로한 채 '웬(?) 거문도'라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이곳에도 모름지기 [산꾼들을 위한 등산로]가 개설돼 있다.
주민들의 자생단체인 '산사모(산을 사랑하는 모임)'를 중심으로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유람선사가 수 년에 걸친 노력으로 결실을 이룬 것.
거문도의 산은 높아봤자 해발 200m대.
한 걸음에 쉽게 오를 수 있는데다 터널을 이룬 동백꽃길이 일품이다.
거칠 것 없는 빼어난 조망은 금상첨화.
산행은 거문도여객선터미널~삼호교~삼호교 갈림길~덕촌리 우정민박 갈림길~덕촌초등~거문중~불탄봉(1950m)~잇단 동백숲터널~갈림길~전망대 절벽~갈림길~촛대바위~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전수월산·170m)~360계단~목넘어(무넹이, 수월목)~동백숲길~등대 앞~목넘어~유림해수욕장~삼호교~여객선터미널 순.
3시간~3시간30분 걸린다.
사실 거문도는 '한국의 마지막 비경'인 백도 유람선과 등대로 가는 동백숲길이 주볼거리.
하지만 등산로 개설로 나그네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백도 유람과 함께 거문도 산행이 히트상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은 여객선터미널이 위치한 고도에서 출발, 서도를 향해 삼호교를 건넌다.
갈림길.
왼쪽은 등대 혹은 2시간 정도의 짧은 코스 방향.
오른쪽 덕촌리 방향으로 간다.
길 왼쪽에 '우정민박'이 보이면 왼쪽길로 오른다.
덕촌교회와 곧 폐교 예정인 덕촌초등학교를 잇따라 지나 거문중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계단을 올라 교사(校舍) 왼쪽 뒤로 돌아가면 산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만난다.
이 길만 찾으면 본격 산행 시작.
터미널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흑염소 방목지를 지나 7분 뒤 불탄봉 갈림길.
이정표는 없지만 안내줄이 있어 쉽게 인식할 수 있다.
10분이면 정상에 오른다.
불이 자주 나는 산이라는 불탄봉에 서면 동백숲 너머로 고도와 동도
그리고 초도 손죽도 등 주변 크고 작은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곧 일본군 벙커.
과거 일본군의 병참기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주변에 따뜻한 날씨 덕에 억새가 한창이다.
황금빛 억새와 빨간 동백의 공존.
이곳 거문도만의 진풍경이리라.
일순간 에메랄드빛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감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내 동백터널이 이어지기 때문.
한낮인데도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가운데 벌써 꽃송이가 바닥에 흩뿌려져
카키색 낙엽과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룬다.
10분 뒤 갈림길.
진행방향은 왼쪽이지만 오른쪽에는 전망이 빼어난 암릉이 일품.
산사모 회원이 최근 나무를 베어 길을 낸 노력이 역력하다.
산자락이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 풍경은 갈 길 바쁜 나그네를 한숨 돌리게 만든다.
저 멀리 거문도 등대가 가물가물 시야에 들어온다.
곧 촛대바위.
멀리서 보면 그럴듯한데 다가가 보니 주민들이 세워놓은 것이다.
이어지는 길은 편평한 돌로 온돌마루처럼 깔아 놓았다.
우측 신선바위가 보일 무렵 섬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기와집몰랑이 시작된다.
마을이나 바다에서 보면 바위능선이 마치 기와지붕의 선처럼 보인다고 해서 명명됐다.
신선바위도 연이어 만난다.
암릉에서 바다쪽으로 벗어난 해발 115m 높이의 신선바위에 힘겹게 오르면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풍류를 즐길 만큼 넓고 평평하다.
동백숲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 보로봉 갈림길.
직진하면 곧바로 정상, 우로 가면 등대 방향.
사방이 확 트인 보로봉은 거문도에서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좋은 곳.
거문도 섬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방금 지나온 기와집몰랑 등의 윤곽을 어렴풋이 관찰할 수 있다.
불탄봉 억새군락. 동백꽃과 동시에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
능선은 365개 돌계단으로 이어지면서 산행은 사실상 끝.
계단 끝은 등대갈림길.
왼쪽은 유림해수욕장을 지나 터미널 방향,
오른쪽은 서도와 수월산을 연결하는 갯바위인 목넘어를 지나 등대로 가는 길.
나무데크로 일부 연결된 목넘어는 태풍때 집채만한 파도가 갯바위를 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주민들은 흔히 무넹이 혹은 수월목(水越目)이라 부른다.
등대가 위치한 건너편 수월산도 이와 무관하지만 않다.
등대로 향하는 수월산 동백숲길도 소문대로 일품.
흠이라면 등대가 현재 보수중이어서 일반인 접근금지.
동백숲길 산책만으로 만족하자.
건립 100주년이 되는 내년을 대비해 현재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어 철망으로 막고 있다.
아쉬움 발걸음.
여기서 목넘어와 유림해수욕장을 다시 지나 터미널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 교통편
지금까지 거문도를 가기 위해선 여수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말부터 (주)청해진해운이 고흥반도 녹동에서 오가고호(298t)를 신규 취항했다.
배삯은 크게 내렸고 무엇보다 운항시간이 2시간20분에서 1시간으로 줄어
백도 유람과 거문도 산행이 하루만에 가능해졌다.
백도 유람선 출발시간은 오전 8시, 오후 2시 두 차례.
부산서 백도 유람과 거문도 산행을 당일치기로 할 경우
전날 고흥 녹동으로 가서 1박을 하든지 아니면 새벽 4시께 출발해야 한다.
백도의 기암괴석. 한 가운데 솟은 바위가 서방바위다. |
이후 일정은 대략 이렇다.
오전 9시 거문도항 도착, 백도 유람선 두리둥실호(104t)로 갈아탄 후
11시30분까지 백도 유람.
간단한 점심 식사후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거문도 산행.
오후 4시 거문도 출발, 오후 5시 녹동항 도착.
7시간 걸리는 거문도 서도 종주 코스도 있다.
서도 북단 장촌부락~음달산을 거쳐 불탄봉~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등대 순.
이럴 경우 백도 유람을 포기해야 한다.
3시간 코스도 부담스러우면 삼호교에서 우측 덕촌리로 가지말고
왼쪽 유림해수욕장을 거쳐 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등대순의 2시간 코스를 타면 된다.
부산서 고흥 녹동가는 길은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2번 국도 고흥 보성~15번 국도 고흥~도암 소록도 녹동 이정표를 보고 달리면 된다.
# 떠나기 전에
거문도 관광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백도 유람.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 떨어진 백도는 빼어난 절경이어서
국내 섬 중에서 유일하게 명승지로 지정돼 있다.
천년기념물인 흑비둘기를 비롯, 팔색조 가마우지 등 희귀조류
120종과 풍란 석곡 등 353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향이 진한 풍란은 관광객들이 마구 채취하는 바람에
지난 2001년부터 10년간 상륙금지 상태여서 섬에 내리지 못하고 유람선을 타고 감상해야 했었다.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온통 하얗게 보인다 하여 백도(白島)라 불리는 이 섬은 크게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뉜다. 등대섬이 있는 상백도가 웅장하고 남성적인 반면
서방바위가 가운데 우뚝선 하백도는 갖가지 전설이 붙은 바위들이 촘촘히 모여 아기자기하다.
물안개가 곱게 피어 오르는 날이면 섬 전체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바위의 모양도 다양하다.
고개를 들고 있는 물개를 닮아 물개바위, 새를 낚아채려는 모습을 한 매바위, 남성을 상징하는 서방바위,
한복을 입고 서방바위를 숨어서 몰래 엿보는 각시바위 외에
비행기바위 왕관바위 고래바위 도끼바위 성모마리아바위 보석바위 지네바위 병풍바위 원숭이바위
감투바위 큰곰바위….
이가운데 [석불바위]는 이기대의 부처바위와 꼭 닮았다.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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