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덕계장'
도시 생기면서 장풍경 사라져 오일장은 세태 반영 퇴색돼
'삼가' 하면 삼가장이 생각날 정도로 면 소재지 전체가 장터였던 곳이다.
서부경남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장으로,합천과 진주를 잇는 물류 중심지였고,지역 특산물 집산지였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장터의 풍요롭고 활기차고 여유로운 풍경 속에서,사람과 사람 사이의
푸근한 인정미와 스스럼없는 부대낌과 따뜻한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장엘 가면 신이 난다.
마냥 가슴이 설렌다.
추억의 방물장수를 맞이하듯이,또는 유년의 보물상자를 조심스레 들여다보듯이,그런 아련한 느낌이랄까?
세상의 모든 물건은 장터에 다 있었고,그 장터에서 세상을 배웠던 세대들에게는,이 장터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란 걸 안다.
장터는 학교 밖의 학교였고,교과서였고,운동장이었다.
풍요로운 시대를 꿈꾸는 만화경이요,요지경이었다.
이런 장터의 추억을 간직하고,한가위를 맞이하는 전통 오일장 풍경을 담기 위해 덕계장을 찾았다.
노포동에서 울산 방면으로 15분 거리.
웅상읍 덕계출장소 뒷골목을 중심으로 약 100m의 'ㄴ'자로 꺾어진 형태의 장이다.
원래 출장소 자리가 장터였는데,지금의 자리로 밀려나 앉았다.
3.8장 치고는 많이 쇠락한 느낌이고 특색 있는 장풍경도 많이 사라졌다.
장마다 있는 시원한 탁사발(사발 막걸리)에 진한 국물의 장국밥집도 문을 닫았고,장 구경 나온 촌로들의
노래 가락 소리도 끊겼다.
한가위 장인데도 너무도 적조하다.
묘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30년간 이 장에서 나물을 파는 촌부에게 넌지시 사정을 물었다.
"아,장사가 안되니 그렇지. 도시 들어서고 나서 덕계장 다 죽었어.
상설시장 생겼지,장터 앞에 떡 하니 큰 마트 생겼지.
그러니 누가 여기서 장을 봐?
게다가 올망졸망 같이 모여 있던 장터도 출장소 들어선다고 무작정 쫓겨나 이 뒷골목에 나앉았잖아?"
명절을 맞아 어느 정도는 활기찬 장터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장터문화가 역사 속으로 묻혀가는 안타까운 현실인 것을….
그러나 장꾼들만큼은 예나 제나 변함이 없다.
모두 이곳을 30~40년 지키신 분들이라,인정 많고 순박하고 인심마저 후하다.
요즘 보기 드문 머루를 짚단에 묶어 파는 촌부에게 말을 붙이며,두릅에서 떨어진 머루 알을 연신 집어먹는 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사진 좀 찍자고 사진기를 불쑥 들이미는데도 "뭐 할라고 그라노?" 하면서도 머루 두릅을 양 손에 번쩍 들고는
"아따, 머루 싱싱타. 이 머루 무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이. 마이 무라이."하며
우스개 소리로 호객하는 모습을 연출해 준다.
주위 장꾼들이 몰려와 그 흉내를 내느라 웃음바다가 된다.
새콤달콤한 맛에 취해 작은 항아리만한 머루 두릅을 6천원에 산다. 참 싸다.
장꾼들과 막걸리 한 잔 하며 '덕계장이 너무 죽었다'고 걱정을 하니,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소채 파는 촌부가 "오늘 밭에서 딴기다. 좀 무 봐라"하며 아직 이슬 묻은 상추와 쑥갓을 한 움큼 비닐에 담는다.
놀래서 도망치 듯 자리를 뜬다. 인심도 인심이거니와 행정관청에 섭섭하고,사람이 그리운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편하고 위생적인 마트에서 장을 보는 추세다.
그러나 그런 세태 속에서 밀리고 쫓겨나는 우리의 오일장도 있다.
그리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이 오일장에서,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땅 냄새 배이고 싱싱한 햇것으로,
정성스레 차례상을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가족끼리 오순도순 장 구경도 하면서….
최원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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