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매력 공간] <1> '프롤로그'
결이 좋은 마을에 가면 자꾸 만지고 싶고, 보고 또 보고 싶다
부산에는 좋은 결이 묻어나는 공간이 많다. 산동네 좁은 골목길에 전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감천문화마을(사진)이 그렇고, 궁상맞던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매축지 마을이 그렇다. 부산의 매력 공간을 함께 찾아가 보자. |
- 일상의 흔적 켜켜이 쌓인 공간
- 때론 심오함에…때론 강렬함에
- 웰빙·힐링 바라는 현대인 열광
- 예술과도 같은 매력적인 곳들
- 그 촘촘한 '결' 따라 여행하기
세상 모든 것은 온통 결로 되어 있다.
한 겹 두 겹 켜켜이 쌓인 일상의 결이 모여 고유한 성격을 이루어 간다.
나이테나 돌 표면의 결이 그 표상이다.
사람의 개성이나 됨됨이도 달리 말하면 결이라 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문화의 속성도
그 사회가 만드는 결인 셈이다.
좋은 결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손으로 쓰다듬고 싶어진다.
방금 보고도 다시 또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짓는다.
음악가는 노래로 표현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온 마음을 다해 찬사를 보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눈에서 하트가 뿅뿅 발사되는 매료(魅了)의 상태에 도달한다.
우리가 살고 머무는 곳곳에도 좋은 결이 묻어나는 공간이 있다.
뭐라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매력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
때로는 모태와 같은 심원함이, 때로는 어린이의 보드라운 살결 같은 감촉이, 때로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 같은 리듬이 전달된다.
■ 왜 공간에 열광하나
한 때, 전통 건축물 답사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답사객은 다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또 다른 손에는 한권의 책을 들고 다녔다.
그 책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기'. 결을 읽어내는 작가의 전문적 식견과
따스한 눈매에 많은 독자가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스토리텔링을 몸소 체험하고자 배낭을 메고서 전국의 전통 공간을 누비고 다녔다.
알다시피 요즘 감천문화마을은 난리도 아니다.
누추해 보이는 산동네 좁은 골목길에 전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갈 때마다 '어찌 이런 일이…' 싶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삼진어묵체험역사관'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한다.
폐허처럼 남겨진 어묵공장을 리모델링했을 뿐인데, 주말이면 입장하기 위한
대기 줄이 뱀 꼬리처럼 골목까지 길게 나와 이어진다.
왜 이렇게도 공간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물어도 딱히 뭐라 정확히 답하지는 못한다.
"그냥~ 느낌이 좋네."
그런데 이 좋은 느낌,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좋은 느낌이 곧 결이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결이 밖으로 드러나 있기에 좋아하는 것이다.
메마르고 사람을 짓누르는 공간에만 살다가, 보듬어 안아주는 결이 느껴지는 공간에 오니 그저 좋은 것이다.
■ 이젠, 웰리빙의 시대이다
매축지 마을. |
"사람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사람을 만든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다.
만들어진 공간이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마음이 답답해지고,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 나쁜 공간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유쾌해지는 기분 좋은 공간도 있다.
분명 모든 공간에는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그러니 웰빙과 힐링을 간절히 바라는 현대인이 좋은 공간에 열광하는 일은 어쩌면 본능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맛집과 건강식을 찾아 헤매다니는 것 이상으로, 좋은 공간에 머물러
평안을 되찾는 일 역시 소중하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챈다.
건강하게 머무르고자 하는 현대인의 이런 욕구를 일컬어
'웰리빙'(well-leaving)이라 부른다.
일부러 박수를 치거나, 일부러 크게 웃거나, 일부러 사랑한다고 고백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효과를 본다는 얘기를 하지 않던가.
웰리빙의 시대에 이제 좋은 결을 가진 공간을 찾아다녀야 한다.
건강한 공간을 만나면 격한 공감과 감동을 표현해보자.
우리의 몸에 건강한 기운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건강한 공간이 많이 생겨날수록 우리의 도시가 건강해지며, 더불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것이다.
■ 건강한 공간은 모두 결이 촘촘하다
간혹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나 소설을 보면 작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흠뻑 빠져든다.
이야기의 구성에 허점이나 비약이 없이 정연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설득력 있는 인과(因果)와 당위성 있는 암시(暗示)와 반전(反轉), 구체성이 담지된 묘사(描寫) 등이 작품 전체에
촘촘한 결을 이뤄 독자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다.
극에 달하면 낭창낭창 참아내던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쏟아내게 한다.
결이 절묘하게 구성되었을 때의 현상이다.
모든 훌륭한 작품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흐의 그림도, 시벨리우스의 선율도,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도, 자코메티의 조각도, 하이데거의 철학도,
이상의 시도 모두. 살펴보면 모두 결이 촘촘하다.
마치 씨실과 날실의 숱한 교차로 멋진 패턴의 베를 짜는 것과 같이.
숱한 결의 얼거리가 결국 매력을 뿜어낸다.
공간의 감동이 있는 세계적 건축물 역시 그 핵심 비결은 촘촘한 결에 있다고 감히 단언한다.
장소가 가진 결과 시간이 가진 결을 잘 매만지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수놓았을 때
사람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알아챈다.
직조된 공간 속에서 푸근함을 느낀다.
오랫동안 머문다.
그리고는 간명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아! 여기 느낌 참 좋네."
부산에 있는 결이 좋은 공간을 각기 다른 주제별로 한번 찾아보려 한다.
어떤 결이 담겨 있는지 곱씹어 볼 참이다.
하나둘 더듬어 가다 보면 명확하지는 않을지라도 대략 감은 잡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것이 과연 좋은 결이며, 왜 우리는 공간에 열광하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산의 매력 공간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 동행이 되어주시길 권한다.
히어위고~.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 필자 이승헌
이승헌(46)은 '건축의 지역성 표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명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교수다.
도시와 건축에 관해 다양한 글을 쓰며 강연하고 있다.
'하우징디자인핸드북'(2011), '공간에 반하다'(2012), '마흔에 살고싶은 마당있는 집'(2013)을
펴냈다.
노후주택 리모델링 프로젝트 '리노하우스'와 각종 공간 기획 디자인 컨설팅 등
건축가(www.spacedlab.kr)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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